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work/네트워크]
감독 : Sidney Lumet
제작년도 : 1976
제작국가 : 미국
러닝타임 : 121분
출연배우 : Faye Dunaway, William Holden, Peter Finch, Robert Duvall

이 영화는 제가 이미 오래전 본 영화입니다만 못 본 aipharos님을 위해 이미 몇년 전 DVD를 구입해놨었고,
어제 밤에 aipharos님과 함께 다시 봤습니다.

시드니 루멧 감독님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님 중 한 분입니다.
예전에 폴 뉴먼이 주연한 [Verdict/심판]을 얘기하면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이분의 대단히 메마른듯한 연출과 편집은
영화를 좋아하는 제게 엄청나게 많은 영향을 끼쳤답니다.
근래엔 아무래도 연세가 많으시다보니 예전과 같이 왕성한 다작을 내지 못하시지만, 그래도 2007년에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에단 호크가 주연한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같은 수작을 발표하시기도 했죠.
이외의 그분의 대표적 필모를 열거한다면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요.
[12 Angry Men](1957), [Fail-Safe](1964), [the Appointment](1969), [Serpico](1973), [Dog Day Afternoon]
(1975), [Equus](1977), [Prince of the City](1981), [the Verdict](1982), [Running on Empty](1988)등을
개인적으로 추천합니다. 말 그대로 제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영화가 이 정도일 뿐입니다.
전체적인 필모그래피는 장난이 아니지요.
원래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메마른 작법으로 연출하곤 하셨는데, 70년대 들어서는 미국내에 만연했던 학생운동과
그 이후, 그리고 경찰의 내부 비리등을 고발하는 소재를 자주 활용하셨습니다.
[Fail-Safe]같은 영화는 64년작인데 대단히 앞서나간 소재이기도 했구요(기계 오류로 인해 모스크바로 핵폭격을 하기 위해 출격한다는).
시드니 루멧 감독님이 미국에서 60년대말~70년대 중반까지 자주 있었던 무장운동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갖거나 모호한 태도를 보였지만 현실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직관적이고 강렬한 신념을 갖고 계시다는걸
영화를 통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누구든 그 시대를 관통하는 시선을 갖는다면, 그 시선은 초월적인 역사성을 갖게 되는 것 같네요.
이 영화 [Network/네트워크]도 그렇습니다.
이 영화가 발표된지 지금 33년이 되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설파하는 모습들은 지금의 매스 미디어와 조금도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 이 영화가 그토록 오래된 영화축에 끼면서도 여전히 놀라운 재미를 선사하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시드니
루멧 감독님의 예언자적 통찰력 덕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세상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기술의 진보 외엔
그 어떤 것도 도덕적으로 성취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UBS라는 방송국을 배경으로 시청률에 사활을 거는 방송 매체의 극랄함과 시청률을 위해 가공되고 조작되어지는 보도를 다루고 있습니다.

양념으로 당시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허스트 사건*(참조), 사라 제인 무어, 스퀴키 프롬등이 살짝 비춰지기도 하구요.
60년대 최고의 앵커였던 하워드 빌은 이후 거듭되는 시청률 추락으로 인해 2주간의 유예기간을 받고 해직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보도국장인 맥스 슈마커를 통해 알게 되지요.
어느날 뉴스에서 하워드는 자신이 다음 주 뉴스 생방송 중 머리에 총을 쏴서 자살할 거란 말을 내뱉습니다.
난리가 난 방송국은 그를 해임하려하지만 제작국의 다이애나(페이 더너웨이)는 그에 동조하는 시민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해임하지 않고 오히려 쇼를 만들어 시청률을 올릴 생각을 하죠.
주주 이익의 극대화를 명분으로 해킷(제작국장-로버트 듀발)은 하워드를 이용한 쇼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주주들의 신임을 얻게 됩니다.

지금의 매스 미디어 역시 시청률에 목을 멥니다.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수많은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저조하면 조기종영되고, 시청률이 높으면 고무줄 연장이 되잖아요.

이는 뉴스보도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우린 걸핏하면 말도 안되는 간첩단 사건들을 접해왔고
그러한 사건들이 대중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조작이라는 걸 이젠 다들 알고 있습니다.
우리 얘기만이 아니죠. 911이후 브레이크없이 광속질주 중인 미국의 언론은 FOX TV를 선두로 온갖 조작 방송에 박차를 기하고 있습니다.

영국도 BBC 방송에서 이라크 참상을 보도했다가 영국 정부로부터 외압을 받고 결국 BBC사장이 해임되기도 했고,

이태리는 이미 이태리 언론 재벌이자 총리인 베를루스코니의 뻘짓으로 언론이 언론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죠.
시드니 루멧의 [Network]가 상영될 즈음엔 인터넷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던 시대입니다.
당연히 그 시기엔 신문과 잡지와 비교하여 TV의 파급력을 얘기하게 됩니다. 인터넷이 광범위하게 자리잡은 지금도 이런 사실은 그닥 바뀌지 않았다고 봅니다.

