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정동쪽의 서울역사박물관 옆, 가든플레이스 2층에 위치한 '미로 스페이스'로 왔습니다.

 

 

 

 

 

[Helvetica] directed by Gary Huswit (2007, 약 80분)

말씀드린대로 Gary Huswit (게리 허스윗) 감독의 2편의 디자인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1편은 [Helvetica/헬베티카]로 저희에게도 무척 익숙한 '헬베티카' 폰트를 통해 현재 전방위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어지고 있는

50년이 넘은 폰트인 '헬베티카'를 통해 미학적 관점, 정치학적 관점 그리고 수용자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 의미있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디자이너란 추악한 것과 투쟁하는 것이 임무라는 의견과 기존의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그래픽 디자인이 지닌
정치적 함의를 통해 제도권을 대변하는 듯한 이미지의 정형성에 저항하는 또다른 폰트 디자이너들의 모습도 빠짐없이 비춰줍니다.
저같은 경우,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템플릿을 만들 때 항상 디자이너들에게 '폰트는 최소한으로'

그리고 거의 대부분 Helvetico나 DIN 폰트를 사용하라고 했었죠.
어떠한 하나의 템플릿을 통해 시각적인 호소를 하려면 적당히 잘 찍은 인물/풍경/사물의 접사를 흑백으로 넣고
그 아래에 작은 헬베티카 폰트를 정렬시키면???
네, 그럭저럭 누구나 쿨하게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워낙 헬베티카 폰트가 글자의 비율이 잘 맞아 떨어져서 순식간에 이미지를 장악해버리거든요.
이러한 헬베티카 폰트의 특징을 이용해서 보수지들이 프로파갠더로 사용하는 이미지들은 모두가 헬베티카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사실 그렇게 따지기엔 너무 일상에 광범위하게 퍼져있어요.
그래서 이 영화에선 후반으로 가면 '헬베티카'라는 폰트가 그래픽을 지배하게 된 것에 대해 저항하는 디자이너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헬베티카는 대단히 모던한 느낌이 있습니다. 따라서 모더니스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폰트죠.
영화 후반에 가면 데이빗 카슨이 문자의 '가독성'과 '의미전달'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기존의 질서를 붕괴시키면서 텍스트가 text itself가 아니라 '이미지'로 접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한 말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이렇듯 이 다큐멘터리는 75분의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와 정치 사회적 의미에서 탄생한 폰트,

즉 그래픽 디자인이 어떻게 한 사회에 빨리 흡수되고 통용되며, 또 이로 인해 생긴 질서를 무너뜨리고

전복시키려는 시도들은 어떤 다양성을 갖고 진행되는지 보여줍니다.
지금의 헬베티코는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현대 산업구조에 더없이 적합하기 때문에

한동안 이러한 헬베티코의 롱런은 조금더 계속되겠지만요.
아직까지 대량생산이 화두라면 그래픽 디자이너들도 굳이 헬베티코를 거부할 필요는 없을테니까.

 

 

 

 

 

[Objectified] directed by Gary Huswit (2009, 약 75분)

약 30분 가량을 쉬고 다시 영화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전작이 그래픽 디자인에 대한 화두 제시였다면 이번엔 '제품 디자인'에 대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모두 맞닿뜨리고 있는 모든 것은 '디자인'이죠. 과거엔 제품의 형태가 기능을 규정했지만
마이크로칩의 발달로 인해 이젠 그러한 획일화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졌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카메라는 길다란 직사각형 모양입니다. 원래 필름 사이즈에 맞추기 위해 고안된 형태가 필름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데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으니 말이죠.
현대 디자이너들의 화두는 불필요한 것은 다 떨어버리는 '적게 디자인하기'와 디자인의 지속 가능성입니다.
드러내보이려고 만드는 디자인보다는 일상에 깊이 침투하여 '있는 듯 없는 듯'한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자주 얘기가 나옵니다.
당연하게도 애플에 대한 얘기도 상당히 많이 나오죠. 영화 초반엔 조너선 아이브가 '최소한 적게 한' 디자인을
구체화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지에 대해서도 보여줍니다.
우리의 일상 전체가 디자인이 된 세상이지만, 아직도 디자인은 형태가 기능을 규정짓고, 지속가능성의 제품을
추구하지만 산업화가 고도로 진행될 수록 사람들은 디자인을 소모품으로 인식하고 끊임없이 변화시킵니다.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인간은 진보적인 본능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무언가 제품을 구입하면 그것을 변형시키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고(예를 들면 핸드폰 하나도 엄청 치장을 하죠)
그렇다면 고도화된 산업사회에서 영속가능한 디자인만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요?
카림 라시드가 영화 후반부에 '어차피 3년 안에 5번 이상 휴대폰을 바꾸는 세상이라면 영구적인 제품을 만들
필요없이 1,2년 안에 폐기될 제품이라면 노트북, 핸드폰은 마분지로 만들어도 된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는
결국 디자인 제품의 짧은 수명과 이로인해 야기되는 엄청난 환경쓰레기를 다분히 염두에 둔 말입니다.

3대 산업디자이너 중 한 명인 마크 뉴슨은 물론 세계적인 디자이너 나오토 후카사와, 댄 포모사,
조너선 아이브, 디에터 램스, 카림 라시드등이 줄줄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더군요.ㅎㅎ
이제 제품 디자이너들은 지금 당장의 형태와 기능성뿐 아니라 폐기된 이후도 반드시 생각해야한다는 영화의
후반부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정말 보람찬 시간이었네요.



*
영화 [Helvetica]에는 감각적인 음악들이 많이 나옵니다.
대부분 El Ten Eleven의 노래이고 그루브한 비트는 제가 좋아하는 Caribou의 곡들이죠.
그 중 한곡을 소개합니다.

 

 

'Pelican Narrows' - Carib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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