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23일 올린 글을 약간 부연했습니다.*

 

 

[Rushmore/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Directed by Wes Anderson
1998 / 93 min / US R rated


누군가가 요즘 10대들 세상 물정 모르고 나댄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사실 이런 얘기 무척 많이 들리는 소립니다. '뭘 모르니까... 저러지',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지 모르니...'
이런 어른들의 얘기는 발에 채이듯 귀에 채입니다.

그런데 조금 달리 생각이 드는 것은 10대들이 과연 정말 세상물정을 모르는 것인지하는 의구심입니다.
반대로 너무 많이 알아서, 너무 빨리 세상을 다 접하고 판단하게 되어서 그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으로
일탈과 가벼움에 젖어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PC 앞에만 앉으면 속속 알 수 있는 별의별 정보들, 정보들의 홍수 속에서 자신이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은 정보임을 가려내고

섭취하는 것은 지적 수준 높은 고등 교육자들도 힘들고, 그들 역시 수많은 유혹 앞에 무릎꿇고 마는데,

하다못해 10대들이 그런 정보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까요?
그들에겐 은연 중에 감당하기 힘든 사회의 벽을 일찌감치 체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치 불꽃처럼 지금 당장 타오르지 않으면, 영영 그 자유를 만끽하지 못할 것처럼 자신의 시간을 태워 소진시키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서론 무지하게 길었습니다.
이 영화는 '러쉬모어'라는 일류 사립학교에서 공부를 제외한 취미써클활동에 광적인 열정을 바치는
맥스 피셔...라는 너드 캐릭터(Nerd Character=얼간이)에 대한 얘기입니다.
맥스 피셔는 양봉반을 비롯, 팬싱, 연극...도대체 헤아릴 수 없는 써클의 회장으로 있지만 그만큼 공부에
열중할 수 없어 성적은 영...시원치가 않고 결국 과락으로 퇴학될 위기까지 몰리게 되지요.
사실 그는 어렸을 때 쓴 천재적인 희곡덕분에 이 학교에 장학금까지 받고 입학했지만 교장의 눈 밖에 난 지도 오래됐습니다.
게다가 새로이 부임한 하버드 출신의 여선생 크로스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고 그 사랑의 도가 점점 심각하게 됩니다.
그때문에 맥스 피셔는 학교를 퇴학당하게 되고, 묵묵히 교감의 정을 쌓아가던 블룸이라는 학교 이사장과도 뒤틀리게 되지요.

Wes Anderson의 [로얄 테넨바움]을 보신 분은 이 영화를 반드시 보셔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너드 캐릭터가 종횡무진하는 묘하게 우울할 법도 한 이 시커먼 코메디를 [로얄 테넨바움]
보다도 좀 더 가슴에 담고 있기도 합니다.
이 영화 역시 성장영화임엔 분명하고, 성장영화의 기본적인 틀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 것(주변의 캐릭터와 안티들)도 비슷하지만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따스함이 영화 내내 베어나오는 점과 그 캐릭터들이 얽힌 매듭을 풀며 엔딩으로 향하는 방식과

그 엔딩이 주는 기나긴 여운은 어지간한 성장영화에서 보기 힘든 에너지들입니다.

영화를 보고나면 Wes Anderson이 영국 감독이 아닌가 상당히 궁금해집니다.
그가 다루는 소재들은 데뷔작인 [Bottle Rocket] 이후로 두편 모두 범재가 되어버린 천재, 또는 시스템 속에 묻혀버리는

천재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사실 그 자신이 그런 부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영화를 감싸는 trad folk의 선율이나

필름의 우울하게 따사로운 질감 역시 영국 영화라는 착각을 갖게끔 합니다.
어쨌든... 그는 배우 오웬 윌슨과 상당한 친분을 갖고 있고, 이 영화 역시 그와 함께 공동집필한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너드 캐릭터로서는 최강의 연기를 보여준 주인공 맥스 피셔 역의 제이슨 슈월츠먼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여동생인 탈리아 샤이어의 아들이기도 하고 당연히 코폴라 감독의 조카이기도 합니다.
딸이며 조카며... 코폴라 가문의 막강 파워는 장난이 아니지요. 아시다시피 이 문중엔 니콜라스 케이지도 있습니다.
그리고 맥스 피셔와 묵묵한 우정을 나누는, 멍청한 아들 둘을 둔 이사장 블룸 역의 빌 머레이는 최고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아마도 제 생각엔 소피아 코폴라가 이 영화를 보고 [Lost in Translation]에 그를 낙점하지 않았을까...
확신하는데요. 그 이유는 이 영화에서의 일상에 지치고 의욕을 잃고 찌든 빌 머레이의 모습이

바로 [Lost in Translation]에서의 그의 모습과 너무 너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코폴라 문중의 주연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이고

유망주 Wes Anderson감독의 영화를 소피아 코폴라가 지나쳤을 리 만무하고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이 영화를 보셨다면,

또는 보신다면 저와 같은 생각을 반드시 하실 텐데요.
주인공 맥스 피셔는 분명 너드 캐릭터이지만 그 자체로 존중받고 오히려 동경의 대상이기까지 합니다.
그를 악의적으로 대하는 캐릭터까지 사실은 그의 능력을 존중하고 있지요.
보는 내내 우리나라에서 저렇게 했다간 여지없는 왕따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해봅니다.
그가 퇴학을 당해 전학간 학교에서 전 당연히 왕따의 수순을 밟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제 예상은 상당히 빗나갑니다.
에버츠도 지적했듯 이것은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하는 여유로운 갸들의 사회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쟈들도 엄청 왕따하고 폭력을 일삼지만, 무언가 신념을 갖고 열정으로 일하는 캐릭터들은 그 주체에 따라 주류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는 거지요.

**
제이슨 슈월츠먼은 코폴라 감독의 딸인 소피아 코폴라의 신작 [Marie Antoinette]에서 루이 16세로
열연했습니다. 전 [Marie Antoinette]를 보면서 한번에 알아보지 못했답니다. ㅎㅎ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