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사이 본 인상깊었던 영화 네 편.
[Män som hatar kvinnor/밀레니엄]
* 감독 : Niels Arden Oplev
* 상영년도 : 2009
* 제작국가 : 스웨덴
* 캐스팅 : Michael Nyqvist, Noomi Rapace, Sven-Bertil Taube
유럽은 물론 북미의 베스트셀러 동명소설을 극화한 영화.
3부작 중 첫번째인데 벌써부터 2~3편이 기다려질 정도로 몰입감이 있습니다.
정통적인 스릴러 구조지만 범인을 하나하나 끼워맞춰가는 추리 구조라기보다는 두 남녀 주인공이 사건을 파헤쳐 나가는 모습을 따라가는 구조입니다.
덕분에 그 흔한 맥거핀도 그닥 보이지 않고 그로인해 영화 자체가 상당히 베베 꼬지 않고 깔끔하기까지 합니다.
여성 주인공 리스베트의 캐릭터는 어디서나 한 번쯤 등장했을 법한 사실 진부한 캐릭터일 수 있는데 나름 상당한 매력이 있더군요.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보는 느낌도 들고, 아무튼 간만에 아주 재밌는 추리 영화를 봤습니다.
대략의 내용은 웹사이트를 참조하시길.
[the Escapist/이스캐피스트]
* 감독 : Rupert Wyatt
* 상영년도 : 2008년
* 제작국가 : 영국
* 캐스팅 : Brian Cox, Damian Lewis, Joseph Fiennes, Liam Cunningham, Dominic Cooper
개인적으로 탈옥을 소재로 한 영화를 그닥 좋아하진 않습니다.
이 영화도 진작 볼 수 있었음에도 '탈옥'이란 소재로 미루고 미루던 영화 중 하나였네요.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한국 대중들에겐 본(Bourne) 시리즈로 잘 알려진 영국의
명배우 브라이언 콕스가 개인적인 사연으로 동료들을 규합, 감옥을 탈출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입니다.
탈옥을 하는 과정과 탈옥을 결심하고 실행하기 직전까지의 과정을 페이드-백을 이용하여 병치구성한 방식도 인상적입니다.
브라이언 콕스는 행색은 추래해졌으나 여느 영화에서의 모습과 그닥 다르진 않습니다만,
우리에겐 [Band of Brothers/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주인공이었던 윈터스역을 맡았던 데미언 루이스가 그닥 많은 장면은 아니어도
감옥의 죄수 중 실세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등, 조연들의 면면이 무게감이 있는 편이구요.
이 영화의 '반전'에 대해서 말들이 좀 있는데 지나친 감은 좀 있어도 영화 자체의 밸런스를 무너뜨릴 정도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관객을 속였던 [a Perfect Getaway/퍼펙트 겟어웨이]도 눈감고 넘어가는 정도인데 이 정도 반전은 오히려 인상적이지 않나요.
[La sconosciuta/the Unknown Woman]
* 감독 : Giuseppe Tornatore
* 상영년도 : 2006년
* 제작국가 : 이탈리아
* 캐스팅 : Kseniya Rappoport, Pierfrancesco Favino, Claudia Gerini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많은 분들이 자신의 베스트...라고 얘기하는 [씨네마 천국]의 감독님입니다.
난니 모레티같은 재능있는 감독들이 있지만, 과거의 영광에 비해선 너무 척박해진 이탈리아의 영화씬에
아직까진 쥬세페 토르나토레...라는 이름은 거대한 상징과도 같은 의미가 있죠.
그리고 그 상징과도 같은 여전한 존재감을 이 영화를 통해서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정말 기구한 삶을 사는,
이탈리아로 온 러시아 여자가 자신의 딸을 찾기 위해 벌이는 일들을 스릴러의 형식으로 풀어 놨습니다.
먼저 이런 드라마를 무리없이 스릴러로 녹여내는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내공을 절절히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가 그렇게 대단히 독특한 영화는 아니거든요. 극의 스토리나 연출이나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것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시놉시스의 힘이라기 보다는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특유의 물흐르듯 유연한 편집과 자연스러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자극적이고도 불온한 오프닝에 이어 이유를 모른채 주인공 이레나의 의심스러운 행적을 좇아가며
난데없이 긴장을 조성하는 급박한 장면을 배치한 초반부의 몰입감은 상당합니다.
