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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외엔 2일간 집에서 뒹굴었다.
민성이만 할머니와 모임에서 소풍을 다녀왔다.
정말... 재밌었던 모양이다. 여러 게임을 하면서 선물도 긁어 온 모양이구.
피곤했을텐데 비가 온답시고 얼마전 구입한, 아래 포스팅도 올린 '광선검 우산'을 들고 나가야 한다고 해서
우산을 쓰고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이 녀석은 다들 쳐다보는 시선에 우쭐한 것 같았고, 결국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애들이
'이야, 꼬마야 네 우산 짱이다!'라고 말하자 그 우쭐함이 극에 달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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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우산쓰고 걷기만 하긴 좀 그래서, 집 근처에 최근에 생긴 드립 커피 전문점에 가봤다.
체인점이 아니라서 기대도 좀 하고 들어갔다. 내부 인테리어도 과하지 않게 무척 자연스러웠고.
좁은 공간이지만 아늑함이 느껴지긴 했다.
난 얼마 전 '커피스트'에서 마신 에티오피아 요가체프를, aipharos님은 카페 슈프리모를 주문했다.
민성이는 아이스 티(Iced Tea)를 주문했고...
정말 한참 후에 나온 커피는...
아직도 내 입 안에 그대로 느낌이 남아 있는 '커피스트'의 에티오피아 요가체프와 완전 비교불가였다.
아... 똑같은 원두로 이렇게 다른 커피가 되어버릴 수 있구나...하고 절감했다.
게다가 5,000원의 '커피스트'와 달리 이곳은 7,000원으로 더 비쌌다.
난 확실히 기억한다. 커피스트에서 마신 커피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입안에 그 맛이 남아있던 경험을.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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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0&sid2=264&oid=018&aid=0001975173
난 일개 국가의 정부가 자신들의 국민들의 먹거리를 논하는 과정에서 이런 중대한 문제를 '실수, 사과'따위로
얼버무리는 것에 대해 분노를 참을 수 없다.
'너희는 닥쳐라. 국가(사실은 기득권)가 알아서 잘 해줄텐데 왠 말이 많냐. 그냥 주는대로 먹어라'라는 이
해괴한 정신병으로 무장한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FTA 문제도 안봐도 비디오다.
게다가 그야말로 괴담처럼 떠돌던 민영의료보험의 실체도 드러나고 있고, 김문수 이 머리에 구멍난 인간이
하는 얘기를 보면 대운하도 국민들이 뭐라건 진행한다는거다.
영화적으로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Gregory Nava 감독의 [Bordertown](2006)을 보면 멕시코, 캐나다,
미국간의 무역협정(NAFTA)의 이면에 드러난 사악한 정황들이 보여진다.
NAFTA의 문제는 여러가지 헤아릴 수도 없지만, NAFTA엔 근본적으로 근로자에 대한 보호 조약이 없다.
FTA를 맺으면 우리가 무슨 대단한 이득을 얻을 거라 착각하는 사람들.
스티글리츠의 책에서, 실제의 사례를 수없이 들며 증거하듯, FTA는 결국 있는 자들의 잔치이며,
절대로 부의 배분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급속하게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국가들에 한한 것 뿐이 아니라, 저축율이 높아 해외 차관이 상대적으로
덜 필요했던 동아시아 국가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착각에 살며, 걸핏하면 '자유'와 '애국'을 부르짖는 이들.
보수세력의 논조에 반대하면 그 사안이 뭐든 '좌빨'과 '정치논리'로 몰아대는 이들의 뇌구조 자체가
치료할 수 없는 광우병과 다름이 없는 거다.
(도대체 언제부터 '자유'란 말이 들어간 단체는 죄다 이 모양이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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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또란테 에오(Ristorante EO)에서 식사를 다하고 마지막 인사 때 소믈리에께서 스테이크가 너무
좋았다고 말하는 aipharos님에게 '저희는 한우씁니다'
라고 말했다. 그만큼 미국 쇠고기 전면 개방건으로 이래저래 스트레스 받는다는 소리다.
다만, 한우가 정말 안전한건가?
생협에서 판매하는 한우의 경우는 풀을 먹고 자란 소들이지만 많은 한우가 사실상 동물성사료에 노출되어
왔다는 건 알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이젠 국민들이 먹거리를 위해 '투쟁'하고 '정보전'을 벌여야 할 판이다.
안그래도 공적 투자가 적은 나라라 개개인이 부담해야할 영역이 어디 한 둘이 아닌데...
이젠 최소한의 안전 가이드라인까지 정부 스스로 방어막을 해제한다.
별 웃기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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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라는 사람이 있다.
실제로 C는 화인 다이닝을 10여일 연속하는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일 정도로 재력도 있고, 나이도 내 또래
혹은 그 이상인 것 같다.
상당히 많은 쉐프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그의 음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대해선 전혀 이론의 여지가 없으면서도 난 솔직히 C가 못마땅하다.
그래서 단 한번도 그의 홈피에 댓글도 달지 않았고, 사실 그닥 자주 가지도 않는다.
그런데 얼마전 그의 홈피에서 최근 오픈한 모 레스토랑에 대한 글을 보다가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있다.
사정상 재료가 다 떨어져 코스 A, B 중 슈프림 코스인 B 코스가 불가능하게 되자, C는 B를 우겼고 지배인이
그래도 안된다고 하자 국내 유명 해외 음식학원 지점의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레스토랑의 외국인 쉐프
에게 사실상... 압력을 넣어 있는 재료로 B 코스를 제공하게 되었다는 글이다.
난 기가막혔다.
쉐프에게 직접 간곡히 부탁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찾아간 그 시간에 원하는 코스가 없다고 실질적으로
자신의 지위를 이용, 외부의 압력을 이용해 쉐프를 사실상 굴복시키고 음식을 받아낸 것과 다름 없는 거
아닌가?
물론 C는 이를 '중재'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게 어떻게 '중재'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가 그 날 한 번 밖에 이 레스토랑을 들를 수 없는 사람도 아니고, 경제적 문제도 전혀 없는 C라면,
문제없이 준비되는 A코스를 먹고, 다음 기회에 B코스를 먹으면 된다.
내가 정말 기가막힌 것은 그 포스팅에 대한 댓글들이었다.

