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am Greenberg (애덤 그린버그)


화요일 오전,
출근길에 들었던 mbc 라디오 '굿모닝 FM 이진입니다'에서는 

매주 화요일 고정 게스트인 스포츠 경향의 이용균 기자가 '불굴의 슈퍼스타'란 주제로 애담 그린버그라는 야구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줬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스포츠를 통한 감동에 머물지 않고 대중들이 공감대를 형성한 뒤 요구사항을 주장하고 이를 수용하는 기득권의 자세, 

그로인해 드라마틱한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는 과정이 제대로 느껴지게 되어 무척 인상적이었다.

애덤 그린버그는 마이너리그 선수생활을 하다가 2005년 야구선수라면 누구라도 꿈꾸는 메이저리그 무대에 드디어 올라서게 되고, 

시카고 컵스의 유니폼을 입고 당시의 플로리다 말린즈를 상대로 9회 대타로 첫 타석에 서게 된다.
하지만 정말 불운하게도 그는 초구에 상대 투수의 강속구(약 148km)를 그대로 머리에 얻어맞아 쓰러지게 되고, 그렇게 메이저리그 경력을 끝내버리게 된다.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 정도의 후유증을 겪게 되었지만 야구를 그만두지 못했고,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면서 후유증과 싸우던 그의 모습을 보던 대중들은 그에게 '한 타수만 더'라는 의미의 

'one at bat (포볼이나 사구등의 타석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배팅찬스를 잡는 타수) 운동을 전개하게 되고 10만명 이상의 팬들로부터 서명을 받아내게 된다.
여기까지는 있을 수 있을 법한 대중들의 연대 운동이라고 볼 수 있는데, 대중들의 요구를 '현실적으로는 힘들다'는 말한마디로 

사실상 묵과하기 일쑤인 이 나라와 달리 메이저리그 일부 구단은 이러한 대중들의 요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단다.

사실 알다시피 마이너리그의 선수를 메이저리그에 올려 한 타수만 더 준다는 건 쉬워보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려면 한 팀의 40인 로스터에 들어야하는데 그럼 다른 선수가 마이너리그로 내려가야한다는 말이 나온다.
잠시 내려갔다가 바로 올라올 수도 없을 뿐더러 메이저리그 선수들 중 상당수는 마이너리그행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있고, 

전력외 선수인 애덤 그린버그 대신 실제 전력이 되는 선수를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낸다는게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는거다.
결국 애덤 그린버그를 맞춘 투수가 속했던 마이애미 말린즈(구 플로리다 말린즈)의 투수 한 명이 마침 부상으로 마이너리그에 내려가게 되면서 한자리의 여유가 잠시 생겼고, 

애덤 그린버그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애덤 그린버그 선수와 단 하루짜리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게 된다. 
그리고 얼마전, 단 한개의 공으로 메이저리그 경력이 끝났던 애덤 그린버그는 그에게 불운을 안겨다 준 메이저리그의 무대에 다시 설 수 있었다.
그린버그가 다시 메이저리그 경기에 모습을 드러낼 때 경기장에 울려퍼진 음악은 Aerosmith(에어로스미스)의 명곡 'Dream on(드림온)'이었고.

그와 상대한 투수는 올시즌 메이저리그 20승을 기록한, 그 치기 힘든 너클볼을 주무기로 삼는 R.A 디키였고, 디키는 시합 전 인터뷰에서

'그(애덤 그린버그) 역시 똑같은 메이저리그 선수이다. 난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공언했다. 그리고 공언한대로 자신의 주무기인 너클볼을 세개 연속 던져 3구 3진을 잡아냈다.

그린버그가 디키를 상대로 3구3진 당한 시간은 33초.
오랜 기다림 끝에 꿈같은 메이저리그 무대에 다시 오른 그가 타석에 있었던 시간은 단 33초였다.
하지만 그린버그는 경기 후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며 정말 행복해했고, 자신처럼 후유증을 겪는 선수들에게 결코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경쟁 사회에서 적절한 기회를 붙잡지 못한 이에게 대중들이 따뜻한 관심을 잊지 않았다는 점도 놀랍지만, 

이러한 대중의 요구를 결국 이해와 합의를 통해 관철시킬 수 있었다는 미국 사회의 메커니즘을 접하면서, 

이젠 끝물이라는 미국 사회가 그래도 우리의 병약하고 미진한 사회보단 훨씬 희망적이구나라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었다.
애덤 그린버그의 이 이야기는 그런 의미에서 내게 상당히 큰 울림을 주더라.






'Dream On' - Aerosmith

난 에어로스미스를 그닥 좋아하진 않았지만 이곡만큼은 내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베스트 송이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