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헬싱키의 레스토랑 데이.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요리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이렇게 말하는게 엄청 어색할 정도로 모르는 이가 그닥 없을 프로그램이지만.
이 프로그램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의 몫이니 왈가왈부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15분 안에 거의 패잔병 수준의 식자재로-아닌 경우도 많지만- 뭔가 그럴싸...해보이는 음식을 15분만에 뚝딱 내놓는다는 판타지물.ㅎ
다 좋은데,
이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장치인 '냉장고'를 다루는 이 프로그램의 시선은 어딘지 상당히 불편한 부분이 있다.
우린 뭔가 빈 곳을 채워넣으려는, 혹은 채워넣으라는 무언의 욕망을 강요받는다.
책장이 비면 책을 채워넣고, 옷장이 비면 옷을 채워넣으며, 음반 라이브러리가 비면 CD나 LP를 채워넣는다.
조금씩 채워지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기도 하지.(나 역시 책장이나 음반 라이브러리를 채워가고 있다)
냉장고도 마찬가지.
냉장고가 마치 식자재의 선도와 유지를 위한 망고땡 해결사로 확실하게 인식된 우리나라에선 너도나도 할 것없이 거대한 냉장고를 집에 들여놓으려고 하며,
심지어 그 '거대한' 냉장고는 상당수 소비자들의 로망처럼 인식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거대한 첨단의 냉장고야말로 식자재의 선도와 유지를 지켜주는, 저장고로서의 역할을 과도하게 믿고 있는 듯 하다.
요즘 처럼 출산율은 한없이 떨어지고 1인 가족은 급속히 늘어나는 세태에 이러한 거대한 냉장고들은 급변하는 우리들 삶의 방식, 가족 구조의 변화와는 동떨어진 경향이 있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선 보다 전문적인 견해가 필요할 것 같으니 나같은 문외한은 일단 이 부분은 차치하고...(원룸에 기본 비치되는 냉장고는 제외하고)
이렇게 집집마다 흔히 볼 수 있는 거대한 냉장고는 그 빈 공간을 채워넣어 만족을 느끼려는 많은 이들의 욕망을 끊임없이 부추긴다.
이런 세태에는 대형 마트의 범람도 한 몫 단단히 하는 것 같다.
조금 더 싸게 판매한다는 명목으로 대량 구매를 유도하는 대형 마트의 판매 방식은 사람들에게 늘 필요 이상의 식자재, 음식, 음료를 구입하게 한다.
원 플러스 원 (1+1), 하나더 이벤트, 1.5kg 이상 구매시 50% 할인...
대형마트는 자신이 소비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양을 소비하는 것이 결국 경제적으로 이득이라는 잘못된 샘법을 소비자들에게 끊임없이 주입시킨다.
이렇게 늘 필요이상의 소비를 강요받는 우리들은 이제 이런 소비행태에 무섭도록 익숙해져있다. 비단, 이건 식음료만을 구매할 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니까.
그런데 과연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과잉구매한 식음료들을 적절히 소비하고 있을까?
필요 이상으로 더 먹고, 혹은 버려지는 건 아닐까?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냉장고, 냉동고를 뒤져보면 어느 정도 현실을 인식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을 지 모른다.
1년 이상 건드리지도 않은 식자재들이 냉장고에서 뒹구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테니.
-난 절대 그렇게 엉망으로 냉장고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분들도 많으실테지만 우리가 늘 과잉소비를 강요받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그때그때 필요한 양만큼만 집 주변 인근 마켓에서 구입하여 조리해 먹고 치우는 삶은 분명 대부분의 식탁에서 밀려났다.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에는 늘 두명의 손님이 출연하고 그들이 집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냉장고를 가져와 '전시'한다.
냉장고가 아담하거나 작은 사이즈라면 MC들은 거의 예외없이 '냉장고가 참 아담하네요'라는 언급을 한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냉장고가 훵~하니 비었으면 CG처리까지 곁들여지며 '~훵'하다는 표현과 함께 당황하는 셰프들의 모습도 함께 비춰준다.
냉장고가 가득가득 차있으면 MC와 출연 셰프들은 일시에 '오~'하는 탄성을 내지르지.
이렇듯 반복되는, 매주 반복되는 모습은 냉장고를 통해 출연 손님들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까지 가늠하는 척도로 작동하기까지 한다.
냉장고에 미리 뭔가라도 채워놓지 못한 채 출연한 손님은 훵한 자신의 냉장고가 자신을 발가 벗겨놓은 기분이라며-실제 이런 표현을 몇몇 손님들이 쓰기도 했다- 머쓱해하고 출연 셰프들에게 미안함을 전하기도 한다.
