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모든 이미지는 직접 캡쳐한 이미지들입니다. 스틸 컷이 아닙니다.
Part 2 : 01 ~ 25
올해도 어김없이 한 해의 베스트 영화를 올립니다.
언제나처럼 이 포스팅은 그닥 반응이 좋지 않은 포스팅인데, 제 자신이 정리하는 의미도 있어서 꼬박꼬박 올립니다.
역시 올해도 2008년에 출시/개봉된 영화만이 아니라 제가 2008년에 본 영화를 중심으로 골랐습니다.
2008년 12월 10일 현재까지 제가 본 영화는 165편이며(TV 다큐멘터리등은 모두 제외), 그 중 50편을 뽑았습니다.
작년만큼 좋은 영화를 많이 본 것 같지 않고, 올해는 좀더 본능적인 영화를 많이 본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중에도
재밌는 영화들이 정말 많았죠.
순전히 개인의 주관적인 선정이니 재밌게 보신 영화가 여기에 빠졌다고 너무 나무라진 말아주세요.^^
제가 못 본 영화도 많아서 그런 영화들은 다 빠졌습니다. 예를들어 [놈놈놈]같은 영화말이죠.
1. [the Dark Kinght/다크나이트] (2008) directed by Christopher Nolan
이 정도의 완성도로, 이 정도의 텐션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영화적 완성도가 너무 완벽하여 오히려 숨을 쉬기도 힘들 정도의 압박을 지속적으로 전해주면서,
관객들에게 불쾌한 선택의 순간들을 계속 던져대는 얄궃음을 넘어선 도발까지.
카툰의 신화에서 떨어져 현실의 나락에서 허우적대는 배트맨의 당혹스러움은 테러에 대처하는 미국의 현주소를 위험스럽게 조망합니다.
2. [Wall-E/월-E] (2008) directed by Andrew Stanton
픽사 스튜디오의 작품들은 이제 그 어떤 대선배들(미야자키 하야오, 오즈 야스지로등)의 영향을 받는 수준이 아닙니다.
할 줄 아는 말이라곤 '이~~브(ㅓ)', '워~~~리' 밖에 없고, 지을 수 있는 표정이라곤 망원경 모양의 눈이 오르내리는 것과 LED가 반달이 되고
일자가 되는 정도밖에 없는 저 기계 캐릭터들이 가슴을 울컥하게 만드는 설레임과 짠함을 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라따뚜이]가 현재 애니메이션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감성이었다면, 그 스스로의 역사를 다시 업그레이드해버리는
픽사 스튜디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3. [No Country for Old Men/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7) directed by Ethan Coen, Joel Coen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이 [Spider/스파이더]를 기점으로 기존의 인간의 폭력과 육체에 대한 성찰이라는 기본적인 관심사는 유지하되
영화 문법적인 발상 자체가 달라진 것처럼, 코엔 형제의 또하나의 전환점은 아마도 이 영화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처절하고 잔인하게 지속되는 킬러들의 총질에도 불구하고 이와 병렬적으로 연결되지만 결국 아무 것도 하는게 없는 '노인'들의 나라.
4. [the Fall/더 폴] (2006) directed by Tarsem Singh
테리 길리엄 이후 맥이 끊긴 것으로 알았던, 세트에 의한 비주얼 쇼크를 정말 오랜만에 겪게 되었습니다.
혹자는 이 영화에 넘쳐나는 시각적 은유말고 남는게 없다지만, 전 뭘 남기고 자시고 할 것까지 물어볼 정도로
이 영화를 보면서 시간이 남아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환호했던 초기 웨스턴과 초기 영화들의 진중한 접근 방식이 고스란히 베어있는 황홀한 환타지.
5. [In Bruges/인 브뤼헤](2008) directed by Martin McDonagh
누군가에겐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고, 그 살아갈 만한 가치를 위해 자신의 가치를 내던질 수 있다는 건 아직도
이들에게 뜨거운 피가 흘러서일까요, 아니면 단순한 윤리적 자기 성찰일까요.
이 영화에선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킬러들이 '사람을 죽이기 거부하자' 벌어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것도 환상인지 현실인지 모를 묘한 분위기에서 이들이 서로 쫓고 또 쫓는 마지막 씬은 아마도 2008년 최고의 명장면이 아닐까 싶네요.
