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인들의 조잡한 조어(造語) 솜씨를 많이 비웃은 사람이다.
중국이 문자 고고학적 집적(集積)이라고 할 수 있는 한자를 간체자(簡體字)로 바꾸었을 때도
나는 많이 비웃은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비웃지 않는다.
소통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통이다.
반평생 영어만 끼고 살아온 내가, TV 토론자들이 쓰는 영어 앞에서 쩔쩔매는 것은 여전히 영어에 무식하기 때문이라고 치자.
반평생 글만 써 온 내가 군청에만 가면 쩔쩔매는 것도 한국어에 무식해서 그런 것인가?
글 부리고 말 부릴 때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묻는다.
소통을 원하는가, 과시를 원하는가?
한 고위 공직자의 말이 가볍다고 온 나라가 야단이다.
무엇이 놀라운가? 그 공직자는 과시적 언어라는 이름의 넥타이를 풀었을 뿐이다.

[말이여, 넥타이를 풀어라] 이윤기님의 서평 중에서


*
병원에 가면 아픈 아이를 데리고 간 부모의 마음에, 혹은 도대체 내가 어디가 아픈 것인지 궁금한
마음에 의사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게 된다.
인터넷이 설익은 가짜 의사들을 양산한 것, 그래서 그런 억지 추측에 일일이 답변하는 그들의 심사가 꽤나 뒤틀렸을 것도 이해는 한다.
다만, 그들은 언제나 '외계어'로 환자를 요리한다.
그들이 적는 처방전도, 거의 별 무반응인 답변도, 뭐 하나 속시원하게 말해주는 것이 없다.
그냥 일어나서 진료실을 나오며 수납을 하고,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서 약을 타오는 것 외엔 아무런 소통도 없다.
최소한의 소통이란 서비스를 바라는 것도 무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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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아니 하다못해 보험 약관등을 보더라도 우린 그곳에 적힌 글들이 한글인지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한다.
내가 중학교 1학년때 [파우스트]를 읽던 기분이 다시 생각나니까.
한줄을 읽고 아래로 넘어가면 다시 윗줄을 또 읽어야 한다.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으니 이해를 하려고 몇번을 되읽어야 하니까.
난 이해할 수가 없다. 왜 그리 어려운 말로 과시를 위해 적어 놓았는지.
정말... 民政이란 것이 '소통'으로부터 시작하는 지 모르는 건가?

 

 

***
상상플러스...라는 프로그램은 현재는 이미 사장되어 버리다시피한 우리말들을 다시 조명하자는데 주력하지만,
이전엔 외계어처럼 변화된 10대들의 은어/속어를 소개하기도 했다.
웃긴다. 언제부터 우리가 세대별로 이렇게 단어들을 따로 공부하는 수고까지 해야 하는지.
얼마전 동호회에서 '쩐다'라는 말을 누가 물어보는 글에 댓글로 '네, 맞습니다. 현재 급속하게 유행하고
있는 은어입니다.'라는 식으로 자랑스러운 댓글들이 달리는 꼬락서니를 보고 가소로와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말은 서로간의 약속이다. 시대를 거스를 마음도 없지만, 자고 나면 양산되는 이 해괴한 은어들을

일일이 공부하면서 뜻을 이해한다면 그런 약속따위도 필요없는거다.
줄임말도 아니고... 그냥 새로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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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서로가 소통한다는 건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거, 과거 PC통신 시절부터 뼈저리게 느껴왔다.
소통하는 법을 모르는 우리들은 적당히 내 의견을 곱게 포장한 글을 올리거나 아니면 아예 가면을 쓰고
힐난하기에 열을 올리기 급급하다.
애당초 텍스트와 텍스트로 서로를 교감한다는 건, 머릿 속에 탁월한 인코더가 없는 한 불가능에 가깝다.
아날로그적 정서가 디지털라이징된 코드값의 텍스트에 그대로 전이될 수 있는 것은 순간적인 감정의 폭발과 힐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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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성이가 점점 같이 놀 아이가 없어진다.
그나마 몇 있던 친구들도 이제 학원 시간을 앞당겨 총총 걸음으로 사라진다.
아이들이 덩그라니 혼자 남게되면 스스로 사회화를 학습하려 하진 않는다.
게임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며, 환경이 혼자 있는 아이를 지배한다.
아이들은 자기가 맘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너무 쉽게 폭발한다.
솔직한 것과 정서적 위압감을 느껴 폭발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다.

점점 소통하기 힘든 세상이 되는 것만 같아 답답하다.
나 자신도 그럴지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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