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
민성군 생일이다.
초등학생으로서는 마지막 생일.
내년부터는 중학생이구나...
민성군은 생일 선물을 이미 2월 말에 미리미리 잔뜩 받았다.-_-;;;
사실 간소한 생일파티는 내일(12일, 토요일)하기로 해서 오늘은 대충 넘어가려고 했는데 또... 그게 그리 안되더라.
나이들고보니 초등학생지나면 슬슬 생일이 머쓱해지고, 더 자란 후엔 친구들끼리도 대충 알고도 모르는 척 넘어가곤 하니까.
(물론... 나이가 들어도 친구들과 즐거운 생일 파티를 즐기시는 분들은 예외.^^)
나같은 경우는... '아, 너 생일이었지? 잘 보냈냐?'... 뭐 이렇게 그냥...ㅎㅎㅎ
민성이보고 저녁에 먹고 싶은거 있냐고 물어보니까 이 바보가 '고등어 구워 먹어요'라고 말하는거다.-_-;;;
자기 생각으론 생일 선물은 이미 받았고, 생일 파티는 내일이니 욕심부리면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말한 것은 알겠는데
그 스케일이 너무... 소박하여 웃어버리곤 '버거비 갈까?'라고 슬쩍 건내어봤더니...
대뜸 '밖에서 먹어도 돼요?'라고 묻더라. '그럼~ 괜찮아. 버거비 가고 싶지?'
당연히 그래도 좀 주머니 지출이 덜 할 버거비. 가격대비 맛... 최고인 버거비를 우린 당연히 생각했는데...
'그럼 라꼼마 가도 되요? 고등어 파스타 먹고 싶어요.'
으...-_-;;;
라꼼마야 우리가 넘 좋아하고 가격대비 맛으로는 과연 서울에 이만한 곳 있을까? 싶은 곳이지만
디너를 가버리면 어머님까지 우리 네식구 20만원은 족히 나오기 때문에(와인을 안 마셔도!!!)
우리같은 경우 이게 절대로...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아들 생일 저녁 핑계로 라꼼마 디너를 먹고 싶은 마음 속의 검은 욕망은
나, aipharos님은 물론이거니와 어머님에게도 있었으니... 아무 이의없이 바로 라꼼마에 예약 전화를 넣었다.
처음 전화했을 때는 만석이라 예약 불가라고 하셔서 그... 절망감은 이루 말할 길이 없었다.
예약이 불가능하게 되자 급히 이곳저곳 가볼 곳을 수배하면서 '그럼 달OO 갈까?', '그럼 디OO 갈까?', '음... 그럼 플OO 갈까?'라며
aipharos님에게 물어봤지만 머리 속은 온통 '라꼼마, 라꼼마, 라꼼마... 고등어 고등어 바질 페스토'로 꽉 차있어서...
결국 내가 다시 한번 전화해본다고 하고 전화를 걸었다.
정말 다행히... 그 사이에 취소된 테이블이 있었던 건지 첫번째 전화와 달리 가능하다고 하셔서 라꼼마로 향할 수 있었다.
말이 아들 생일 저녁이지... 어째...-_-;;;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홍대 상상마당에서 전시를 잠시 봤다.
하지만... 좋은 의도의 전시임에도 재현 작품을 많이 봐서 그런건지...-_-;;;
1층으로 내려가서 재밌는 제품들 구경하자고
aipharos님보다 이곳은 민성군이 더 재밌어한다. 사고 싶은 것도 많고, 재밌는 것도 많고.
재잘재잘 '아빠! 이것 보세요.'라고 말하며 재밌어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초등학생.
그런데... 네가 내년에 중학생이라고?
금요일 저녁.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하는 거리.
우연찮게 밖을 보니 그 많던 사람들이 한 명도 안보여서 셔터를 철컥.
구경 다하고 라꼼마로 들어왔다.
저녁 6시. 첫 손님.
엄청나게 어둡다.
처음 이곳을 들렀을 때 디너로 왔었는데 그때는 이렇게 어둡지 않았는데, 제대로 사진찍기는 쉽지 않다.
특히 AF엉망인 이놈의 라이카 X1은 수동 포커싱이 조금은 필요해진다.
ISO는 1600이어서 노이즈도 지글지글하고... 결정적으로 너무 배가 고파서 대충 찍고 빨리 먹자는 마음이어서 사진은 엉망이다.
양해해주시길.
다만, 이렇게 어두우니 더욱 얘기하기도 편하고 부드럽고 차분한 분위기가 되는 것 같아 좋더라.
너무 밝은 음식점은 난... 그닥 별로.
