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물가가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점은 한 번이라도 일본/유럽에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절감할 겁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언제나 '세계최고의 물가'라고 손꼽히는 일본의 동경에 다녀온 분들도 다녀와서는
일본의 실제 체감 물가가 한국과 비교하여 그닥 비싸지 않다고 말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물론 이건 적정한 체류 기간이 넘어가면 화폐 개념 인식이 상당히 급속히 '현지화'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일본의 택시를 예로 들면, 처음엔 일본 택시비가 660엔(한화 6,600원)이라는데 대단히 부담을
느끼지만 며칠 지나게 되면 택시요금 2,000~3,000엔을 한화 2,000~3,000원은 아니어도 생각보다 크게
느끼지 않기 시작한다는 거죠.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실제 동경의 물가가 그닥 비싸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건 역으로 한국의 물가가 그렇게 비싸다는 의미이죠.
이런 부분에 대해 우리 서민들은 언제나 분개하지만 결국 울며겨자먹기로 소비활동을 지속합니다.
억울한 거죠. 개개인의 소득수준은 선진국의 반도 못되는 상황에 물가는 비슷하거나 더 비싸다니.
그렇게되면 여가 시간을 활용하게 되는 문화 투자 비용은 꿈도 못꾸고 결국 획일화되는 소비 패턴과 문화
지출 패턴이 반복되고, 결국엔 이것이 문화적 다원성을 방해하는 악재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울분에 기름을 붓듯, 한국소비자원은 5.20~21 언론 매체를 통해 한국의 소비자 물가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통계 자료를 발표하였고, 거의 모든 언론(조중동, 경향, 한겨레 포함)이 이를 일제히 기사화하기에
이릅니다.
일례로 아래를 보시면,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8/05/21/3124455.html
중앙일보 5.20
특정 일부 품목들을 통해 OECD 국가 간의 PPP(구매력환산지수)를 감안하여 실질 구매 가격을 산정한
결과 위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소비자 물가가 세계최고라는 것은 당연히 그 원인이 현재뿐 아니라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정책기조에
영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당장 집권 여당과 정부에겐 불리한 기사입니다.
또 단순한 생각으로는 기업들에게도 자기들 배만 배불려 채운다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인상을 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중동, 특히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 매우 적극적이었어요.
정부/여당의 기관지임을 자처하면서 이런 기사를 내는 이유는 뭘까요?
그건 조중동등의 찌라시 언론의 근본적인 존립 기반과 목표를 이해하면 답이 아주 쉽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5/19/2008051900063.html
조선일보 5.19
조선 일보는 이미 5.19에 한국 물가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기사를 올린 바 있습니다.
여기엔 특정 품목을 거론하지 않고, 국가 경쟁력을 싸잡아 거론합니다.
기사 하단을 보면 한국의 물가가 비싼 이유는 원활하지 못한 노조와의 관계로 노동생산성이
선진국보다 많이 뒤떨어지고, 기술적 규제로 인해 기업의 혁신적 성장을 방해한다라는 의미의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5/20/2008052001472.html
조선일보 5.20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날, 조선일보는 다시 한국 소비자원의 통계를 인용하여 그 본색을 드러냅니다.
이 기사에서 결국 한국의 높은 물가는 '복잡한 유통구조와 세금, 규제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히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세금이 골프장 그린피와 수입 맥주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미국, 독일, 프랑스와 비교하면서
높은 세금에 대한 압박을 가하고 있죠.
와인 역시 세금체계 때문에 터무니없이 비싸다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 조중동은 기본적으로 친정부가 아니라 친재벌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킵니다.
친재벌적 여론을 조성하고 정부가 이와 관련된 정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압박하는거죠.
저 역시 위에 언급한 상품들의 세금 비중이 높다는 걸 인정합니다.
우리나라 맥주값에서 차지하는 세금의 비중은 매우 높은게 맞습니다.