트러플까지 채워넣은 출연 손님은 뭔가 내가 '이렇게 잘 살고 있다'는 듯 의기양양해하기도 하고.
물론,
냉장고가 훵~하니 빈 출연 손님들이 모두 인근 시장이나 슈퍼마켓에서 그때그때 식자재를 조달해 조리하고 치우는 삶을 지향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이 프로그램이 은연 중에 그럴싸한 식자재로 가득찬 냉장고를 부러움의 대상으로 끊임없이 포장하고 있다는건 무척 불편하다.
출연 셰프들이야 식자재가 풍성하면 자신들이 다양한 요리를 보다 수월하게 조리할 수 있으니 그렇다치지만 MC들까지 이런 대상화에 앞장서는 것은 다소 불편하다는거지.
음식 프로그램들의 인기가 예전만 하지 못하다지만 그거야 많은 이들이 이미 예견했던 바이다.
음식이라는 것이야말로 삶에 밀접하게 천착된 일상임에도 수많은 음식 프로그램들은 끊임없이 우리의 음식 문화를 관음적으로 대상화한다.
이 정도되면 그럴싸한 음식 프로그램이 하나둘 나올 법도 한데 그런 프로그램을 거의 볼 수 없다는 것도 난감하다.
그저 여전히 끊임없이 방송에서 음식을 만들고 음식점을 소개하는 방식에 그치고 있지.
-이정욱 PD의 음식 프로그램 얘기는 다음에-
오늘은 월요일.
어김없이 '냉장고를 부탁해'가 방영되는 날이다.
+
우리가 집주변 인근의 작은 상점에서 식자재를 원하는 만큼 구입해서 그때그때 소비하는 삶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당장 우리 식탁만 봐도 우린 자유주의라는 명목 하에 로컬 마켓의 건강한 생태계를 진작에 박살내버린지 오래다.
일회용 젓가락은 중국산, 생선, 고기도 외산, 하다못해 나물도 외산...
경제논리를 좇아 넘실대는 재화의 이동은 결국 우리의 지역 경제를 완전히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 일요일, 머리깎으러 미용실에 갔다가 손님이 넘 많아서 되돌아나오면서 요즘 아이들에게 엄청... 떴다는 어느 핫도그 집에 들러 하나 먹어봤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리니 번호표를 뽑아야하고 좀 기다려야하더라. 도우에 쌀을 이용해서 바삭하게 만들고 늘 먹던 핫도그에 비해서는 소시지 다운 소시지를 넣었으며, 여기에 오징어 먹물 핫도그, 모짜렐라 핫도그등등의 메뉴를 넣어 아이들의 입맛, 나아가선 어른들의 입맛까지 자극한다. 맛도 나쁘지 않다. 쌀을 이용해 바삭하게 만든 도우(?)와 다른 핫도그에 비해 충실한 맛의 소시지는 이 가격에 더 바랄 부분은 없을 듯 하니 말이다. 그런데 한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는데 그건 핫도그를 튀겨내는 기름통이 하나뿐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데 잠시 문을 닫거나 그런 시간도 없이 그냥 이렇게 문열어서 문닫을 때까지 쉴 새 없이 핫도그를 튀겨낸다. 의아해졌다. 저 기름, 도중에 한번 갈기는 하는걸까? 기름 한번 빼고 갈려면 적어도 1시간 30분 이상은 영업을 못할텐데 그렇다고 기름통이 두개도 아니고 하나. 하지만 업장 어디에도 잠시 휴식 시간이 있다는 얘기는 써있지 않았다. 그저 계속 밀려드는-정말!- 손님에게 번호표를 발부하기에 정신이 없을 뿐이지. 가격이 저렴한 음식이니 그 정도는 이해해야하는거 아니냐고 혹시... 말하는 분이 계시다면 그건 정말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렇다면 그 비용을 음식에 포함하고 깨끗한 기름에 튀겨낸 핫도그를 판매하는게 맞지. * 혹시 이곳에서 핫도그를 먹는다면 업장에 소스가 몇가지 준비되어있는데 치즈 머스타드...허니 머스타드 이 두 소스는 얹지 않는게 낫지 않나 싶다.
와이프는 여기서 말한대로 약간 설탕을 묻혔는데 난 아예 안묻힘. 그리고... 소스는 걍 케첩만 올리는게 나을 듯. 맛은 바삭바삭한 도우(?)와 보통 핫도그보다 나은 소시지가 들어있는 덕분에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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