6. [There Will Be Blood/데어 윌 비 블러드](2007) directed by Paul Thomas Anderson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이제 입신의 경지로 한발자욱 더 내딛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숨막히는 드라이한 걸작도 좋지만 그의 [Punch-Drunk Love]같은 영화를 다시 기대해보고 싶은
마음은 점점 더 커지기만 합니다. 왜인지 모르지만.
7. [the 40 Year Old Virgin/40살까지 못해본 총각] (2005) directed by Judd Apatow
2007년 말부터 제가 가장 푹 빠진 영화라면 아마도 Judd Apatow 사단의 영화들일 겁니다.
지금 이 50선 안에도 이 영화 외에도 [Superbad], [Forgetting Sarah Marsall] 이렇게 두 편이 더 있지요.
Judd Apatow 사단의 영화가 제게 콕 박히는 것은 그야말로 '갈 때까지 간다'는 겁니다.
도무지 수습이 불가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곤 하지만 그 안에서 위선따위는 증발되어버립니다.
내가 가진 편견은 편견으로, 내가 가진 사랑의 방식은 사랑의 방식으로. 다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을
그 와중에 조금씩 배우게 되죠. 이건 Judd Apatow가 관객들과 얘기하는 소통의 방식입니다.
까놓고 얘기하면 이런거죠.
'너? 나? 다 다르고 살아온 것도 달라. 싸울 수 밖에 없고,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어.
그런데 난 내가 살아온 부분의 조금을 당신을 위해 바꿀 준비는 되어있어. 이제 그걸 보여줄께'.
8. [それでもボクはやってない/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2006) directed by 수오 마사유키
매년 꼬박꼬박 이런 난감한 영화들이 나오는 일본의 영화씬이 왜 전 더 부러운지 모르겠네요.
아직도 전 [마츠가네 난사사건]과 [까뮈따윈 몰라]를 못 봤습니다. 이 두 편 정말 보고 싶었는데... 영 기회가 안되네요.
저희 외삼촌과 키, 목소리, 얼굴 완전히 '클론' 수준인 카세 료의 놀라운 연기가 빛을 발하는, 지나칠 정도로 과작하는
수오 마사유키의 퍽퍽한 연출력이 그 빛을 발한, 어찌보면 모큐먼터리를 연상시키는 이 영화는 성장과 무관심으로
점철된 일본 동경의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조그마한 인권도 존중할 수 없는 일본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9. [Juno/주노] (2007) directed by Jason Reitman
울나라 [제니 주노]에 대한 표절 의혹에 대한 작가의 변은 영 시원치 않았지만, 보고나니... 도대체 뭐가 표절이라는
말인지 당췌 이해할 수 없었던, 정말 가슴 먹먹하게 만드는 성장 영화.
앨런 페이지의 연기는 분명 이 스펙트럼에서 조금도 옴싹달싹 못할 지 모르지만, 적어도 현재 진형형의 입장에서 그녀의 연기는 발군 그 자체.
또 상대적으로 스팟 라잇에서 비켜있는 마이클 세라의 연기 아우라는 거의 송강호의 느낌에 범접할 정도로 놀랍다고 생각되었네요.
드라마적인 한 방도 역시 묵직한 의미있고 사랑스러운 영화. 이런 영화는 반드시 우리 아이들에게도 권해줘야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10. [Superbad/수퍼배드] (2007) directed by Greg Mottola
어찌보면 이 영화에 나오는 저 3총사는 바보같고 저질스럽고 찌질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어딜가도 정상적인 캐릭터는 등장하지 않아요. 하다못해 가장 정상적인 듯 보이는 마이클 세라 역시 마찬가지죠.
그런데 이들은 마약과 맥주를 갖고 여자 아이들을 만나 섹스 한번 해보려는 1차적 욕구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가
좌충우돌 말도 안될 정도로 꼬이는 일에 휩쓸려 버리면서 서로 싸우고 부딪히며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들에겐 사실 아무 것도 나아진게 없지만 이들은 그 만신창이가 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삶과 부딪히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게...근데 전혀 교훈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게 Judd Apatow 사단 영화의 특징이라는거죠.
