* 사실 어제 오전에 쓴 글인데... 다 쓰고 submit누르자 '권한없다'면서 날려 먹어서 이제서야... *
* 아래 캡쳐 화면은 모두 직접 캡쳐한 화면입니다. *
[까뮈따윈 몰라/Who's Camus Anyway]
감독 : 야나기마치 미츠오
제작년도 : 2005
국가 : 일본
러닝타임 : 115분
출연배우 : 카시와바라 슈지, 마에다 아이, 요시카와 히나노등
지난 번에 '놓친 고기 네마리'란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지난 관련글 보기
지난 번이라지만 08년 12월 15일 포스팅이니... 엄청 시간이 흘렀군요.
그 포스팅엔 그 당시 보고 싶었지만 못본 네 편의 영화를 적었었습니다.
그 네 편의 영화는 [까뮈따윈 몰라], [마츠가네 난사사건], [렛 미 인], [바시르와 왈츠를]이었구요.
그 뒤로 [까뮈따윈 몰라] 외의 세 편은 모두 감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까뮈따윈 몰라]를 보게 되었네요.
대경미디어에서 DVD가 발매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온라인 주문하여 오늘 DVD를 받았고 저녁에 바로 aipharos님과 같이 볼 수 있었습니다.
(대경미디어에서 출시해준 것만 해도 감사하긴 하지만... 가격이 요즘 DVD시장생각하면 다소 비싸고-19,000원 정도
- 서플먼트 전무에다 북렛등은 전혀 없습니다. 킵케이스를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감독은 야나기마치 미츠오.
85년 영화광들 사이에서 전설과도 같은 묵묵한 광기로 점철된 작품인 [히마츠리/Fire Festival]의 바로 그 야나기마치 미츠오 감독.
10년 만의 신작이고 이 영화가 실제 대학 영화 동아리 스탭들을 데리고 작업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영화 내에서 다루는,
대학 영화 동아리가 만들어내려는 영화가 실제로 2000년에 일본에서 일어난 남자 고교생의 노파 살인 사건을 다룬다는 사실들이 무척 화제가 되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영화제와 일부 한정된 영화관에서 상영을 했으나 전 모조리 놓치고 후회에 후회를 거듭하며 이렇게 거의 4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버렸죠.
(영화는 2005년작이나 국내엔 2006~7년 사이에 상영이 됐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2000년 실제 있었던 한 남자고교생의 노파 살인 사건을 '지루한 살인자'로 영화화하려는 일본의 어느 대학교 영화동아리가
촬영에 이르기까지의 개개인의 우여곡절과 크랭크인까지의 모습들입니다.
막상 줄거리를 쓰려니 정말 이렇게 밖에 얘기못하겠군요.
이 영화는 도입부에 약 8분에 이르는 롱테이크로 시작합니다. 롱테이크라고 하면 우린 로버트 알트먼이나 오손 웰즈,
또는 미클로시 얀초등을 기억하게 되지요. 컷을 나누지 않고 유유히 카메라를 흘려 보내는 방식인데 한 번의 NG라도 나면 치명적인,
연기자들의 동선과 호흡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져야만 가능한 테크닉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도입부 롱테이크는 제법 거친 편이죠. 패닝과 트래킹이 그닥 부드러운 편도 아니에요.
핸드헬드의 거친 모습도 그대로 담겨있고. 의도적이라고 보여지는데요. 이 영화의 배경인 대학교의 영화동아리라는 점을 감안하여
마치 '롱테이크 독본'을 따라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영화는 8분에 가까운 롱테이크로 시작합니다.
그러면서도 충분히 위에 언급한 영화들에 대한 오마쥬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이뿐이 아닙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들은 프랑소와 트뤼포의 [아델 H 이야기]나 루치오 비스콘티의 [베니스의 죽음]에 나오는
아센바하(토마스 만의 소설에선 시인이지만 영화에선 작곡가)등으로 환치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등장인물들이 고전 영화의 캐릭터를 기가막히게 패러디하는 경우가 발생하죠.
특히 나카조 교수 역의 혼다 히로타로는 영화 속에서도 등장하지만 아센바하를 황당하리만치 패러디해버립니다.
이와 같이 고전에 대한 풍성한 텍스트를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모든 감정과 의도를 '실험'해버리려는 일본의 현대 젊은이들의 얄팍함과 기존의 관습과
도덕률의 틀에 갇힌채 이를 거부하려는 '저항'정신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남자와 키스해보면 어떨까, 사람을 죽이면 어떤 기분일까, 저 교수를 유혹해볼 수 있을까등등...
이런 '실험'이라는 명목으로 시도해보려는 젊은이들의 감정이 얄팍하게 등장하고 있는거죠.
이 남자와 키스해보면 어떨까. 이게 연애감정인지, 아니면 그저 해보려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습니다.
나카조 교수는 부인과 사별한 지 2년만에 고혹적인 한 여학생에게 완전히 마음을 뺏깁니다.
미소년을 탐하던 아센바하처럼 말이죠.
