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세간에 정신없이 어지럽게 회자되는 '여성혐오'에 대해 얘기할 정도의 철학적 소양이 없다.
다만... 나 스스로 정리하는 마음에 한번 적어본다.
*
결혼 전에 다니던 한 회사는 정말 빈번하게 회식자리가 있었다.
그놈의 회사는 회식을 꼭... 회사건물 옆에 위치한 라마다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했는데 회식이 있는 날이면 워낙 늦게 파하게 되어 당시 사귀던 여친의 불만이 매우... 높았다.
게다가 그놈의 회식 빈도도 심할 정도로 잦은 편이었고.
한번은 사귀던 여친과의 기념일이었는데도 회식에 참석하게 되자 여친이 그건 안된다며 회사로 찾아오는 일이 있었다.
근무하던 부서 사람들이 그때문에 여친을 모두 보게 되었는데 부장이 여친을 보더니 크게 웃으며 내게 이러는거다.
'김OO씨 이런 사람이었어? 대단하네. 무슨 재주로 이런 미인을 사귄거야.'
그러면서 순순히 날 보내줬다.
그 다음날부터 부서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그런' 여자를 꼬실 수 있었는지를 집요하게 물었다.
그 물음에는 '어떻게 네깐 놈이 그런 미인을 사귀느냐'라는 의미도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미인을 얻는 것을 일종의 전리품 정도로 생각하는 남자들의 의식이 동반되어 있었다는걸 알 수 있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이런 남성들의 인식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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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다른 분들도 많이 경험했을텐데,
나 역시 내가 사귀었던 여성들이 최소 세네번 이상은 길거리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성추행을 당했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와이프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에 사귀던 한 친구는 걸어가는데 옆에서 천천히 지나가던 차의 창문이 열리더니 '뭐 물어볼게 있는데요'라고 부르더란다.
그래서 그 친구가 옆을 보니 그 미친 놈이 자신의 성기를 꺼내고 주무르면서 이걸 보라고 하더란다.
한번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악!'소리가 나길래 내가 영문을 몰라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벌벌 떠는 목소리로 지나가던 미친 개새끼가 치마 속으로 손을 휙 집어넣고는 가버렸다는거다.
이런 추찹한 이야기를 늘어놓자면 끝이 없다.
더 황당한 건 이런 얘기를 하면 '치마를 너무 짧게 입어서 그래'란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는거다.
***
이른바 여성혐오는 내 기억으론 4년여 전부터 대단히 노골적으로 표면화된 것으로 기억한다.
몸담고 있던 커뮤니티들에서 김치년이라든지 *빨이라던지 하는 입에 담기도 싫은 말들이 마구 올라오기 시작했고,
여성가족부의 일부 뻘짓이 그 난장판에 그럴싸하게 토핑되었다.
그때부터 '한국 여자는 안돼', '남자의 고혈이나 빨아먹는...'등의 글들이 심심찮게 보였으며 어느 예능 방송의 패널로 나온 여성이 말한 '루저 파문'등을 통해 끝도없이 확대 재생산되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바야흐로 사회적 모순으로 인해 시스템이 부조리하게 작동하고 이로인해 경제적 출구를 제대로 찾지못하는 남자들,
그리고 애당초 여성을 전리품 정도로 생각하며 군림하려던 부르조아 남성들의 여성을 업신여기는 풍토가 기이하게 맞아떨어지며 커뮤니티의 수면 위로 급속하게 떠오른거지.
전자의 경우에는 여성들에 의해 남성들이 역차별받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말들도 설득력을 얻고 있었고, 후자의 경우는 여전히 악랄하게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했다.(장자연 사건등)
여성들로 인해 오히려 역차별받고 있다는 일부 남성들의 성토와 달리 여전히 여성들은 대체적으로 동일한 업무에 종사해도 남성의 60~70%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으며, 출산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중소영세업체를 중심으로- 마트에 그려져있는 여성전용주차장등을 거론하며 한국은 여권이 지나칠 정도로 보장되고 있다고 난리를 쳤다.
이 모든 인식의 기저에는 여성을 자신들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고, 남성의 아래에 있어야한다는 심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시스템의 계급 갈등은 문제삼지도 않은채 여성들에 의해 역차별받고 있다는 식의 생각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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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남자들은 여성들이 경제적 안정이 확보된 남자에게 기꺼이 성을 준다고 생각하며 이 세속성을 비난한다.
실제로 내가 얘기해본 많은 결혼 전 여성들은 함께 할 남성의 경제적 능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 역시 남자들이 비난하는 그 표면적인 현상은 부인할 마음이 없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나 역시 결코 동의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여성들의 사고를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사회가 여성들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끔 몰아가고 있다는 생각 역시 할 수 밖에 없다.
여성의 노동안정성은 터무니없이 불안하기 짝이 없고, 사회적 안전망은 엉망이며 그런 가운데 가정을 갖게 되면 육아의 문제부터 모든 것에 여성이 졸지에 중심에 앉게 되는 현실아닌가?
웃기지마, 요즘 맞벌이하는 부부의 남성들은 집안 일 잘 도와줘...라는 말을 들었는데 뭔 집안일을 도와줘.
집안 일을 하는거지 도와주긴 뭘 도와주냐고. 어차피 같이 일하는데.
그리고 통계를 본 적도 있다. 대부분의 맞벌이 부부의 여성들은 여전히 집안일도 거의 70%이상을 도맡아 해야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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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여성혐오가 심각한 수준이라지만
내 생각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아니... 표현을 하느냐 안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남성들의 여성혐오의 뿌리는 심각하리만치 깊다고 본다.
적어도 회사생활 20년을 하면서 여성을 동등한 파트너로 인식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난 정말 훨씬...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많이 봐왔고, 지금도 보고 있다.
항간에선 메갈리아등을 운운하면서 여성도 똑같이 남성혐오를 하지 않느냐...라거나, 메갈등에서 남혐을 중지하면 우리도 여혐을 중지하겠다는 무슨 같잖은 소리들을 지껄여대는데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여성 혐오(여성을 열등하게 보는 것 역시 포함된다)가 만연되어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이로 인한 극단적인 반작용을 메갈리아등이라고 생각한다면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감이 잡히지 않을까?
정말 이 혐오에 중독된 이들이 원하는 세상이 애니메이션 마크로스의 한 시리즈에 나온 것처럼 남성과 여성이 죽어라 전쟁을 벌이는 그런 세상은 아닐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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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을 하는 나 역시 반성한다.
나 역시 나도 모르게 여성혐오적 시선과 발언을 하며 살아오지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기득권은 결코 사회적 부조리의 원인을 계급간의 갈등으로 몰아가길 원치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건 언제나 이렇게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근본적인 원인에서 찾지 않고 우리끼리 치고박고 싸우게 만드는거지.
그래서 모든 언론과 미디어는 늘 우리에게 무언가를 꾸준히 혐오하도록 내몬다.
정치를 혐오하게 만들고,
이성을 혐오하게 만들며,
세대를 혐오하게 만들며,
소수자,약자를 혐오하게 만든다.
이런 같잖은 상황 속에서,
추모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난장이 되어버린 강남역 살인 사건의 희생자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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