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가 곧 상륙한다.
2013년 후반이라지만 사실 여지껏 살아오면서 봤듯이 정신없이 살다보면 반년 또는 일년은 전혀 상대방에게 준비할만한 여유로운 시간이 못된다.
이케아가 국내에 입점을 타진한 건 아시다시피 어디 한두번이 아니다.
수차례 입점 타진을 했었으나 시장조사 후 입점을 포기했고, 그동안 국내의 가구 메이저라는 회사들은 턱없는 마진을 가구에 갖다 붙여 배를 든든히 채워왔다.
그런데 그렇게 든든히 채워진 주머니를 미래의 비전을 보고 재투자를 했느냐하면 그렇다고 말하기 쉽지 않다.
최근 한때 가구 메이저였다는 R사가 상상을 초월하는 세금탈루에 대한 과징금을 얻어맞은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 소득은 상대적으로 적고, 사회의 공적투자가 턱없이 적어 선진국처럼 개인 소득대비 가구/인테리어 지출비용이 10%가 넘는 나라들과는
가구/인테리어에 대한 인식자체가 비교가 안되는 상황인데, 메이저 가구 업체들이 지속적인 경쟁과 개발을 통해 대중의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해나갔느냐하면
결코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기대할 수조차 없었던게 사실이지.
그러다가 소득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온라인 쇼핑몰이 활성화되고, 고객들은 발품팔아 매장가서 없는 상품 카탈록으로 보기보다
뷔페메뉴마냥 깔려있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입하는 것이 대중화되자 전례없던 가격 경쟁이 발발하고,
대표적인 마진장사품목 중 하나였던 가구는 순식간에 가장 '남는 것 없는 장사' 중 하나가 되어버린다.
실례로 우리들이 메이저 쇼핑몰의 가구 카테고리에서 베스트셀러라면서
판매되는 일부 가죽 소파의 경우 1개 팔아 순이익 5~6만원을 남기고 파는 상품들도 만나볼 수 있으니 말이지.
저가의 경우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저가라는 건 단순히 가격이 저렴하다는 문제가 아니라, 가격이 저렴하다는 프레임 안에 모든 생산과정일체가 닫혀버린다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가격경쟁을 해야하니 창의적인 디자인을 시도할 수 없다. 창의적인 디자인은 기성의 틀에서 벗어나므로 손이 많이 가거나 기성자재가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당연히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디자인에 맞는 자재라는게 있으니 자재 역시 달라지게 된다. 이러한 시도들을 저가라는 프레임 안에서는 절대로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뻔한 디자인에, 뻔한 재질, 그리고 보이지 않는 부분의 디테일들을 무시하며 형태만 대충 잡아놓은 물건이 득세할 수 밖에 없고,
이러한 물건들을 대량으로 팔아먹으려면 가격을 후려칠 수 밖에 없다는거다.
좋은 상품이 시장에 나올 리가 없지.
그나마 2005~2007년 온라인 가구시장은 활황기여서 재미라도 볼 수 있었으나 온라인 과당경쟁이 심화되고
경기지표가 악화되기 시작한 2008년 후반부터 온라인에서 가구를 팔아 재미를 본다는 건 일부 업체에 해당되는 얘기일 뿐, 대부분 업체들은 입점->폐점을 반복했다.
그 와중에 가구 메이저 업체들은 온라인 브랜드를 따로 만들어 기존의 자신들 제품 가격보다 저렴하게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저가 가구와의 가격 격차가 급격하게 줄어들자 소비자들은 이왕이면 메이저제품...이라면서 메이저 가구의 온라인브랜드 제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었으나 그 덕분에 비브랜드 가구들은 중국산 저가 수입품과 메이저 온라인브랜드 사이에 끼어,
공장을 폐업하거나 메이저 브랜드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거나, 중국등에서 가구를 들여와 컨테이너 장사를 하는 쪽으로 내몰리기 시작했다.
메이저 가구 브랜드들은 저렴한 가격을 지향한답시고 하청업체들을 그야말로 '조지기 시작'했는데,
실제로 2+2 스타일의 가죽소파 완제품을 공임 11만원에 만들어내라고 압박하기도 한다.
끝이 없는 악순환이지.
도대체 이렇게 비정상적인 가구 문화가 조금의 발전도 없이 헤매는 이유는 무얼까.
첫째는 성장 우선주의의 경제 목표를 통해 과거의 사회적 목표였던 의식주 해결을 어느 정도 해결한 후에
개인의 가치와 사회의 다원성에 대한 철학적인 담론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로 우린 '잘 살고', '잘 먹고', '출세하는 것'이 목표일 뿐 '어떻게' 잘 살고, 어떻게 '잘 먹고', '어떻게' 출세하는 것에 대한 담론이 극도로 부재하다.
과거를 부정하고 다 싸그리 엎어버리고 새로 아파트를 짓고, 비슷한 주거 공간에 비슷한 삶의 방식과 삶의 가치를 은연 중에 강요받고,
나와 남이 다르다는 걸 수용하기보다는 '나는 남보다 못할 것이 없다'라는 인식이 중심에 서게 되니 외형적으로 보여지는 것들에 더욱 치중할 수 밖에 없다.
차, 멋진 가전에는 무리를 해서라도 돈을 투자하지만 인테리어에는 월 3%의 비용도 쓰지 않는게 이를 방증하지.
둘째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득세한 아파트 문화를 꼽겠다.