이러이러해서 이런 일이 있으니 이러해야한다...는 교장 선생님 훈화말씀이 아니라 정말 치고박고 갈 때까지 가면서
댓가를 지불해가며 그들은 이러한 삶의 메커니즘을 조금씩 배웁니다. 그리고 이해하려고 하죠. 친구를, 그리고 이성을.
11. [Control/컨트롤] (2007) directed by Anton Corbijn
이 영화는 다른 선정의 변이 필요없습니다. 샘 라일리가 너무 잘 재현해낸 이언 커티스의 재래.
그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서 본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죠.
마지막 그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스스로 삶과 이별할 때 그 심정이 가슴에 꾹꾹 전해져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마저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언 커티스'가 누군지 모르세요? 상관없습니다.
12. [Boy A/보이 A] (2007) directed by John Crowley
보는 내내 '잭'의 과거가 어쨌든 새로운 모든 것 앞에서 설레이고, 두려워하며 용기를 내어 나가는 '잭'을 응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보는 내내 조마조마해집니다.
이런저런 도처의 순간순간의 상황들이 너무나 가느다란 실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것처럼 불안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영화는 묻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삶의 기회를 그가 온전히 받아들일 자격이 없냐고.
그리고 그 삶의 기회를 빼앗고 단죄할 자격이 있는 이들은 누구냐고 묻습니다.
13. [Forgetting Sarah Marshall/사랑도 변하나요?] (2008) directed by Nicholas Stoller
Judd Apatow 사단의 영화 중 가장 말랑말랑한 영화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쎕니다. -_-;;;
이 영화 보신 분이라면 이 캡쳐 이미지의 섹스 장면을 보자마자 웃음이 터졌을 거에요.
Judd Apatow는 확실히 그동안 그냥 화장실가서 배설하고 물내리면 그만이었던 패럴리 형제들의 영화에 사람의 숨결을 불어넣은 작자입니다.
그덕에 그의 영화들은 쎄면서도 설득력이 있죠.
14. [Gomorra/고모라] (2008) directed by Matteo Garrone
이 영화는 [City of God]을 연상시킵니다.
베를루스코니 집권 이후 완전히 망가져버리는 이태리의 남부 나폴리를 아주 피폐한 시선으로 그려냅니다.
이곳엔 이탈리아가 과거에 반추했던 네오 리얼리즘의 노스탤지어식 추억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이곳엔 그저 하루가 멀다하고 죽어나가는 사람들과 그 공포 속에 만성이 되어 자신이 살기 위해 어릴 때부터
총을 잡고 트리거를 당기는 군상들만 넘칠 뿐이죠.
이 활개치는 카모라(Camorra)라는 갱집단 때문에 서민과 농민들이 완전히 붕괴된 모습을 아주 차갑고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밀착해서 잡아내는 카메라엔 그들에 대한 감상따윈 조금도 끼어들지 않죠.
그래서 제목이 성서의 '고모라'입니다. 신이 포기한 도시 '고모라'. 그리고 그 어감은 갱조직 '카모라'와도 유사하죠.
바로 이런게 이탈리아적 악몽이라는겁니다.
신자유주의와 경제권역통일등... 그 끝의 말로에서 서민과 농민들이 겪을 피폐한 말로를 이 영화는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남미나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게 아니라... 저희가 선진국으로 '알고'있는 남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답니다.
15. [은하해방전선] (2007) directed by 윤성호
영재가 은하에게 고하는 메신저의 감성은 아주 짠합니다.
이 영화는 정말 맨정신으론 할 수 없는 멜로를 가득 담고 있으면서 대상을 보듬아 안는 괴력을 발휘합니다.
영재는 오히려 아주 자신에게 솔직합니다. 너무 솔직해서 사실 아주 투명해보이기조차 하죠.
그의 찌질함에 화가 나고 어이가 없기도 하지만, 그는 자신이 머리에 담은 걸 다 꺼내보여야 하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말과 생각에 익숙한거죠.
또 그렇기 때문에 은하와 소통할 수 없습니다.
