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닉 (BOTNIQ)
https://www.instagram.com/botniq/
개인적으로 몇가지 일이 있었다.
출근한지 3개월 좀 넘게 다닌 회사는 11월 25일까지만 다니기로 했다.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빨리 그만두는 회사가 되었네.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나처럼 회사에서 대표이사와 직접 부딪히며 일을 해야하는 경우엔 대표이사와의 코드가 맞질 않으면 정말 일을 하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입사 전, 4개월 간의 컨설팅 기간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던 불협화음의 여지를 잘 덮고 지나갈 수 있을거라 생각한 내 판단이 사실 좀... 안이했다.
그렇다고... 내가 대표이사와 언성을 높이며 싸움을 하거나 감정 소모적인 냉랭함을 보인건 결코 아니다.
나도, 대표이사도 적당히 선을 지키면서 서로의 정책 방향에 대해 얘기했을 뿐이고, 그 결과 서로 잘 맞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을 뿐이다.
아쉬움은 크다.
내가 정말 해보고 싶었던 일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나오게 되었으니 진한 아쉬움이 남는건 당연하지.
아무튼...
난 12월 다른 회사로 출근하게 된다.
참 오래 기다려주신 분이시고, 나도 한번은 꼭 함께 일하고 싶었던 분이시니 25일 퇴사한 후 일주일간의 시간을 알차게 보낸 후,
새로운 마음으로 출근하련다.
+
토요일.
퇴사를 결정했으면서도 여전히 스트레스는 보통이 아니어서 당분간 주말은 어디 나가지 말고 푹... 쉬고 싶다고 했었다.
그런데 막상 집에서 쉬고 있으니 이게 또... 힘든거지.
결국 오전 11시쯤,
10월 한달 연수가신다고 문을 닫았던, 우리가 참 좋아하는 일산의 프렌치 레스토랑 '보트닉 (BOTNIQ)'에 전화하여 점심 예약을 하고,
기쁜 마음으로 차를 몰았다.^
도착.
그런데 와이프가 예약 전화를 넣으면서 좀 안타까와했다.
당일, 그것도 점심 예약인데 아무때나 오셔도 됩니다...라니...
그 얘기는 예약이 별로 없다는 말.
이렇게 맛있는 집에 예약이 풀로 차서 돌아가지 않다니, 와이프가 그래서 속이 상했나봐. 흐...
'아니, 오늘만 그런 걸거야'라고 난 말했지만...
예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보트닉은 참 섬세한 아름다움이 있다.
상가 건물 2층이라는 다소 의외의 공간이지만 화병, 화분, 비치된 소품들, 쿠션, 벽 색상, 톤다운된 청록의 웨인스코딩 벽,
원목 의자, 브라스 플레이트 POP로 제작된 음료 메뉴판, 펜던트 램프...
하나하나 정말 세심하게 잘 배치된 느낌이 든다.
이런건 분명 이곳을 꾸민 보트닉 스탭분들의 센스이자 안목이지.
우린 배가 많이... 고팠다.
예전에 들렀을 때와 달라진 메뉴판을 받고,
엇... 2코스 / 3코스 메뉴로 너무 간소화된 것이 아닌가?하는 마음에 살짝 불안함도 있었다.
그런데 이건 다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아.
코스 하나 정도가 빠지고 메인의 포션이 늘었으니.
런치코스는 디저트&커피가 포함된 경우 3.5만/1인이며,
디저트&커피가 제외된 경우 3만/1인이다.
내가 뭔가 웃긴 얘기를 해서 빵 터져버렸다.
정말... 맘에 들었던 그리시니.
저... 치즈폼도 잘 어울리고.
거품이 잘 올라온 치즈폼.
웰컴 디쉬로 나온 채소를 잘 우린 부용.
아... 난 이 메뉴가 정말정말 좋았다.
잘 우린 육수, 쫄깃쫄깃한 참소라의 식감도 좋았고 구운 소뼈와 야채의 풍미 역시 좋았다.
스탭분께, 한 접시 가득 주셔도 다 먹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진심이었다.
정말... 좋았어. 이렇게 갑자기 싸늘한 날에는 더욱 더.
보트닉의 빵.
겉은 바삭하면서도 적당히 간이 된 훌륭한 빵.
이 빵 만으로도 충분한 식사가 될 정도로 훌륭하다.
앙트레.
