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곡성>은 <추격자>, <황해>를 통해 이어져온, 나홍진 감독이 그려왔던 초인(超人)적 악마성의 확장판이란 생각이 들었다.
<추격자>의 하정우, <황해>의 김윤식이 연기한 캐릭터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악마성에 빙의되다시피한 캐릭터들인데 특히 김윤식이 연기한 <황해>의 캐릭터에 이르러서는 인간이 아닌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의 초인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홍진은 어정쩡한 선의(善意) 정도는 악마성의 초월적 힘을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하다는거지.
나홍진 감독은 <곡성>을 발표하면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범죄에 희생당한 사람들이 어떤 동기 또는 목적으로 희생당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초월적인 이야기로 넘어가버린 것 같다는 말을 했었다.-정확히 이런 워딩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아무튼 비슷한 의미였던 것 같다-
그는 악마적 범죄가 가진 초월적인 힘에 매력을 느꼈을 지도 모르고, 그 악마성을 초월적 형태로 구체화시키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 속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철저히 소모되는 경향을 자주 보게되고 기껏해야 초인적 의지나 힘으로 대항하는 대상 정도가 돋보이는 경우가 많지.
<곡성>에선 외지인, 무명, 일광이라는 사실상 초인적 존재에 맞서 대항할 이가 없다. 그저 그들이 던져놓은 미끼를 물고 속절없이 희생당하거나 발을 동동 구르며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잘 것 없는 저항을 하며 그들의 악마적 폭력성에 동화되어갈 뿐이다.
미끼를 왜 던지냐, 무슨 목적이냐고 말하는 분들도 있던데 그런거 없다고.
그냥 낚시하듯 미끼를 던지는 거라고.
(그리고 애당초 이렇게 영화 시작에 미끼를 던져놨으니 나홍진 감독은 그 어떤 구조적 의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 의미없는 미끼질 한 가운데,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경찰 종구(곽도원)가 있다.
이 영화 <곡성>은 영화가 시작되면서 보여주는, 낚시하는 외지인(쿠니마루 준)의 모습이 영화의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이 장면은 2시간 30분에 이르는 러닝타임이 결국 아주 그럴듯한 한편의 사기극이라는 걸 말해주는 장면이라는 생각도 든다. 미끼를 정성껏 꼬아 놓았으니 이 영화를 보는 당신들은 이 미끼에 낚여 한바탕 잔혹한 굿판을 벌이게 된다는 말이지.
(사기극이라고 말하기가 상당히 조심스럽긴 하지만, 난 이 영화를 본 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항간에선 이 영화가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으며 그것 역시 감독이 의도한 바라는 이야기를 하던데(정말 감독이 그런 얘기를 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렇게 장면장면의 진의를 캐물어나가는 나를 포함한 관객들의 시도 자체가 이미 감독이 처놓은 미끼를 덮석 무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렇듯 영화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미끼'라는 장치는 사실상 초월적 존재에 가까운 세 캐릭터에 의해 각각의 행태로 그려진다.
두려움, 의심을 통해 미끼를 물게하려는 자.(또는 존재),
신뢰를 통해 미끼를 물게하려는 자.
그리고 영험한 신기를 갖고 있음에도 반복되는 비극을 막아내지 못하여 결국 이 둘을 없애거나 쫓으려는 자.(또는 존재)
이렇게.
세명의 캐릭터에 대한 이해만 선다면 이 영화를 이해한다는 것이 그닥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분명히 교차편집에 의한 애매한 맥거핀이 존재하고 설왕설래할 부분들이 존재하지만 기본적인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는데는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나온 분들이 '그럼 일광은 누구에게 살을 날린 것인가?', '그럼 일광은 언제부터 외지인과 한통속이 된것인가?'등등의 문제를 갖고 논쟁을 벌이시던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생각보다 명확해보인다.