주방의 분주한 모습을 찍으려고 했는데 민성군이 뭣때문인지 환하게 웃었다.
조잘조잘...재잘재잘.
민성이가 생일이라고 했더니 정말 친절하신 매니저께서 이렇게 케익에 촛불을 꽂아 갖다 주셨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1층에서 '카페 꼼마' 마무리가 한창이던데 메뉴에 오를 케이크를 시식한 날이라고 하셨다.
레몬향 그윽한 아주 풍성한 치즈의 맛이 한껏 살아있던 맛있는 케이크.
카페 꼼마도 기대가 된다.
생일 축하!!!
식전 빵 등장.
우리의 주문은...
어머님과 aipharos님은 각각 '디너 파스타 코스' ... 35,000원/1인 (모두 부가세 별도)
나와 민성군은 각각 '디너 메인요리 코스' ... 48,000원/1인
어뮤즈 부쉐.
어뮤즈 부쉐부터 식감을 자극하고 환기시킨다.
숭어와 광어 카르파치오, 우측엔 장어를 튀겼고 프로슈토를 올렸다.
이 프로슈토는 해외산이 아니라 제주 흑돼지를 이용한 국내산이라고.
민성이는 저 튀긴 장어를 먹자마자 진짜 맛있다며 대만족이었고
숭어와 광어 카르파치오는 탱글탱글한 식감으로 우리 모두를 만족시켰다.
국내산 프로슈토는 해외산처럼 매끄러운 맛보다는 치즈를 먹는 식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생각보다 덜 짜고 진한 맛이 또 신선하더라.
애피타이저, 버섯 요리
애피타이저는 우리 넷 모두 각자 다른 걸 시켰는데.
이건 내가 주문한 걸 주방에서 착각해서 잘못 내온 것.
그냥 안내올 수도 있었을텐데, 이왕 만든 것 먹어보라고 내오셨다. 나야... 정말 감사할 뿐.ㅎㅎㅎ
먹자마자 먹어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바로 했다.
치즈 위에 구운 버섯들은 질좋은 소금만 올려져 있기도 했는데 한 입 베어물면 입안에 버섯의 기분좋은 향이 퍼져 나간다.
정말 맜있게 먹었는데, 정작 내가 시킨 대구알 버터구이보다 이게 더 입맛에 맞았다는.
민성이의 애피타이저. 해산물 요리
도미 요리.
기가막힌 도미 요리.
민성군이 아껴 먹으려고 남겨 둘 정도로 맛있었던 도미 요리다.
문어의 맛도 부드럽고 고소함의 극이었고.
aipharos님의 애피타이저. 그린 샐러드
그냥 딱... 봐도, 대충 찍은 핀나간 사진임에도 맛이 느껴지지 않나.
반숙 계란, 프로슈토와 염소치즈, 그리고 그린 샐러드.
풍성하고 산뜻한 맛.
어머님의 애피타이저 연어 샐러드
기존의 연어 샐러드처럼 뻔한 맛이 아니라 진하고 부드러운 풍미로 스시, 사시미 좋아하시는 어머님 대박 만족하셨다.
또다시 내 애피타이저 대구알 버터구이
에전에 aipharos님이 맛있게 먹었던 그 것. 역시 고소하고 재밌는 식감이다.
다만, 내 입맛엔 잘못 나왔던 버섯 요리가 더 잘 맞았다.
나와 민성군의 첫번째 메인 요리인 돼지목살 스테이크
이렇게 두개의 플레이트를 테이블 가운데 놔주시고 앞접시를 갖다 주셔서 식구들이 모두 나눠 먹을 수 있었다.
두 번째 먹어보는데... 어째 지난 번보다 더 맛있어진 것 같다.
돼지 스테이크도 이렇게 제대로 입안에서 씹힐 때 육즙이 느껴지는 건가?
과하지 않은 소스와 가니쉬의 조화도 너무 좋고 한 입 한 입 아쉬울 만큼 만족스러운 맛이다.
특히 저... 구운 양파 정말 대박이다.
양파를 구우면 단맛이 살아나긴 하는데 이렇게 구수한 맛까지 나던가?
홍차 셔벗으로 입을 개운하게 한 뒤 나와 민성군은 두번째 메인이고, 어머님과 aipharos님에겐 메인 요리인 파스타를 기다린다.
사실 오늘 이곳에 온 건 민성이가 이 파스타를 먹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고등어 파스타'
아... 라꼼마의 파스타는 이제 다 먹어봤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시그니쳐 파스타는 '고등어 파스타'가 아닐까 싶다.
다른 곳의 고등어 파스타는 고등어 본연의 맛을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던 듯하다.
