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시... 2004년 5월경 쓴 글입니다. 요즘 완전 예전에 올린 글로 떼우는 군요.ㅋㅋ*

 

 

[Total Western]
Directed by Eric Rochant
2000 / 84 min / France, -12 r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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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마피아나 한국의 깡패나 둘 다 깡패일 뿐입니다.
어디는 폼나게 양복입고 버젓한 사업한다고, 어디는 깍두기 머리하고 검은색 면티 딱 붙게 입고 다닌다고
서로 구분할 게 없습니다. 어느 경우든 서민들 피뽑아먹고 사는 점은 국회의원들과 다를 바가 없지요.
온갖 협잡과 배신이 난무하는 그곳을 우리 영화들은 너무 심하게 왜곡하고 미화시킵니다.

그런 개뿔 말도 안되는 조폭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그린 건 바로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송능한 감독의 [넘버 3],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이었습니다. 물론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나 작년
류하 감독님의 영화도 포함할 수 있겠죠. 우정이고 의리가 개나발이고 협잡과 배신과 음모만이 판을 치는,
새파랗게 어린 학생들을 칼침받이로 내세우는 세상, 더이상 존경이란 없는 세상. 바로 그것이 조폭들의 세상
이라는 걸 적나라하게 드러내죠. 특히 작년 류하 감독님의 [비열한 거리]에서 조인성은 영화 감독 친구에게
이런 말을 건네죠. '어디 의리에 죽고 사는 진한 건달 영화 한 번 만들어달라'고. 기가막히게 우습고도 씁쓸한
대사...였지요.

[Total Western]은 [동정없는 세상]의 에릭 로샹 감독의 2000년작입니다.
주인공 베데는 마약을 거래해주면서 돈을 받는 과묵한 건달입니다.
어느날 자신의 보스이다시피 한 베르고자가 베데와 끈이 있는 마약 거래상에게 물건을 받아오라는 명령을
하죠. 아무 문제없이 거래가 끝날 수 있지만, 베르고자가 함께 보낸 멍청한 똘마니 덕에 양측은 삽시간에
총질을 해대고 베데를 제외하곤 모조리 몰살당하고 맙니다.
거래를 위한 돈가방을 챙겨 총상을 피하기 위해 어린 시절 말썽부리던 시기부터 잘 알던 질베르에게 간
사이 마약을 주기로 한 마피아의 두목은 베데의 보스인 베르고자를 살해하고 돈가방을 받기 위해 베데를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베데는 위기를 직감하고 질베르를 통해 소개받은 한적의 밀로 교외의 청소년 감화원
으로 숨어들게 되지요.
당연히... 마피아들은 베데의 위치를 알아내고 드디어 감화원으로 쳐들어 가게 됩니다.

추적을 피해 교외나 한적한 곳으로 숨어드는 영화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만,
무엇보다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 모두를 피하기 위해 해리슨 포드가 아미쉬 교도들 사이에 섞이게 되는
피터 위어 감독의 [Witness]를 빼놓을 수 없겠네요.
이 영화는 이렇듯 익숙한 소재와 설정으로 다가옵니다.
제목에서 쉽게 예측할 수 있듯이 후반부 액션 장면들은 과거의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들의 장면들을 차용한
장면이 마구 등장합니다. 배경 음악까지 그렇구요.
이들이 결투를 벌이는 한적한 교외의 감화원도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죠.

그렇다고 이 영화가 겉멋에 충실한 '스타일리쉬'한 액션 영화냐...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선 폭력을 다루는 방식이 꾸밈없고 솔직합니다. 폭력이 미화되거나,
스타일로 다가오는 법이 결코 없어요.
감화원의 청소년들은 걸핏하면 나이프를 꺼내들고, 어떤 총을 쏴봤다는 둥 떠들어대지요.
게다가 감화원 주변에서 전직 육군 대령과 함께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젊은이들도 서바이벌 게임과 실전을
똑같이 '재미'로 생각할 뿐이죠.
이런 두 부류가 실제 '폭력'과 맞닥뜨리면서 폭력의 실체를 대면하며 느끼는 공포감이 이 영화에선 아주 잘
나타나고 있어요.
'폭력'은 '폭력'일 뿐이고, 그것이 가벼운 치기로 맞닥뜨릴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중후반 이후로 펼쳐지는 길고 긴 감화원 액션씬은 단 한번도 멋진 폼으로 총을 쏴대는 장면이 없음에도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설정도 참 멋지구요.

영화의 후반부에 망연자실 석양을 바라보며 주저 앉아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이 영화가 주지하는 바가
분명하다는 점, 그리고 그 주지하는 바를 향한 내러티브도 적절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요.

아주 인상적인 한편의 액션 영화이면서, 많지 않은 대사 속에서 카메라의 시선과 폭력을 대하는 방식 만으로
이렇듯 확고한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영화란 좀처럼 접하기가 힘들죠.
[캠퍼스 군단/Toy Soldiers]등의 학생들이 테러리스트에 맞서 싸우는 웃기는 사발라면같은 가벼운 인식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는 셈입니다.(아, 물론 [캠퍼스 군단]도 재밌게 보긴 했어요.)
그건 서바이벌 게임을 하던 젊은이들과 퇴역 군인이 실제 중화기로 무장하고 감화원으로 잠입하는 장면에서
분명히 접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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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화원에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터키나 아랍계의 아이들입니다.
이들에 대해 무차별 폭력을 시작하는 마피아의 수장은 당연히 순수 프랑스인이고, 똘마니들 중엔 동구유럽계가
있습니다. 순수 백인들의 무차별적인 인종차별과 탄압을 은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주 강하게 들더군요.

***
베데 역의 사무엘 르 비앙은 아주 적역의 캐스팅이더군요.
과묵한 듯 하면서도 인생을 달관한 듯한 웃음은 이 영화와 딱...맞아 떨어져요.
아시다시피 오드리 토투의 [He Loves Me, He Loves Me Not...][Jet Set],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의 삼색씨리즈...에서 볼 수 있었던 프랑스의 유명배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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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자로 등장하는 미모의 크리스텔 역을 맡은 여배우는 알렉시아 스트레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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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로샹의 대표작은 아무래도 1989년작인 [Un Modnde Sans Pitie/동정없는 세상]이지요.
이 영화는 누벨 이마주의 전형적인 영화로서 드라마적인 플롯을 중시하는 성향의 대표적 영화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베니스 영화제에서도 상을 받았죠.
이후에 에릭 로샹은 다소 주춤했고, [Total Western]도 그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화적 재미와 지향점은
여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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