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416 성곡미술관 '독일현대사진 (Presentation/Representation)' → 서촌 한식/사찰음식점/채식식당 '마지 (MAJI)' 육식주의자도 흔쾌히
→ 서교동 '미카야 (Michaya) - 벚꽃빙수!!!!!!!'
* 마지 전화번호를 묻는 분이 계셔서... 02-536-5228 *
성곡미술관에서 '독일현대사진'전을 인상깊게 본 뒤 바로 서촌으로 넘어왔다.
방배동에 위치해있던 사찰음식점이나 정말 제대로 된 채식음식점 '마지'가 4월 8일 서촌으로 이전 오픈했는데,
전에도 한번 얘기했듯, '마지'의 김현진 대표는 내... 초등학교 6학년 죽마고우.
어머님과 함께 오랜 시행착오 끝에 채식음식점 '마지'를 안착시키고,
이제 서촌으로 입성, 2막을 열었다.
원래 오픈하는 날 가보기로 했는데 지난 주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못와보고 이제서야 들렀다.
방배동에 있을 때도 가보긴 했지만 강남이라는 이유로 딱 한번 밖에 들르지 못했었다.
이제 서촌으로 왔으니 종종 들러야지.
채식주의자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내게 '채식음식점' 또는 '사찰음식점'이라는 전제는 대단히 꺼려지는 프레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마지'에 들러 식사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은 건 다녀오신 여러 분들이 이미 얘기하셨듯,
이 집의 음식이 육식주의자인 내게도 무척 잘 맞기 때문이다.
이건... 죽마고우가 대표라는 이유로 편협하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입맛에 맞지 않았다면 난 그냥 아무 언급없이 사진만 나열했을테지만,
와이프가 얘기했듯 '마지'의 음식은 굳이 채식주의자가 아니어도 충분히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을 낸다.
마지의 주말 오픈 시간은 12시부터인데 우리가 조금 더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서촌을 걸었다.
날씨가 참... 따뜻하더라.
봄은 봄.
내 마음엔 전혀 기운조차 들어오지 못한 봄인데,
옥인오락실에 들러서,
나는 스트리트 파이터를, 와이프는 너구리...를.ㅎ
내가 정말 잘했던 오락은 '스노우브로스'였는데. 보이지 않더라.
서촌의 정말... 괜찮은 소바집 '노부'.
전에 들렀을 때 이전한다고 하시던데 옥인오락실 바로 건너편으로 이전하셨더라.
...
4월 16일이다.
보기만 해도, 생각만 해도 마음이 답답해지고 울분이 가라앉지 않는.
그러다... 마지에 도착했다.
어쩌면 아는 분도 계실텐데,
예전 '박광일 갤러리 카페'가 자리.
근 1년 가까이 비어있다시피 했는데 마지가 들어선 것.
방배동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마지'라는 음식점에 잘 어울리는 옷이란 생각이 들더라.
워낙... 건물주가 관리를 열심히 하고 가꾼 덕분에 이 예쁜 공간을 잘 가꾸고 보전하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단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도 마지를 함께 이끄는 김현진 대표의 어머님께서 정성스럽게 화분을 손질하고,
살이 오른 붕어들을 잘 관리하셔서 정갈한 아름다움이 편안하게 다가오더라.
문이 열린 창쪽의 테이블에 우린 자리를 잡는다.
입구.
다시 말하지만...
이집 음식은 나같은 육식주의자에게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렇다고 채식을 표방한답시고 어정쩡하게 타협한 음식을 내지도 않지.
프랜차이즈를 희망하며 찾아오는 이들에게 김현진 대표는 주저함없이 '3년은 배우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얘기한다.
그러면 열이면 열... 다 그냥 돌아가지.
배우지 않고 쉽게 하는 음식점이라는거.
이게 어쩌면 우리 미식의 현실이 아닐까.
그분들이야 물론 절실한 마음이었겠지만...
이 공간은,
앞으로 더더욱 예뻐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부.
아직 이전한 지 일주일 밖에 안되어(정식 오픈 2017. 4. 8) 방배동에서 사용하던 선반들을 그냥 가져왔다.
그래서 이 고즈넉한 한옥가옥과 잘 어울리진 않지만 차근차근 개비해 나갈 계획이란다.
마지 입구로 들어와서 좌측에 별실도 마련되어있는데 이 별실은 아래에 따로 사진을 찍어올렸다.
방배동에 있을 때도 마지는 매우 넓은 2층 공간을 적극적으로 다양한 강연, 세미나 장소로 이용해왔다.
최근엔 우리 사회에서 오히려 핍박받다시피하는 내부고발자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지.
서촌은 방배동보다 훨씬 좁아졌지만 충분히 40여석 이상 나오는 공간은 마련되어있다.
