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8주년.
늘 날 응원해주는 와이프에게 변변한 선물 하나 못해줬다.
그냥 같이 있으면 된다는, 동화책 속에서나 볼 법한 와이프와 살고 있으니 늘 고마운 마음뿐이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와이프 마음 속상하게 하고 못난 짓을 반복하는 것 같네.
얼마전 와이프가 친구와 통화하는 걸 들었는데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바다를 보여주고 싶어 화진포에 가려고 했는데 결국 사정상 포기하고 그냥...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을왕리 바다로 향했다.
을왕리 바다는 딱 한번 정도 정말 바다답다고 느낀 적이 있는데 이날 들렀던 을왕리는 언제나처럼의 늘 그래왔던 그냥... 우중충한 서해바다였을 뿐... 감흥이 없었다.
삼킬 듯이 높은 파도, 그리고 날씨와 상관없이 압도적인 하늘을 보고 싶었는데 그건 다음 기회로.
바다를 본 뒤 뭘 먹을까...약간 고민했지만 결국 언제나처럼 '로칸다 몽로'로 왔다.ㅎ
벗어날 수 없어.ㅎㅎㅎ
아, 로칸다 몽로에 들어가서 스탭분들께 결혼기념일이어서 왔다... 이런 얘기는 하지 않았다.
다 먹고 계산까지 마친 뒤 말씀드렸을 뿐이다.
와이프의 이 표정 하나로 을왕리 바다에서의 감정이 다 전해진다.ㅎ
사실 을밀대...를 가려고 하다가 맘을 바꿔 로칸다 몽로 (Locanda 夢路)로 온 것임.
영업시작 시간인 6시보다 한시간이나 앞서 도착한 탓에 차를 공영주차장에 대놓고 50분 가량 인근을 걸어다녔다.
모 출판사 건물.
그런데... 50분 정도 돌아다니면서 카페만 한 20군데는 본 것 같다.
궁금한 건... 이 카페들이 정말 장사가 다 잘 되고 있을까?
5시 50분 쯤... 공영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몽로 앞에 남아있는 한 자리에 주차를 했다.
원래 커피상점 이심 자리인데 이심은 일~월요일 휴무라...
몽로 → 커피상점 이심...의 이단 콤보를 기대했는데 어우... 아쉽다.
5시 55분 입장. 첫 손님! (5시 50분부터 입장 가능. 어느 업장이든 공지된 입장 시간 이전에 들어가는 건 실례)
예약도 안하고 그냥 온 탓에 오늘은 바(bar) 자리에 앉음.
근데 우리 이 자리 정말 좋아함.
특히 이 구석 자리에 종종 앉았음.
자... 언제나처럼 대동강 페일에일 생맥 한잔.
언제부터인가 우린 다른 맥주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대동강 페일에일만 마신다.
그러다보니 점점 이 맥주를 기획한 더부스의 비어하우스에도 가보고 싶어진다.
http://blog.naver.com/thebooth
특히 더 부스는 투올의 맥주를 마구 선보여주고 있는데 라벨 디자인도 정말 위트있고 재밌어서 엄청... 호기심이 생긴다.
조만간 커먼그라운드 점이나 이태원 점을 한번 가볼 예정.
다만... 우리 부부는 맥주를 뭔가 좋아하는 듯 하나 워낙 조금 마시는 탓에 과연 이런 멋진 비어 하우스를 가도 될까?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는거.
지난번 들렀을 때 재료 수급에 문제가 있어 주문이 불가능했던 라비올리를 이번에 먹었다.
물론... 난 이미 그 전에 banane(바난)의 양성원 사장 부부와 와서 먹어봤지만 와이프는 이번에 처음 먹어봤다.
역시... 와이프도 엄청나게 맛있게 먹었다.
라비올리 속과 겉의 밸런스는 그야말로 고수의 내공이 느껴진다.
특히 저 소스... 뒷맛에서 살짝 단맛이 느껴지는데 도대체 뭘로 만든걸까?
다음엔 한번 여쭤봐야지.
지난번 식구들과 왔을 때도 먹었고 그 전에 양성원 사장 부부와 왔을 때도 먹어봤던 오리 스테이크.
약 10일 가량 숙성시킨 오리.
난 기본적으로 고기 특유의 향을 모조리 잡아버린, 그러니까 잡내 하나 안나는 고기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거부감없을 정도로 아주 살짝 육향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요리들이 진정 사랑스럽지.