보석같이 빛나는 한국의 진정한 인디 영화.
16. [Son of Rambow/선 오브 람보] (2007) directed by Garth Jennings
영화 속 진부한 어른들의 모습은 표현의 클리쉐가 아니라, 일상의 클리쉐일 뿐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반응하며 사회화를 이루며, 그 심한 열병 속에서 하루하루 성장해나가는, 정말 올해본 최고의 성장영화 중 한 편입니다.
이들을 '선도'라는 미명 하에 통제하려는 어른들의 보수주의적 행태는 끝까지 답답하기 짝이 없지요.
17. [Waitress/웨이트리스] (2007) directed by Adrienne Shelly
이 몽환적이기까지 한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나니 더더욱 애드리언 쉘리의 죽음이 안타까울 뿐이죠.
마치 데이빗 린치가 말랑말랑한 로맨스 영화를 만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은 이 몽롱한 기운의,
하지만 범상찮은 메시지와 통찰력을 지닌 이 놀라운 영화는 저의 완소 영화인 [Factotum]에서 소설가 지망의 개망나니 맷딜런의 여자로 나왔기도 하며,
뭣보다 Hal Hartley 감독의 전성기인 1990년 발표한 [Trust]에서 나왔던 그 앳된 여주인공인 Adrienne Shelly의 데뷔작...이자 유고작이 되었네요.
18. [Efter Brylluppet/After the Wedding] (2006) directed by Susanne Bier
Mads Mikkelsen(매즈 미켈젠)의 연기는 이미 [Adams æbler]에서 절절하게 경험한 바 있지만 이 영화에서도
그야말로 '정중동' 연기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영화의 말미에서 야콥(매즈 미켈젠)의 결심에 따라 물질적인 풍요를 입게되는 봄베이의 그 아이들이 정말로 행복해지는 것인지,
아니면 야콥이 그 아이들에게 말했던 대로 바보들이 가득한 부자 흉내내기, 바로 그 시작점이며
선의를 가장한 식민자본주의의 다른 한 형태일 뿐인지 진중하게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이데올로기적 문제를 넘어서 이 영화는 생의 마감을 앞두고 자신의 가족을 배려하는 이의 절절한 감성을 그려내고 있고,
그의 가족애에는 일말의 이데올로기따윈 개입하지 않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준다.
19. [the Visitor/비지터] (2007) directed by Thomas McCarthy
[the Station Agent]로 아주 인상깊었던 Thomas McCarthy(토마스 맥카시)감독의 07년작.
서로 상처받고 닫았던 마음을 가진 이들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지나친 기대가 다시 상처받고 이를 치유하는 과정을
드라이하게 그려낸 토마스 맥카시.
이번엔 911 이후 더욱 삭막해지기만 하고, 테러에 대한 보호라며 오히려 수많은 인권 유린과 위선과 권위로 똘똘
뭉쳐 일그러져가는 미국의 모습을 월터 베일(리차드 젠킨스) 교수에게 일어나는 해프닝을 통해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한없이 긴 여운을 남겨주는 영화.
20. [Brand upon the Brain/브랜드 어폰 브레인] (2006) directed by Guy Maddin
Guy Maddin의 2006년작인 이 영화 역시 기존의 Guy Maddin 영화의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와 일렉트라 컴플렉스등은 역시 또다시 반복되고 있으며, 수많은 은유의 상징들이 영화 전체에
아주 넘쳐납니다.
12 챕터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오랜만에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름모를 섬으로 다시 돌아와
부모님이 운영하던 등대 고아원을 하얀 페인트로 겹겹이 칠하는 Guy(감독 이름과 동일합니다)라는 남자가
아무리 두텁게 발라도 지워버릴 수 없는 족쇄같은 과거와 마주하며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런 흔히 말하는 예술 영화가 지루할 거라는 속단은 버리세요.
챕터 3만 넘어가면 도무지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고, Jason Staczek의 가슴을 저미는 듯한 현악과 소품으로
이뤄진 오리지널 스코어를 들으며 몽환과 공포, 그리고 극도의 트랜스섹슈얼, 에로티시즘, 성장통을 모조리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도 엄청난 상징성을, 지적 편향성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Guy Maddin의 거침없는 의욕과잉의 비주얼과 함께 말이죠.