'우와! 전화 한통에 캬~'

이런 분위기의 댓글들이 진을 치더라.
난 미식가들의 블로그/홈피들을 다니면서 눈쌀이 찌푸려지는 경우도 많지만, 그것도 그 사람이 좋아하는
자신의 문화를 향유하는 방식이며, 그것이 도를 지나치지 않는 것이고 타인에게 심각한 폐해가 없다면
개인 고유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번 C의 포스팅은 솔직히 무척 난감스러웠다.
비약일까? 한번 이 상황을 음식이 아닌 일반적인 이해타산의 문제가 있는 경우로 환치해보자.
전형적인 기득권 세력의 행태와 뭐가 다르냔 말이다.


*****
그런데...
그 청담동의 '슈밍화'.
수석쉐프인 신민호 쉐프가 3월 말인가에 일본으로 떠난 후 Sous Chef였던 박재형 쉐프가 승격했었는데
헐... 박재형 쉐프도 4월 말로 그만 둔 것 같다.
슈밍화는 사실상 전무한 분자요리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일식 베이스의 분자요리집으로 기계도 모두
주문해서 일본에서 맞추는 등 오픈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던 것 같은데,
분자요리를 담당하던 신민호 쉐프가 떠나버리고, 사실 박재형 쉐프는 사시미와 스시를 담당하던 분인데
이분도 그만두면 '슈밍화'는 '슈밍화'인 건가??
새로 오는 쉐프가 김유신 쉐프라고 한다. 주로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슈밍화는 일식+프렌치로 사실상 컨셉이 바뀌는거다.
(최근 알게된 건데 슈밍화의 사장님이 프렌치를 컨셉을 잡고 싶어해서 결국 박재형 쉐프도 그만 둔 걸로
알고 있다)
아쉽다...
슈밍화는 다음에 가야지하고 미뤘던 건데 결국 신민호 쉐프의 분자요리는 구경도 못해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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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가 끝났다.
좀 전 베란다 밖으로 천둥 소리를 내던 날씨도 이젠 잠잠해졌다.
비도 그쳤다.
우리 민성이의 광선검 우산도 꺼졌고, 민성이도 잠자리에 들었다.
항상 출근 전 날의 저녁은 마음이 답답하다.
누구든 다 챗바퀴돌 듯 회사에 나가고, 정말 일이 즐겁다는 사람, 즐겁진 않아도 그닥 피하고 싶진 않다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난 정말 아직도 흔히 말하는 그... '철'이라는게 아직 덜 든 것 같다.
사실이 그렇다.
그래도 나가면 또다시 어김없이 죽어라 일을 하게 되지.
가끔 내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건 정말 벗어날 수 없는 건가?하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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