맥주의 세금 비중은 미,독,프에 비해 월등히 많고, 당연히 조선일보에선 거론하지 않았던 영국(39.7%)과
일본(45.5%)에 비해서도 높긴 합니다.
그런데 바로 저런 비교가 숫자를 정직하게 풀어 보여주지 않는 찌라시 언론의 전형을 보여주는 예랍니다.
골프장 그린피의 세금비중이 높은 건 당연히 골프장을 세법이 '사치행위'로 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골프가 대중화된다고 해도 그건 어지간한 서민들에겐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죠.
평생 필드 한 번 못밟아보고 죽는 이들이 훨씬... 많을 겁니다.
당연히 골프를 향유하는 이들은 상위 소득자들입니다. 그만큼 세금을 내는게 당연합니다.
이를 골프가 보다 대중화된 국가들과 비교하며 열불을 터트리는 건 우스울 뿐이죠.
물론 맥주는 서민주로 자리를 잡았음에도 아직 주세율이 높고, 이 부분은 상당히 비판을 받고 있는 부분이죠.
그런데 이번에 비교한 품목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맥주와 스낵이야 그렇다치겠는데, 골프장 그린피, 커피, 맥주, 화장품은 도대체 왜 비교대상이 된거죠?
즉, 품목이 실생활경기의 대표성을 띄기엔 부적합하다는 겁니다. 맥주도 우리가 즐겨 찾는 제품이 아닌
하이네켄,즉 수입맥주가 대상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거의 모든 제품이 수입 제품들입니다. 아마도 PPP의 전제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선정한 것일 수 있는데요.
이 전제조건을 이렇게 깔고 시작했다면 그 시각 자체가 교조적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수입 제품들은 내수품보다 세금이 더 붙는 경우가 많고, 심하면 세법의 기준에서 사치품으로 인지하여
엄청난 세금이 붙기도 합니다(골프장 그린피... -_-;;), 게다가 유통구조상 수입 업체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할 여지가 많습니다.
즉, 제대로 된 비교가 될 수 없다는 거죠.
이런 제품들을 비교하고 한국이 최고의 물가다...라고 하는 건 당연한 결과에요.
PPP를 감안하면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거에요.
예를 들어봅시다.
한국의 구매지수는 2007년 현재 749, 영국은 0.656 입니다. 즉, 한화 749원이 미화 1달러의 가치를 갖고
있고(환율과 개념이 다릅니다. 각국의 물가수준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죠) 0.656 파운드가 미화 1달러의
구매 가치가 있다는 거죠.
프링글스 오리지널(170g)의 한국 가격을 2,400원이라고 하고, 영국 가격을 1.5 GBP(한화 3,120원)이라고
보면, 단순히 900원 이상 영국이 더 비싸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를 구매지수로 나누어 환산하면 프링글스는 한국 약 $3.20, 영국 약 $ 2.28 가 됩니다.
이 의미는 한국에서 $3.20에 구입할 수 있는 프링글스를 영국에선 $2.28에 구입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은 한화 약 3,200원, 영국은 한화 약 2,280원으로 한국이 무려 900원 이상 더 비싸집니다.
그렇다면 영국에서 GBP 1.5원(=$3.12=3,120원)이면 한국의 구매력 환산 물가지는 76, 영국은
124 즉, 한국은 영국 물가의 약 61.3% 수준이므로 1,912여원이 되면 영국과 비슷한 물가수준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런 기준에 의하면 프링글스의 가격은 영국보다 1,300원 이상 비싸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계산 방식은 바로 한계를 드러냅니다. 그 이유는 한국 시장에선 프링글스가 시장의 대표성을
갖고 있지 못하거든요.
구매력 지수가 낮은 국가는 각국의 보호세법이나 교역/비교역적 제품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는 구매력환산
지수에 의하면 대부분 다 가격이 비싸질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위에서 말한 바, 세금이 상대적으로 비싼 경우가 많은 수입품의 경우는 더욱 심각해지죠.