위에서 말했듯 외지인은 두려움과 의심을 통해 미끼를 물게하는 자다. 이건 무명과 종구의 마지막 대화에서도 드러나고,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 동굴의 외지인을 찾아간 사제를 통해 명확하게 확인된다.
이에 반해 일광은 신뢰를 통해 미끼를 물게 한다.
결과적으로 종구는 외지인의 미끼와 일광의 미끼를 동시에 물게 된거지.
이 두가지의 상반된 미끼가 전혀 다른 상반된 의도를 갖고 있다고 판단한 종구가 처음으로 효진의 목숨을 스스로의 의지로 살리게 되는 순간이 바로 일광의 굿판을 뒤집어 엎어버린 순간이다.
물론... 끝까지 종구는 그 미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명의 말을 믿지 못하지만.
(무명이 닭이 세번 울기 전에 집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지만 설령 닭이 세번 울고난 뒤에 집에 들어갔다면 참극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닭이 세번 울기도 전에 집에 들어갔을 때 이미 참극이 벌어진 뒤였는데 무슨 소리냐고 할 수 있지만 생각해보면 악마가 그려놓은 악몽같은 환영을 깨버릴 수 있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뭐 아닐지도 모르고)
이러한 미끼에 빠져들었다는 사실을 조금도 인지하지 못한 종구는 결국 외지인을 없애버리기로 한다.
소심하고 겁많기 짝이 없는 종구가 사람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외지인을 죽이기로 한거지.
그러한 결심을 하기 전에 그는 이미 동료경찰, 동료 경찰의 조카인 젊은 사제와 함께 외지인을 찾아가서 그가 키우는 개를 곡괭이로 때려죽이기도 했다. 애당초 종구는 그 외지인을 조사하고 심문할 목적이었지 폭력을 행사할 의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외지인의 제단에 올려진 딸의 실내화를 보곤 피가 거꾸로 솟아 내재된 폭력성을 숨기지 못하고 터뜨려버린 것이지.
문제는 종구가 자신이 보여준 폭력의 모습을 정당방위로서의 '폭력'으로 합리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종구는 자신의 물리적 위협이 씨알도 먹히지 않자 결국 동네 지인들을 모아 외지인을 응징하러(죽이러) 간다.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종구는 문제 해결을 과학과 시스템에서 찾을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물론 병원에서 이미 '원인을 알 수 없다'라고 말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이 경찰이지만 할 수 있는 것따윈 아무것도 없다는데서 오는 불안함때문이지만 그는 이미 자신 나름대로 문제점을 확인하고 확신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그 확신은 곧 폭력의 정당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아마도... 나홍진 감독은 이걸 얘기하려고 했던 것 같네.
아무튼...
이렇게 언뜻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등장 인물들의 관계는 민속신앙, 밀교, 성서적 요소를 종횡무진 오고가며 구체화되어 기괴하고 낯선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진다.
영화 속에는 우리가 그간 오컬트 관련 소재를 이용한 영화, 책 또는 만화들을 통해 보아왔던 다양한 형태의 종교적, 무속신앙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서구적 신앙에 보다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귀신들린 사람, 그리고 이를 물리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서구적 신앙의 엑소시스트를 떠올릴 법 한데 나홍진은 의도적으로 서구적 퇴마론을 배제한다. (사제를 통해 찾아간 신부는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한다)
일본인 외지인이 제단에 올려놓은 형상은 누가봐도 바포멧의 형상이며, 그가 굳이 자신을 찾아온 사제 앞에서 악마의 구체적 형상을 드러내는 이유는 성서적 모티브에 따르고 있다. 게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를 흉내내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외지인은 인간의 모습을 한 유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으나 종구 일행에게 의도치않은 죽음을 당하면서 다시 부활했다고 봐야하는거지)
악마는 자신을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자 앞에서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공고히 드러낸다고 하였다.