21. [Stuck/스턱] (2007) directed by Stuart Gordon
스튜어트 고든의 [stuck]은 근본적으로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지닌 미국 사회, 나아가서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비꼰 스릴러라고 볼 수 있는데,
지적인 화이트 칼라임에도 순식간에 해고당하고 구직하지 못한 채 결국 방값도 못내고 쫓겨나는 바르도,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지만 더 많은 희생을 '승진'을 담보로 강요받는 또다른 피해자 브랜디, 현실에서 도피한 이들에게 약을 팔며
이를 빌미로만 관계를 가지려는 남자친구 라쉬드, 시스템을 빌미로 융통성과 독해력이 턱없이 부족한 구호기관들,
정해진 메뉴얼만 고집하는 경찰들, 강제 추방을 당하지 않으려고 위중한 상태의 생명을 외면해야하는 히스패닉 가족등.
우리가 봐왔던 모든 미국의 사회적 시스템적 병폐들을 깡그리 이 영화 속에서 목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튜어트 고든은 그 잘못이 갈등을 일으키는 개개인의 대립 관계가 아니라, 이러한 기본적인 생계에의
욕구를 담보로 양심의 종말을 종용하는 미국이라는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시스템의 문제라고 분명히 못박습니다.
22. [Kung Fu Panda/쿵후 팬더] (2008) directed by Mark Osborne, John Stevenson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견지하는 이야기에는 쉽게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어찌보면 하찮은 자신이 노력과 '타고난 재능'(사실은 타고난 재능이었습니다)에 의해 각성하고 전설의 용전사가 되는 것인데,
그 '용전사'가 되는 여정에서 필요한 것은 훈련이 아니라 '각성'이었던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이렇게나 높이 올라와있는건 그 영화적 재미가 만만치 않았다는 이유겠죠.
23. [Lars and the Real Girl/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2007) directed by Craig Gillespie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영화.
사랑에 대한 낡은(하지만 견고한) 고정 관념과 관계에 대한 허구와 진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
그러나... 참 너무 좋은 사람들이 가득한 이상적인 마을.(그런 마을이란 전제가 되어야 이런 시선이 가능하다는 얘기인가...)
24. [the Man from Earth/맨 프롬 어스] (2007) directed by Richard Schenkman
이 영화의 각본은 [스타트렉]과 [Twilight Zone]의 각본가였던 Jerome Bixby가 30여년에 걸쳐 쓴 것이라고 합니다.
오랜 공을 들인 대본답게 이 영화는 조금도 지루함없는 재미를 선사하고 게다가 역사를 다루는 능숙한 솜씨에 의해 지적 희열마저 던져줍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영화는 종교를 맹신하는 세상에 던져주는 종교의 근본과 이를 대하는 바른 성찰의 자세에 대해 얘기합니다.
영화에서 존 올드맨에게 '신성모독'이라며 날을 세우는 교수의 모습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포용을 얘기하지만 결국은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신랄한 자화상 그 자체입니다.
인류의 전 역사를 얘기하지만, 존 올드맨은 자신이 살아온 긴 시간을 조금도 우쭐대거나 확언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인류와 함께 더불어 깨달아 간다는 사실의 의미를 이미 터득한 것이니까.
놓치지 않고 볼 영화 중 한 편입니다.
25. [C.R.A.Z.Y/크레이지](2005) directed by Jean-Marc Vallée
성정체성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수가 국내에도 상당히 많다고 한다.
이들은 늘 사회적 통념과 윤리의 울타리에서 버겁게 부딪히며 오늘도 고민하고 있다.
스스로를 힐난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까지 하게 되거나 아니면 사회의 변두리에서 퇴락한 삶으로 하루하루 연명하기도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러한 사회보편적 인식은 모두가 '가족제도' 내에서 강요받게 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가족제도 내에서 길들여지지 않는 정체성은 결국 사회에서도 방기하며 그 즉시 이단아로 낙인을 찍히는 법이다.
이러한 도덕적 강압주의가 더욱 팽배한 한국에서, 성정체성으로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지만 진실된 마음으로 힘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