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생 1~2학년생이었을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뭐... 거의 40년 전(!!! - 아... 이 어마어마한 연식-!!), 게다가 그때는 초등학교도 아니고 국민학교.-_-;;;
부모님이 종종 외식한다고 데리고 나갔던 집이 명동의 '이따리아노'라는 경양식 집이었다.
하도 자주 가서 지금도 그 음식점의 내부가 기억이 나는데,
너무 어렸을 때여서인지 모르겠지만 천고가 유난히 높았고 분위기는 상당히... 클래식한... 나름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연회를 위한 홀이 있었고 미닫이로 룸을 만들 수도 있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일본에서 만들어낸 돈까스(그 당시엔 일본식 돈카츠라고 불리우는건 거의 없었고 죄다 '돈까스'였다)와 햄벅 스테이크를 주로 내는 음식점의 이름을 '이따리아노'라고 명명한 것 자체가 좀 넌센스란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그 당시 난 이 집을 정말 좋아해서 부모님께서 이따리아노에 가자고 말씀만 하시면 엄청 기뻐하며 따라나섰던 기억이 난다.
정말 기억이 생생하게 나는건 그곳 매니저분이신지 사장님이신지... 어느날 한번은 내가 햄벅스테이크를 너무 잘 먹으니 한그릇을 더 서비스로 내주신 기억도 있다.
물론... 그 서비스가 아니여도 종종 햄벅스테이크 두 접시를 먹곤 했었지만. 초딩 1학년이.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부천으로 이사를 하게 되고, 중학교 때는 집안이 풍비박산 날 정도로 어려워져 그 이따리아노라는 명동의 경양식집은 더이상 갈 일이 없었고, 나중에 옛 추억을 떠올릴 즈음엔 더이상 이따리아노같은 경양식집이 우리같은 서민들의 호사스러운 외식의 대상에서 멀어져있었다.
코코스(COCO'S)를 비롯한 외산 패밀리 레스토랑 프랜차이즈에서는 당연한 듯 햄벅스테이크를 메뉴로 제공하고 있었는데 코코스든 어디든 햄벅스테이크의 맛은 다 거기서 거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몇년 전 정통 일본 경양식을 표방하며 가격도 만만찮게 내던 어느 음식점에서 기대를 갖고 먹었던 햄벅 스테이크에 대실망을 하고, 한때 잘 나가던 크라제 버거에서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는 햄벅스테이크를 먹은 뒤 난 햄벅 스테이크라는 것이 그저 과거의 추억이 반 이상 먹고 들어가는, 맛의 한계가 분명한 음식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건 어디서 먹어도 다 그 맛이 그 맛이야...라는 주관적인 확신말이지.
실제로 내가 먹었던 햄벅 스테이크는 거의 대부분 육즙을 느끼기 힘들 정도로 형질이 깨져있는 경우가 많았고 어느 곳의 데미그라스 소스는 끈적거리면서 지나치게 맛이 강해 맛을 도리어 해치는 경우도 종종 경험했다.
그러다...
2012년 2월 팔판동에 햄벅스테이크를 잘 하는 집이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식구들 다 함께 찾아갔다.
그곳이 바로
팔판동의 '그릴 데미그라스 (Grill Demiglace)'다.
20년간 증권맨이었던 김재우 주방장이 오픈한 경양식집.
그때 이곳에서 먹었던 햄벅스테이크의 모습.
지금과는 무척 담아낸 모양새가 다른데 이때도 햄벅 스테이크 자체는 꽤 맛있었다.
물론 지금처럼 육즙 가득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맛있었다.
이날 우린 새우 프라이도 맛있게 먹었지만 결정적으로... 바베큐 폭립이 너무 늦게 나온데다가 그 맛 자체도 적잖이 실망스러워서(사실 상당히 퍽퍽했다) 햄벅스테이크, 새우 프라이로 이어졌던 미식의 즐거움이 왕창 고꾸라진 기분을 경험한게 사실이다.
이날 우린 새우 프라이도 맛있게 먹었지만 결정적으로... 바베큐 폭립이 너무 늦게 나온데다가 그 맛 자체도 적잖이 실망스러워서(사실 상당히 퍽퍽했다) 햄벅스테이크, 새우 프라이로 이어졌던 미식의 즐거움이 왕창 고꾸라진 기분을 경험한게 사실이다.
그리곤...
우린 이 집을 잊었다.
그리고 종종 어디어디에선가 잊을 만...하면 한번씩 햄벅스테이크를 먹곤 했다.
집에서 와이프가 정성껏 해준 햄벅스테이크도 여러번 먹었고.
그러다... 몇개월 전부터 이상하게 맛있는 햄벅스테이크를 한번 먹어보고 싶어졌다.
나리사와에서 운영하는 토요켄에서 지인이 먹은 사진을 보며 입맛을 다시기도 했고,
뭔가 내 맘 속에 편협하게 자리잡은 '햄벅스테이크는 한계가 분명한 음식'이란 편견도 한번 깨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주 다시 4년 7개월만에 팔판동의 '그릴데미그라스'에 방문했다.
예약도 없이 그냥 그날 11시가 채 안된 시간에 전화하여 먹을 수 있는지 문의한 뒤 바로.
이중섭, 백년의 신화 전시를 본 뒤 바로 넘어간거지.
4년 7개월만에 들른 팔판동 '그릴데미그라스 (Grill Demiglace)'
그래서 이 햄벅스테이크를 만날 수 있었다.
4년 7개월 전에도 맛있었지만 그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업그레이드된 깊은 맛.
형질을 단단히 이루고 있으면서도 부드럽게 사악... 잘려나가는,
육즙 가득한 햄벅 스테이크.
써니사이드업의 노른자가 주르르 흘러내리고,
곁들여진 가니쉬는 최소한의 조리만 한 것 같은데도 어쩜 이리 완벽한 조리가 된 채소들인지...
그리고 저 구운 고기와 와인을 함께 넣어 감칠맛을 최대한 끌어올린 데미그라스 소스는 또 어쩜 이리 완벽한지...
감탄에 감탄을 하며 먹었다.
햄벅스테이크는 여기든 저기든 다 똑같지 않아? 라는 내 마음 속 편견이 한방에 와르르... 무너진 순간이었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오래전 추억을 얘기하고, 약먹고 버티면서 감행한 비실비실 외출이었음에도 이 순간만큼은 둘다 또랑또랑한 목소리와 말똥말똥한 눈빛으로 쉴새없이 이야기를 나눴으니까.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기에 조만간 다시 한번 방문할 예정이다.
*
오늘 퇴근하고 돌아오니...
와이프가 이걸 보고 있더라.
ㅎㅎㅎ
올리브TV '오늘 뭐 먹지?' 올해 5월 방영된 김재우 주방장의 '함박스테이크 아저씨'편.
ㅎㅎㅎㅎㅎㅎ
함박스테이크 비법이 그대로 나온다.
와이프가 조만간 도전할 예정.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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