이케아가 국내 시장진출을 몇번을 조사하고 미뤘던 이유 중 하나는 한국에서 DIY가구 문화가 뿌리내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던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인데
이를 조금 더 생각해보면 아파트 문화가 얼마나 개성적인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옭죄는 주범인지 알 수 있다. 한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흔히 보는 헐리웃 영화나 유럽 영화들을 보면, 그들은 우리처럼 이렇게 아파트나 맨션에 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독채에 차고를 두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차고는 일종의 창고 역할도 하면서, 집 앞에는 낮은 펜스들을 만들어놓기도 하고 말이지.
자신들이 직접 중고 가구 또는 DIY제품을 들고 차고로 갖고 와서 조립도 하고 리모델링도 하는 걸 우린 영화 속에서도 수도 없이 봐왔다.
그러니까 이런 DIY가 문화로서 정착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프라가 어느 정도 준비되어있다는 거다.
반대로 우리나라의 경우는 대부분 아파트다. 독채도 여유로운 마당과 차고를 갖고 있는 집은 이른바 '부잣집'들이지.
대부분의 경우 DIY 가구를 조립해야하는 곳은 거실이 될 것이고, 퇴근하고 들어와 피곤해죽겠는데
거실에 DIY 가구 조립한답시고 널부러 뜨려놓으면 짜증부터 날 분들이 그렇지 않은 분들보단 훨씬 많을거다.
셋째는 흉내내기에 급급한 가구 업체들과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하겠지만 이를 유통하는 메이저 온라인 업체들의 문제를 들겠다.
이 부분은... 말할 필요도 없고, 위에도 언급했으니 각설.
그렇다면...
이케아가 국내에 스토어를 정식 오픈한다면 어떤 일이 생기게 될까?
이케아가 정식으로 들어오지 않은 상황에서 대중들에게 어떻게 어필을 하고 있는지를 대략적으로라도 가늠하려면
해이리의 아이컴퍼니 매장을 가보면 아주 약간의 답을 얻을 수 있다.
인테리어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고 그저 이케아 제품을 깔아 놓은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일이고 주말이고 붐비는 매장. 주말엔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몰려오는 사람들.
해외출장을 나가 이케아 매장을 가보면 함께 간 일행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지.
우리나라에 정식 매장이 들어오면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거다. 해이리의 매장에 몰려오는 수준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이케아에 대해서 내 솔직한 생각을 말하자면,
이케아(IKEA)는 가구,소품을 비롯한 인테리어 전반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치 않은,
적정한 수준의 디자인에 원스탑 쇼핑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곳을 희망하는 이들에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을거란 생각이다.
그 정도의 디자인에, 유기적인 확장성을 가진 제품을 그 정도 가격에 구입한다는건 기적과 같은 일이니까.
단지, 이케아는 위에서 언급햇듯 '가구/인테리어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치 않은' 분에게 화수분같은 기쁨을 주는 곳이라는거.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이케아는 싸기만 한게 아니다'라고 힐난하실지 모르지만.
이 말은 결코 이케아를 폄하하는 말이 아니다.
그만큼 대중의 라이프스타일에서 필요한 제품을 적절한 스타일과 품질을 갖춰 보유하고있는 이케아의 무서운 대중성에 대한 언급일 뿐이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에서 언급한 '가구/인테리어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치 않은' 범주에 속하는 우리나라이기에 이케아는 더욱더 폭발적인 인기를 얻을 것이다.
아마... 스토어가 마비될 지경이겠지.
오픈한지 오래 되지 않는, 논현동에 위치한 L사의 라이프스타일 샵?
그저 좀 괜찮은 소품들과 자사 가구를 모아놓은 장난같은 곳이 되는거지.
이케아의 저렴한 그릇들은 덴비(DENBY)로 대채하고, 이케아의 저렴한 러그들은 파펠리나(스웨덴산)로 대체했을 뿐이니까.
이케아의 풀카탈록 몇년째 보다보면 모던 디자인을 갈구하는 이들에겐 어지간한 디자인은 죄다 있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월유닛이 대단히 발달되어있고.(자가가 아닌 경우는 월유닛을 맘놓고 쓸 수 없겠지만)
사실 가구업계에서 일하는 나 역시 이케아가 해외시장과의 차별없이 그 컨셉/가격 그대로 국내에 들어온다면 흥하길 바란다.
시간이 흐르면 수도없이 많은 가구업체들이 줄줄이 나자빠지겠지만,
변화의 조짐이라곤 털끝만큼 밖에 보이지 않는 한국의 가구 시장은 대중과 미학을 위해서라도 한번 제대로 검증받을 필요가 있다. (참... 잔인한 말이지만)
몇년 전부터 슬슬...
북유럽 가구 바람이 불어왔다.
사실 그때는 성장 한계에 막힌 업체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바람이기도 했는데, 이 업체들은 그러한 북유럽 스타일을 또다시 저가버전으로 한심하게 변종시켜 팔아먹었다.
그러다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대중들의 욕구를 중심으로 북유럽 가구가 소개되기 시작했는데
북유럽 가구 디자인을 얘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핀율(Finn Jhul)의 전시 뿐만 아니라 이 블로그에서 소개했던 여느 북유럽 가구 전시들도 대중들의 관심을 받으며,
특히 젊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자신이 사용할 가구를 본격적으로 검증하고 고르는 분위기가 많아졌다.
그리고 가장 소비자의 흐름을 잘 읽고 양질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애쓰는 '카레클린트'(원래는 디자이너 이름)같은 젊은 가구 업체들이 호응을 받기 시작했고.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이케아의 광풍에서 살아넘으려면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승부를 걸어선 답이 안나오고, 이렇듯 스스로의 아이덴터티를 확고히 해야하는 법이지.
그럼 자문한다.
내가 일하는 회사는 그러한 아이덴터티를 확보하고 있을까?
이런 자문을 하고나면 마음이 너무너무 싱숭생숭해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