건너에 보이는 곳이 사실상 메인홀.
대충 지은 건물이 아닌데다 기존 영업을 하던 장소라 그런지,
새 건물에서 시작하는 쌩...한 느낌이 없어 좋다.
와이프 말에 의하면 '오랫동안 이 자리에 있었던 느낌'이라는데 나 역시 공감.
우리는...
창문을 열 수 있는 이 자리에 앉았다.
명당이구나.
따뜻한 봄기운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자리.
함께 자리한 김현진 대표와 많은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단품도 있다.
굳이 코스를 먹지 않아도 된다는거.
우린 일단 처음이니 런치 코스 (20,000원/1인)를 주문.
호박죽.
와이프가 먹자마자 정말 호박 본연의 맛을 느끼게 해준 호박죽은 너무너무 오랜만이란다.
그리고 나중에 내게 얘기했지만 호박죽 먹고 직감했단다.
여기 분명 만족하게 될 것 같다고.
달디 단 호박죽이 대부분인데 이렇게 부드럽고 충분한 호박의 향이라니.
샐러드.
유자와 간장을 넣은 소스인데,
간장을 넣었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간장이 들어갔는지도 모를거다.
전에도 먹어봤지만 이 소스 무척... 매력적이다.
유채전.
간장이 없어도 돼? 라고 물었더니 김현진 대표가 충분하단다.
먹어보니 정말 간장이 필요없다. 간간...하다.
나도 아주 슴슴하게 먹는 편은 아닌데 이걸 간이 너무 없다고 말하는 분도 계신단다.
음... 도대체 얼마나 짜게 드시길래.
우엉잡채.
끝내준다.
우엉의 식감이야 예상할 수 있겠지만,
저... 당면.
우리가 시중에서 흔히 먹는 당면이 아니다.
좀 식은 뒤에 먹어도 전혀... 불지 않아.
고추기름으로 뒷맛도 살짝 매콤하게 올라오고.
이건 진짜 좋아하는 분들 많을 듯.
단품으로도 준비되어있으니 단품으로 먹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표고탕수.
이걸 먹자마자 난 김현진 대표에게 '너 정말... 고민 많이 했겠다'라고 말을 건냈다.
그도 그럴수밖에.
정말 좋은 표고를 쓰지 않으면 이 맛이 날까?
표고를 기름에 튀겨내는 집들과 달리 여긴 표고를 전혀 기름에 튀기지 않았다.
우엉잡채와 표고탕수만 먹어봐도 이 집은 어르신들만 오는 그런 사찰음식점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다.
트랜디하기까지 한 맛.
연잎밥과 야채국.
연잎밥... 정말 제대로.
찹쌀로 낸 밥 자체가 맛있고, 정말 공들여 선택한 연잎을 사용해서인지 연잎 향 자체가 정말 좋다.
경주, 부여등등에서 먹고 너무나 후회했던 연잎밥과는 완전히 다르다.
(비료를 쓰지 않는 연잎을 찾기 위해 고생했던 김대표의 일화는 무척 재밌다)
식재료에 자신있는 집은,
식재료의 맛을 최우선하면서 잡다한 편법을 쓰지 않는다.
가리고 싶은 것이 없으니 가능한 일.
사진에 제대로 나오질 않았는데 우측에 두부도 함께 나오는데...
아무리 좋은 두부라고 해도 김대표는 간수를 다 빼버린다고 한다.
간수를 빼는 것도 끓여서 빼고 채우고를 반복해야하는 고된 일.
마지막은 배냉면.
단품으로 먹어도 대단히 만족할 정도로 맛이 훌륭하다.
그런데 마지막 코스로 내긴 좀 많이 쎈... 느낌이 있다.
차라리 매운 맛을 조금 빼고-그렇다고 맵지도 않지만- 셔벗처럼 식사 전에 나오는 구성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든다.
디저트와 차/커피가 나온다.
와이프는 연잎차를 선택했는데 정말... 만족.
그리고... 연근.
말린 연근 정말 좋다.
딱 한입 먹어보면 알 수 있는, 그 고소함.
연근 정말 말리는게 쉬운 일이 아닐텐데...
대추 역시 조청을 발라 냈다.
다 먹고 얘기하다가 입구 좌측에 있는 별실을 한번 가봤다.
고재도 정말 좋고... 채광도 잘 되는 방.
모임하기에 이만한 방도 없겠다.
아... 좋다.
둘러보니 서촌의 '마지'는 참 제대로 맞는 옷을 입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
종종 들를 것 같다.
이렇게 정성을 다하는 음식점은 흥했으면 싶다.
마지 김현진 대표가 읽고 있던 책.
박찬일 선생님의 신간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