이는 이들이 영화화하려는 '지루한 살인자'인 한 남자 고교생을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의 주인공인, 햇빛이 너무 부셔서 아랍인을 살해해버린 뫼르소와 환치됩니다.
이 젊은 영화학도들은 영화 속에서 현대의 뫼르소가 되어버린 캐릭터 '다케다'를 이해할 수 없다면서 리딩타임에서 언쟁을 높이기까지 하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사회적 인습과 가치를 받아들일 능력이 없는 뫼르소와 그닥 다르지 않거든요. 묘한 아이러니죠.
다케다 역을 맡은 이케다마저 주인공 다케다의 심리를 이해하기가 힘들다고 토로합니다.
그들은 '지루한 살인자'의 캐릭터 다케다를 이해못한다면서 스스로는 그와 그닥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니까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폭발적인 라스트에서 현실과 비현실, 정상과 비정상이 구분되기 힘든 그 라스트에서 일어난 일이 도대체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헷갈려하면서도
마지막의 그 조용한 엔딩을 통해 '아... 아닌가보다'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영화 속 캐릭터들이 보여준 대사와 행위를 상기해보면 갑자기 섬뜩한 느낌이 들게 되는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감독이자 노장인 야나기마치 미츠오 감독은 그런 냉소적인 시선만으로 젊은이들을 바라보진 않습니다.
이 영화속의 캐릭터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학교에 가고 집에 오고, 직장을 나서서 일하고 집에 돌아오는,
그러니까 까뮈의 '씨지프'와 같은 반복되는 굴레를 짊어지고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잖아요.
시스템은 인간을 규정하고 단정짓습니다. 이를 깨는 방법은 그것이 설령 무의미한 발버둥이라고는 해도 이런 시스템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것 뿐입니다.
이 영화 속 캐릭터들은 바로 그런 챗바퀴 굴러가듯한 시스템과 자신의 감정에 저항하는 노력일 뿐입니다.
아련하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한, 얄팍하기까지 한 이런 저항이 그들에겐 '실험'으로 인지되는 거죠.
본능적으로 저항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연민의 시선까지 담겨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
이 영화 속에선 관객이 영화의 캐릭터에 집중하기 힘들도록 의도적인 방해를 배치합니다.
예를들면 아야가 걸핏하면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해서 사진을 찍거나 모토스키의 카메라가 언쟁 중인 마츠카와와 기요코의 프레임에 드러단다든지,
그 순간을 또 아야가 핸드폰으로 찍어댄다든지, 마츠카와(카시와바라 슈지)와 유카리(요시카아 히나노)가 심각한 대화를 할 때 아야가 셀카를 찍는다든지...
이런 방식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자꾸 분산시킵니다.
시선을 분산시키는, 모시모토의 카메라가 프레임 안으로 들어와 버리고, 아야는 이 심각한 와중에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영화 속에선 모시모토와 '다케다'역을 맡은 이케다가 '살인을 할 수 있겠어?', '한다면 난 한꺼번에 여럿을 죽일거야'라고 말하곤 합니다.
뿐만 아니죠. 유카리는 정상과 비정상,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한 기괴한 캐릭터입니다.
그러니까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되, 이 영화 자체를 온전한 현실이라고 믿기가 힘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생각하며 영화를 보게 됩니다.
그 결과 마지막 그 폭발적인 라스트에서 관객들은 이게 정말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뭐가 허구이고 아닌지를 도통 알 수가 없이 당황하게 되죠.
우여곡절 끝에 촬영을 시작한 영화. 이 마지막 폭발력은 놀라울 정도
아무튼 간만에 텍스트 풍성하고 보는 재미도 있는 영화를 봤습니다.
색다른 영화를 원하시는 분들께 강력하게 추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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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면 이게 도저히 45년생 중견 감독의 영화라고 느끼기 힘든 젊은 패기가 느껴집니다.
야나기마치 미츠오 감독의 네이버 필모그래피엔 전작이 다 나오질 않더군요.
위에 [히마츠리]에 대해 언급했지만 한가지 더 얘기한다면 우리가 지금 Post-Rock의 명그룹이라고 손꼽아 일컫고 있는
캐나다의 'Godspeed You Black Emperor'라는 그룹은 야나기마치 미츠오의 76년도작인 다큐 [Baraku Emperor]의 영어 제목입니다.
이 다큐는 대본도 없고 스크립트도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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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조 교수를 유혹하는 고혹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인 '레이'를 연기한 여배우는 88년생인 쿠로키 메이사입니다.
이 영화가 2005년작이니... 음... 만16세 정도의 나이였군요. 이 영화를 찍을 땐 말입니다.-_-;;;;
나카조 교수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영화 속 나카조 교수는 거의 15년간 영화를 찍지 않고 있지요.
실제로 야나기마치 미츠오 감독도 거의 15년만의 영화였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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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마에다 아이가 맡은 기요코는 세 명의 남자와 키스합니다.
다 엉겁결에 하다시피 하는 것처럼 나오지만 모두 기요코가 의도한 바입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야마기마치 미츠오 감독의 85년작 [히마츠리]의 기미코의 또다른 버전이라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