레몬드레싱 샐러드와 홍새우, 애호박 구이의 오픈 라비올리.
...
끝내줬던 갑오징어가 메뉴에서 빠진 뒤,
한달간의 프랑스 연수에서 돌아오신 뒤,
변화를 주어 내신 앙트레는 오픈 라비올리.
라비올리 속을 채워 낸 것이 아니라 구워내온 새우를 라비올리에 싸먹는 메뉴다.
일단... 새우 자체가 정말 맛있다. 마치 훈연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고소함이 극대화된 새우를 애호박구이와 함께 라비올리에 싸먹으면...
그 맛이 정말이지...
게다가 아래 깔려있는 비스크 소스.
내가 워낙 비스크 소스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정말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입에 침이 가득... 고인다.
그리고 샐러드엔 단맛이 전혀 없다시피 한 레몬드레싱이 올라갔고, 샐러리 잎도 아주 약간 들어간 듯 한데 밸런스가 정말 좋아서 전혀 거부감이 없다.
아니, 거부감은 커녕 입맛을 더 돋구어주는 역할을 제대로.
내가 선택한 메인 요리는 '스페인 이베리코 프레사 구이와 단호박 디종머스타드 퓨레, 송고버섯, 적양파 피클'.
메인은 3가지가 준비되어있는데 '한우 1+ 채끝, 단호박 디종머스타드 퓨레, 송고버섯, 적양파 피클' 메인만 1만원 추가다.
보면...
플레이팅 자체도 예쁘다.
정말 풍미가 그윽한, 구워낸 겨울 냉이가 올라가 있고, 이베리코 프레사 구이 앞에 층을 주듯 올려진 단호박 디종머스타드 퓨레.
수비드 한 고기가 아닌가...싶었는데 팬에 구워서 오븐으로 익힌 후 숯불로 마무리했다고 말씀해주셨다.
부드러우면서도 뒷맛으로 적당히 육향도 올라오는,
아주 만족스러운 이베리코 구이.
그리고 송고버섯의 풍미도 상당히 좋았고 이미 말했듯 겨울냉이도 동공이 확장될 정도로 꽤 임팩트 있는 맛을 준다.
다만,
이건 정말... 개인적인 입맛에 따른 사소한 아쉬움인데,
단호박퓨레는 그 자체로는 대단히 맛있는데 뭔가 이베리코 구이와의 궁합은 조금... 어색하지 않은가 싶었다.
적양파 피클도 그 자체로는 무척 맛있는데 뭐라고 해야할까...
간이 그렇게 강하지 않은 이베리코 구이의 가니쉬로는 맛이 좀 센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
물론... 이건 그냥 먹기나하는 둔감한 내 기준에서 하는 말이지만...
그런걸 다 떠나서... 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아껴 먹었어...-_-;;;
와이프가 선택한 메인은 '염장 대구 구이, 홍합, 강원도 홍감자, 브로컬리, 홍합소스, 흑임자'
이거... 정말... 좋았다.
솔직히 말하는데...
나 이 메인 따로 추가로 주문할 뻔했어.
끝까지 고민했잖아. 정말...-_-;;;
염장한 대구이니 간이 좀 있다.
그런데 그게 딱 맞는 메뉴.
대구를 구워낸 정도, 홍합소스와의 조화... 이 메뉴는 진짜 끝내준다.
다만, 와이프도 적양파 피클은 약간 맛이 튄다는 얘기를 하긴 하더라.
우린 디저트&음료 가 포함된 런치 코스를 주문했다.
디저트&음료가 포함되지 않은 코스는 가격이 5,000원 더 낮다.
그러니...
이 훌륭한 디저트&음료가 고작... 5,000원이라는거지.
사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이 디저트.
대충 나오는게 아니다.
얼그레이 아이스크림 아래에 무화과와 베리 콤폿을 깔고 유기농 요거트를 얹었는데 그 조화가 정말이지 훌륭하다.
얼그레이와 베리의 조화는 정말...
거기에...
카모마일 차까지 곁들이니 끝내주는구나.
호사로운 마무리.
와이프는 커피를 부탁했는데 커피도 훌륭하다.
산미가 강하지 않게 느껴지는, 딱 우리 취향의 커피.
정말...정말... 잘 먹고 나왔다.
다음엔 꼭 디너로!
이런 집... 정말 많은 분들께서 경험하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