오리 스테이크는 가슴살과 엉치살(기억이 잘...) 중 선택 가능한데 이번에도 가슴살을 주문했다.
내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이 오리 스테이크의 맛은 진심 기가막히다는거다.
오리 고기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없이 이 바삭하게 구워진 표면, 촉촉하기 짝이 없는 속, 그리고 이와 잘 어울리는 파, 양파등으로 만들어진 가니쉬를 맛보면 이 메뉴에 푹... 빠질 수 밖에 없을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박찬일 선생님께서 한번 맛보라고 살짝 내주신 이베리코 목살 + 명이 초절임.
이 메뉴가 정식 메뉴가 되는 다음 주쯤 (5월 말~) 다시 몽로에 와야하는 이유.
박찬일 선생님께선 예전 라꼼마에서도 돼지고기를 맛있게 요리해내오셨었다.
언제나 선생님의 돼지고기 요리는 진심 맛있게 먹었으니까.
그런데... 이 이베리코 목살 스테이크는 진심 입에 넣는 순간 입안에서 향과 맛이 모두 폭발한다.
그야말로 맛이 춤을 춘다고 해야할까...?
선생님께 얘기들어보니 유럽의 어느 미쉐린 3스타집에선 이베리코 어깨살을 미디움 레어로 내기도 한단다.
돼지고기는 익혀 먹어야한다는 인식이 팽배한 우리나라에선 엄두내기 힘든 일.
이베리코 어깨살을 미디움 레어로 내는 맛은 어떨까? 궁금하다.
이베리코 목살 스테이크의 맛을 완성시키는 것은 바로 이 명이 초절임이다.
박찬일 선생님께서는 간이 너무 강하게 되었다고 걱정하시던데 그런 걱정과 달리 입에 들어가면 침샘이 폭발하는 맛이다.
물론 선생님 걱정대로 간이 강한 편이다.
그런데 절임 시간을 길게 하지 않으신 듯, 처음 입에 들어갈 때만 그 강한 맛이 입안을 감돌고 그 뒤엔 금새 명이 본연의 맛이 살아있다.
그리고 이 명이 초절임의 맛이 이베리코 목살과 진심 잘 어울린다.
이 메뉴가 정식으로 메뉴판에 올라가면 꼭... 드셔보시길.
후회없으실 것임.
로칸다 몽로는 주점이지만...
우리에겐 밥집이다.ㅎㅎㅎ
아들, 또는 어머님 아들까지 다 함께 오면 사실 한 메뉴를 넷이 나눠먹기 때문에 늘... 뭔가 먹다 만 기분이 들었다.
특히 살시챠는 더더욱.
어머님 하나, 아들 하나... 나머지 하나를 갖고 나와 와이프가 나눠먹었으니...ㅎㅎㅎ
그런데 이렇게 둘이 오니 이렇게 온전하게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게 좋기는 하더라. 하하~
그래서 다음부터 식구들이 함께 오면 그냥 두세가지 메뉴만 딱 정하고 두 접시씩 주문하기로 했다.
아... 그리고,
이 살시챠.
로칸다 몽로에서 가장 인기있는 메뉴라면 누가 뭐래도 '닭튀김'을 빼놓을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살시챠야말로 진정한 로칸다 몽로의 시그니처 메뉴가 아닐까 싶다.
닭튀김처럼이 메뉴 역시 술안주로도 손색이 없다.
혹시 아직까지 몽로에 들러 살시챠를 경험해본 적 없다면 꼭... 경험해보시라.
그리고...
편하게 쓸 수 있는 나무 젓가락과
호리구치 커피.
지난번 호리구치 커피의 배전도에 따른 6번 WINEY & VELVETY (와이니 앤 벨베티)를 받았었는데... 이번엔 블렌드 커피를...
그저 감사드릴 뿐이다.
호리구치 커피는 배전도에 따라 9단계로 나뉘는데,
이 원두는 블렌드 제품이라 배전도에 따른 분류에는 표시되지 않는다.
그리고 막 쓰기 편하다고 하신 나무 젓가락.
*
와이프와 얘기했지만.
우린 예전 라꼼마가 문을 닫았을 때 상당히 허전한 심정을 느꼈었고 그 기분이 상당히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었다.
이토록 사랑하는 집이 오래도록 번창하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