그래서 대파를 같이 넣거나 고등어는 살짝 간만 해서 내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라꼼마의 고등어 파스타에선
고등어에 양념이 들어가고, 파스타 전체적으로 살짝 매콤한 느낌도 난다. 그런데 이게... 전혀 이질감없고 입에 잘 붙는다.
민성이는 이 파스타를 나중에 아껴 먹었다.ㅋㅋㅋ
맛있는데 양이 너무 적다나... 내가 단품으로 하나 시켜서 나눠먹을까?라고 물었더니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더라.ㅎㅎㅎ
물론 그랬다간 배가 분명 터졌을 것이므로 패스했다.
이건 내 파스타였던 '홍합 스파게티'
처음 먹어본 메뉴인데 아... 정말...
루꼴라도 좋고, 너무나 신선한 홍합, 그 홍합의 향이 올라오는 첫 맛도 너무너무 인상적인데... 양이... 양이... 너무 적다.
내 위대한 배를 채우기엔 터무니없이 적은 양. 내가 크게 포크로 두 번 정도 휘저으면 없어질 양.
그래서 한땀 한땀 정성들여 면발을 세는 기분으로 아껴 먹었다.(추잡하구나 정말)
9일, 그러니까 이틀 전 런치에 와서 aipharos님이 먹고 대만족했던, 어머님의 파스타 메뉴였던 바질페스토 파스타
역시... 신선한 바질의 향을 헤비하게 느낄 수 있는 절대 놓쳐서는 안될 파스타.
그리고 aipharos님이 선택한 파스타 메뉴인 '뇨끼'
이런... 이곳 뇨끼는 레벨이 다르구나.
느끼해서 조금 먹다가 물리는 그런 뇨끼와는 다르구나.
aipharos님 대만족.
엄청나게 잘 먹고 이제... 디저트.
으응??? 티라미수가 아니다.
디저트로 나온 음식은 호도 타르트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다.
역시 1층에서 개점 준비 중인 '카페 꼼마'에서 맛볼 수 있다고.
호도 타르트의 호도맛은 대단히 헤비하다. 민성군은 그래서 정말... 맘에 드나보다. 너무 맛있다고 몇 번을 말한다.
당연히 바닐라 아이스크림과의 조화도 완벽하다.
오늘... 정말 민성군이 잘 먹었다.
어머님도 당연히 정말 맛있게 드셨고.
민성군의 입맛의 정확함이 우릴 조금 불안케한다.ㅎㅎㅎ
어딜 같이 가도 우리가 속으로 생각해도 맛이 다소 만족스럽지 않은 곳은
민성이도 정확하게 느끼는지 눈에 띄게 먹는 속도가 느려지고 심지어 억지로 먹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라꼼마에선 이 녀석이 오히려 아껴 먹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나보다.
우린 기억한다. 이태원의 그... 유명한 쉐프의 레스토랑에서 가장 상위 코스를 시켜놓고도
민성이가 전 코스를 거의 모두 남기다시피 했던 사실을. 점심도 거의 못 먹고 배가 극도로 고팠음에도 말이다.
그곳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체험 극과극' 그 자체.
슬슬 나를 제외한 식구들이 배가 터지기 직전인데(난 여전히 부족하다!)
민성이 생일인데 잘 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매니저분께서 또다시 이렇게 서비스를 내주셨다.
신경써주시고 정말 친절하고 편하게 대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라꼼마의 마지막의 진리는 바로 이 '커피'.
최고의 만족을 선사한 음식을 마무리하는 정직한 커피.
*
오늘 디너 정말 대만족이다.
라꼼마에서의 디너는 두 번째인데 가격이나 구성이나 맛이나...
나같은 음식이라곤 쥐뿔도 모르고 혀로 느끼는 것만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사람에게조차 라꼼마의 음식은 만족스럽다.
아뮤즈 부쉐, 애피타이저, 메인1, 셔벗, 메인2, 디저트, 음료...로 이어지는 코스의 가격이 4.8만(부가세 별도)이라는 것도
찾아보기 힘든 합리적인 가격인데(이것도 오른 가격이 이 정도다) 음식의 맛이 이토록 훌륭하다면
우리같은 사람들은 별다른 대안이 생길 수가 없다.
음식의 맛뿐 아니라 저녁 시간에 손님이 그토록 많아졌음에도 코스마다 음식이 서빙되는 인터벌 역시 전혀 무리없이 자연스러웠고,
특히 매니저님을 비롯한 홀 스탭분들의 꼼꼼한 서비스와 친절하고 편안한 응대는 음식을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주신다.
자주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