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23 한미사진미술관 '마리오 쟈코멜리 (Mario Giacomelli), the Black Is Waiting for the White' → 상수동 모던한정식 '춘삼월 (春三月)'
한탄과 눈물, 좌절만 가득했던 며칠.
아직도 아침에 일어나면, 기사를 접하면 알아서 해치워대는 잔혹한 실상에 치를 떨게 된다.
기다렸다는 듯 자행된 노조에 대한 용역들의 폭력, 그리고 불과 3일만에 세명의 노조원이 자살하는 잔혹한 현실.
앞으로의 5년은 지금까지의 5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혹독할 것이라는 걸 절감하게 된다.
멀리 다녀오고 싶었다.
내가 고인을 지지했든 안했든 상관없이 봉하마을에라도 다녀오고 싶었다.
몰염치와 파렴치함, 비상식이 아니라 그릇된 가치가 보편적인 잣대가 되는 이 미쳐버린 한국이란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할지조차 막막해진다.
오전 aipharos님과 길을 나섰다.
aipharos님 친구를 픽업해서 오전에 한미사진미술관으로 왔다.
한미약품 빌딩의 꼭대기에 위치한 한미사진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흑백 사진의 마술사인 '마리오 쟈코멜리 (Mario Giacomelli)'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빌딩 경비 아저씨께서 미술관에 인터폰 연락해보시더니 아직 오픈 전이라고 친절히 알려주신다.
그래서 로비에서 잠시 떠들었다.
경비 아저씨께서 올라가도 좋다고 말씀해주셔서 올라왔다.
미리 말하지만 이 전시, 우리가 1시간 정도 보고 나가는 동안 한명도 찾아온 관객이 없었다.
이 좋은 전시를.
안타깝더라.
아... 너무 좋구나.
한미사진미술관 20층 로비다.
가슴이 트인다.
전시는 20층, 그리고 19층에서 진행 중이다.
20층만 보고 전시 규모가 작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 19층은 전시규모가 제법 된다.
사제들의 모습을 다룬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놀라운 흑백 사진들이 내 앞에 펼쳐진다.
노출과 대비가 극단적이기도 하지만 현상하면서 주제를 명확히 하기 위해 배경을 날려버려 흑백의 극명한 대비를 이끌어낸다.
이러한 작업은 피사체의 다양한 모습과 표정을 더욱 도드라지게 해주면서 정적인 프레임 속에서 사제들의 웃음과 희노애락이 전해질 법한 역동성을 전해준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들을 담아내는 듯한 그런 느낌이 아주 강하게 전해진다.
19층으로 내려간다.
스카노 (Scano) 시리즈.
전시 규모가 상당한 편이어서 마리오 쟈코멜리의 진면목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자연에 눈을 뜬 초기, 대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통해 깊은 철학과 미학적 가치를 표현한 다양한 인물 사진들,
그리고 불온한 영혼을 명멸시키는 듯 뜨겁게 흔들리는 추상적인 후기작품들...
뭐하나 허투루 볼만한 작품이 결코 없다
무엇보다 프레임 자체가 대단히 실험적이면서도 과감하다.
간혹 극단적이기까지 한데 정적인 프레임 자체로서도 자연스러운 내러티브를 갖는 듯한 느낌은 도대체 왜인지 모르겠다.
포토샵으로 손쉽게 사진을 만지는 지금과 달리
이때는 작가들의 축적된 경험을 통해 현상 과정에서 자신의 의도에 맞는 결과물을 내기 위해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었을 듯.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죽음이 찾아와 너의 눈을 앗아가리라>
근래 본 초상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3연작.
이토록 강렬한 초상을 흔히 접할 수 있을까?
루르드 (Lourdes)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프랑스의 성지 루르드에 기적을 바라고 몰려드는 환자와 장애인들.
몽환적인 로맨티시즘.
이 전시,
사진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분들에게 절대적으로 추천한다.
사진이라는 것이 철저히 장비에 의존하면서 미학적인 담론은 없이 너나할 것 없이 작가랍시고
극단적인 선예도와 그럴 듯 감성적이라는 사진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충분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사진전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날은 추웠지만...
전시가 너무 좋아서 추위 따위는 다 잊어버린 날.*
도록 가능하면 구입하시길.
작은 도록 말고 큰 도록.
전시작들은 거의 다 나와 있으며 충실한 편.
가격은 60,000원인데 현재 54,000원으로 10% 할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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