의심과 두려움은 근본적으로 그 대상의 존재에 대한 확신의 다른 말일 뿐이며 사제가 그 일본인 외지인을 찾아갈 때 한 손에 낫을, 한 손에 십자가를 두르고 간 것은, 그리고 그 자리에서 외지인에게 '네 자신에 대해 얘기하면 난 돌아갈 것이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던 것은 모두 대상을 확신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 그제서야 악마는 스스로의 모습을 사제 앞에 드러낸다.
결국 악마를 온전하게 구체화된 형상으로 만들어버린 건 인간의 의심과 그에대한 확신 탓이라는거지.
그런 까닭에 뿔달린 악마의 형상이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언뜻 뜬금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충분히 당위성을 확보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영화를 이렇게 장면장면 따져가며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재주도 없고.-_-;;;;
이런 과정 자체가 감독이 던져놓은 미끼를 덮석 물어버리는 것이란 생각도 사실 들고.ㅎㅎㅎ
이미 위에서 한 이야기라 반복되는 말이지만,
이 영화는 보통 사람들의 삶 속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순간들이 모두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인과관계 속에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를 던져주는 것 같다. 여기에 우리 인간들이 역사를 통해 전혀 훈육되지 않는 폭력성의 내재된 합리화 역시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문제가 아닐까 싶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 나홍진 감독이 이 영화에서 전제하고 있는 것은 글 서두에 밝혔듯, 어정쩡한 선의나 무지한 방책은 치밀하고 악마적인 사악함을 이겨낼 수 없다는 확신인 것 같다.
그리고 이를 썩어문드러질대로 문드러진 우리 사회에 대입해보면 씁쓸하고 절망적일 정도로 공감이 가게 된다. . 기득권에 의한 온갖 비리, 우리같은 보통사람들이 이유도 모른채 수백명 이상 희생당한 여러 사건들(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사건등)과 '도대체 왜 이들은 희생당해야만 했을까'를 알고 싶어하는 당연한 의문를 온갖 억지를 통해 모욕하고 무산시키는 사회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사회에 살고 있으니 이런 영화가 나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법하다는거지.-_-;;;
물론... 영화를 보는 사람에 따라서 등장 인물의 행위, 관계, 언사등을 은유적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나름의 해석을 투영할 수 있겠지만 난 이 영화를 작가적 고집이 잘 다듬어진 잘 빠진 상업 영화라는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기가막히게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를 볼 수 있다는게 어디 흔한 일인가?
나홍진 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
곽도원은 일생일대의 연기를 보여준 것 같다.
들끓는 부성애를 표현하면서도 전혀...오버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쿠니무라 준은 그 존재 자체로도 이야기가 되더라.
황정민은... 그냥 무당이라고해도 다 믿겠다.
허진씨는 정말정말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봤는데 등장 빈도에 비해 정말 중요한 역할을 훌륭하게 해주신 듯 하다.
종구의 딸 효진역을 맡은 아역배우는 진심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다. 다만, 어린 아이에게 그런 연기를 부탁했다는게 걱정도 되네.
천우희는 전체적으론 큰 비중이 아니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확실히 느껴지더라. 물론... 한공주의 모습이 오버랩되긴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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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정말 궁금한 부분인데,
난 그 끝내주는 연기를 한 종구와 효진. 이 부녀사이가 뭔가 그닥 살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도대체 왜인지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내가 영화를 보면서 종구의 부성애를 부정한 것도 아닌데 말이지.
그래서인지 마지막 놀이기구를 타며 환하게 웃는 부녀의 모습을 보면서도 이상하게 이질적인 생각이 들었어.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
근래 들었던 한국 영화 중 가장 훌륭한 영화 음악이었다.
영화의 감정을 앞서나가지도 않았고, 기가막히게 자연스럽게 다가오더라.
게다가 한국 영화 음악 특유의 그... 촌스러움도 싹 다 걷어내고 말이다.
영화음악은 달파란이 맡았다.
이 정도면 굳이 해외 음악가에게 맡기지 않아도 될 정도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