이에 대한 자세한 예는 이정환 닷컴 에서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일부 수식(나눠야할 걸 곱하거나 하는 경우)의 오류가 보이나, 착오로 보이며 수식을 감안치 않고 그냥
텍스트를 따라가며 읽어보시면 논지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포스팅을 올리는 이유는 무조건적으로 찌질이마냥 조중동 기사를 까자는게 아닙니다.
그렇게따지면 한국소비자원의 통계를 무비판적으로 올리긴 경향신문과 한겨레 신문도 마찬가지거든요.
다만, 분명히 국민들이 쉽게 납득할 만한 품목을 확실히 비교하고, 절대적인 가격 우위가 판명되면 이를
시정토록 권고하자는 겁니다.
본질은 외면한 채 이를 한국의 국가 경쟁력과 연계시키고 그 이유를 정부의 과도한 규제와 강성 노조라는 듯
몰고가는 조중동의 뻔한 작태엔 코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도대체 이런 신문이 먹히는, 이런 기사가 먹히는 대상들만을 상대로 하는 신문이라는 건가요?
한국소비자원 역시 비난을 피하긴 쉽지 않습니다.
당장 6월 말에 다른 품목도 비교 결과를 발표한다는데, 그럼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번 결과는 유보하거나
같이 발표하는게 옳았습니다.
서민들의 실질 물가 체험 지수와는 전혀 동떨어진 품목들을 가지고 비교를 했으니 말이죠.
동일한 재화라고 해서 꼭 빅맥지수의 빅맥처럼 따질 이유는 없어요. 그렇게 따지면 골프장 그린피는 어떻게
품목에 넣었을까요.
게다가 시장 지배력이 압도적을 떨어지는 프링글스를 타국과 동일한 재화라는 이유로 넣은 것도 어색하죠.
카스와 하이트를 주로 마시는 고객들을 두고 굳이 수입맥주를 선택한 것도 역시 교조적인 시각이라는
느낌이 들지요.
결정적으로 가장 큰 실수는 이미 각 국가의 물가 수준 전체가 반영된 구매력 지수 구매력 지수를 갖고 다시
전체적인 물가 수준 운운하는 것입니다. marishin님의 지적대로 이건 전체 물가 수준이 아니라 개별 품목
가격의 비교라고 풀었어야 하는거죠.
전 통계를 잘 알지도 못하고 수에 약한 사람이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기관의 통계를 여과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더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판단됩니다.
**
주세율에 대해 잠깐 언급합니다.
소주의 주세율은 약 72%로 알고 있습니다. 이건 주세율입니다.
맥주는 주세율이 계속 인하되어 현재 90%입니다.
즉 맥주 출고가가 700원이면 주세가 90%로 약 630원입니다. 여기에 교육세가 30% (189원)가 또 붙죠.
소주의 출고가가 700원으로 동일하다고 하면 주세가 72%로 약 504원, 교육세 30%(151원)이 더 붙습니다.
물론 모두 유통가는 제외한 비용입니다.
이런 비교만으로도 맥주와 소주는 출고가가 동일하다고 가정해도 1,519원 VS 1,355원으로 소주의 가격이
더 저렴하게 됩니다.
(소주를 한국소비자원이 OECD 물가 비교 품목에 올리지 않은 건 소주가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동일제품이라는
PPP의 전제조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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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지수환산은 OECD도 그 오류를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비 시장을 대표하지 않는 상품들은
상대적으로 더 비싸게 나타난다고 분명히 못박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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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경제 전문가가 결코 아닌 이유로 글의 오류가 있다면 꼭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만약 오류가 있음에도 넘어가시면 전 아마 평생 저렇게 알다 죽을거에요. (헉...)
이런 글은 대딩 이후론 거의 써보질 않아서 쓰면서도 참... 어색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