인터넷의 컨텐츠는 대부분 여전히 언론 매체를 통해 제공받고 인터넷은 이런 사실을 재활용하여 확대하는 구실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PD 수첩이 다룬 소재가 인터넷을 통해 다시한번 확대 재생산되는 것도 인터넷이란 매체를 통해서이죠.
그런 면에서보면 이 76년작 [Network]는 보도가 조작되고, 정치적 목적에 따라 왜곡되는 지금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씁쓸한 일이죠.

이 영화에서 페이 더너웨이가 연기한 다이애너는 모든 관계를 '시청률'의 잣대로 들이댑니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었다면 그건 맥스(보도국장)와의 불륜 뿐이죠.
하지만 그와의 불륜 역시 온통 보도국 얘기만으로 자신이 일방적으로 진행할 뿐입니다. 섹스도 대화도 다 그 범주 안에서 옴싹달싹 못해요.
자신을 '괴물'이라고 말하며 애증을 풀어놓는 맥스를 그녀가 단 한마디의 말만으로 잡아두려하지만 결국 그마저 떠난 이후엔 그녀는 단순한 '괴물'이 됩니다.
시청률을 위해선 얼마든지 사람도 죽일 수 있고, 그에 대해 조금의 미동도 않는 그런 괴물 말입니다.
그닥 많이 나오진 않지만, UBS를 인수한 CCS의 젠슨 대표는 하워드 쇼가 시청률이 하락하기 시작했음에도 그를 해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한가지죠.
정신분열을 일으킨 하워드를 이용해서 자신의 목소리(이데올로기)를 설파하기에 딱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해킷과 다이애너등이 사용하는 방법은 살인이죠.

지금봐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영화입니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꼭 보시길.


*
아... 이 영화에서 하워드 빌이 미친듯이 얘기하는 장면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시대정신/Zeitgeist]에서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
이 영화에는 배경음악이 전혀 사용되지 않습니다.
편집의 템포도 상당히 빠르구요. 덕분에 한 편의 보도 필름을 보는 느낌도 납니다.
시드니 루멧 감독의 70년대 작품들은 배경음악을 상당히 절제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아요.


***
아무래도 보도국이 배경이다보니 당시 화제가 되었던 사건들이 스쳐지나가듯 등장합니다.
그 중 '사라 제인'과 '스퀴키 프롬'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스퀴키 프롬이 포드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그 17일 후에 사라 제인 무어가 다시 포드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하지요.
사라 제인을 얘기할 때는 패티 허스트가 빠지질 않습니다.
사실 저도 너무 오래 전에 읽은 책들에 나오던 거라 사라 제인을 이 암살범과 매치시키지 못했었는데요.
그래도 패티 허스트는 워낙 유명한 인물이고, 게다가 영화화까지 되었었기에 쉽게 기억이 나긴 하더군요.
패티 허스트는 70년대 미국을 장악한 미디어 재벌 윌리엄 허스트의 손녀이자 랜돌프 허스트의 딸이었습니다.
74년인가 버클리 대학교 재학 시절 'SLA(공생해방군)'에 납치되었고, SLA는 허스트가에 빈민층을 대상으로 한 무료 급식을 실시하라고 협박했죠.

허스트가는 패티를 살리려고 구호 재단을 만들고 무료 배급을 실시했으나
SLA의 요구가 계속되어도 패티가 돌아오지 않자 SLA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납치된 지 두달만에 패티 허스트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자신의 가족들을 자본주의의 억압자라고 비난하고,
자신을 '타니아'(체 게바라의 애인 이름이기도 한)로서 해방되었다고 선언하기에 이르고 그 사흘 뒤 SLA가 은행을
터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 은행의 CCTV에 그녀가 총을 들고 함께 하는 모습이 담겨 충격을 주게 됩니다.
이후 도주하던 패티 허스트는 납치 약 16개월 만에 체포되었고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요.
그때 변호사들이 패티를 변호하는 구실로 사용한 것이 바로 '스톡홀름 증후군'이었답니다.
하지만 무죄 판결에는 실패하고 징역을 살다가 사면으로 출소하고, 이후엔 각종 TV에 출연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뭐시기 영화로 만들면 아주 딱 좋은 그런 케이스의 삶을 산 사람이죠.
영화 [Patty Hearts/패티 허스트]폴 슈레이더 감독이 88년 연출했고, 나타샤 리차드슨이 패티 허스트역을,
윌리엄 포사이스빙 래임, 프랜시스 피셔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했던 영화입니다.(영화적 평가는 좋지 않았죠)

 

 

 

 

 

패티 허스트로 커버를 장식한 뉴스위크

 

 



 

 

SLA와 함께 은행을 터는 모습. CCTV에 찍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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