덕분에 이레나의 페이드 백을 통해 조금씩 밝혀지는 그녀의 모진 삶에 감정이입되어 영화에 깊숙히 몰입하게
되는 자신만큼은 줄기차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이건 단지 이레나라는 외지인에 대한 배타적인 시선뿐만이 아니라
여성,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 대한 폭압적인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의 부조리에 대한 사회 고발극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실제로 상처를 안고, 키우고, 보듬아 안고, 다시 치유해주는 것은 이 영화에선 죄다 여성들이거든요.
남성은 그저 여성을 물리적으로 지배하고 폭압하며 이용하고, 아니면 멀찌감치 바라만 보는 역할에 그치고 마니까.
정말 세상의 역사가 이런 식으로 흘러왔을까요? 오버라고 하실 지 모르지만,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남자들은 그걸 자랑스러운 듯 또 떠벌이잖습니까.
[Estômago/에스토마고]
* 감독 : Marcos Jorge
* 상영년도 : 2007년
* 제작국가 : 브라질
* 캐스팅 : João Miguel, Fabiula Nascimento, Babu Santana
이 영화는 요리에 대한 영화이면서 인간의 본능에 대한 씁쓸한 비망록과도 같습니다.
종종 식욕과 성욕, 살인욕구를 드러낸 영화들은 종종 있어 왔죠.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89년작이고 국내에선
동숭아트홀에서 상영된 적 있는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정부/the Cook the Thief His Wife & HerLover]에서도
우린 그야말로 한끝 차이인 인간의 본능을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클라이막스에 다다르면 그 놀라운 만찬의 장면을 보게 되는데 보는 관객은 호사스러운 만찬의 화려함과 그 진수
성찬 위에 올려진 음식의 정체를 보면서 도덕적인 곤혹스러움에 빠지게 됩니다.
이 잘 빠진 브라질산 요리 이야기는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화처럼 지나치게 그로스테크하지도 전위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가브리엘 악셀 감독의 [바베트의 만찬]이나 스탠리 투치와 캠벨 스콧 감독의 [Big Night/빅 나잇] 처럼
음식을 통한 흥미로운 해학을 즐기진 않습니다. 보다 단순하면서도 직접적이죠.
그래서 노나토와 창녀인 이리나의 러브 라인은 더욱 자극적으로 다가옵니다.
식사를 원하는 이리나와 식사를 제공하고 섹스를 원하는 노나토의 관계는 식욕과 성욕의 교환을 대단히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식욕과 성욕, 그리고 그 한끝 차이인 살인의 드라이브가 능글맞게 넘나들다가,
감옥에서의 모습과 병치되면서 정치적인 의미도 쉽게 찾아 볼 수 있구요.
미각과 성욕을 만족시킨 주인공이 이쯤에서 그만둘까요? 그럴리가 없죠.
맛있는 음식을 옆에 두고 만끽하려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지 않겠어요?
하루하루 감옥에서 쓰레기같은 음식을 주워먹다시피하는 죄수들도 미각을 느끼는 감각은 있는 겁니다.
그게 비록 날 것인 카르파치오라도, '날 것'은 음식이 아니다라는 어리숙한 편견만 깨부수고 나면 사실 혀에선 맛있다고 정신없이 신호를 보내잖아요.
맛있는 음식을 상 위에 깔아놓다보면 눈에 들고 권력을 획득하는 걸 보면 아하... 결국 인간의 미각이 지닌 위대한(????)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까놓고 말하면 구강성교도 쾌락을 갈구하는 식욕과 어우러진 성욕의 형태아니겠어요?
아무튼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음식도 자주 등장합니다. 노나토가 이런저런 식재료를 섞어서 그럴듯한 음식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즐겁기까지 하지요.
저희도 맛집을 가끔 찾아 갑니다만 그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 정말 마약같은 중독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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