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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주방장의 '몽로(夢路)'에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사진도 정리하고 글도 올리고 식구들끼리 희희낙낙하게 수다를 떨고 있다가 페이스북에서 21일째 단식 중인 희생자 아버지의 사진을 접했다.
접하자마자 덜컥... 내가 뭔가 큰 죄를 지은 것마냥 죄스러워지는 마음이 들더라.
그렇지.
아주 얄팍한, 양심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은, 적어도 난 아직 인간이야라고 스스로 말하고 싶은 남아있는 일말의 양심이 발동한 것이었을 뿐이다.
(모두가 다 똑같은 모습으로 추모하고 계속 슬퍼해야하냐... 이런 의도의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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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페이스북 메신저로 지인과 한참을 얘기했다.
지인은 내게 예전과 같은 활력이 보이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어깨가 많이 처진 것 같다고 얘기하더라.
그래,
사실이 그렇다.
몰상식이 보편화되고 양심따위 찾을 수도 없는 파렴치한,
인간이기를 거부한 탐욕스런 작자들이 뭔 짓을 해도 정권을 해먹을 수 있는 현실은 알게 모르게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울분으로 짖밟는다.
누군가는 '나 혼자 정도를 지키고 살면 손해보는거야'라고 자신의 파렴치함을 변호하기 시작하고,
누군가는 '세월호 이야기는 그만했으면 좋겠다. 듣기도 괴롭고 경제도 엉망이다'라는 헛소리로 답답한 현실에 작별을 고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유말고도 난 가장으로서의 내 능력에 요즘... 심히 의문이 들곤 한다.
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내 욕심은 앙상한 월급 통장을 보면 한없이 작아지기만 하고,
이런 탐욕의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는 내 마음 역시 앙상한 통장을 보면 좌절에 이르게 된다.
나야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는데 앞이 뻔히 보이는 이 나라에서 내 아이를 키우기 싫다...는 생각을 아무리 되뇌어도 이를 현실적으로 돌파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나는 없다.
***
앞으로 내 아들은 군대에도 가야하고, 취직도 해야할 것이며, 결혼도 고민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군대는 가장 폐쇄적인 집단으로 고질적인 비인간적 처사가 조금도 개선될 조짐이 없고, 앞으로 더더욱 심해지기만 할 것이고,
탐욕으로 따지자면 미국, 멕시코, 브라질 재벌들을 쌈싸먹는 한국의 재벌들이 거의 모든 산업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상황에서 취직도 녹록치 않을 것이며,
그로인해 살기 힘든 세상에서 결혼 역시 요원한 꿈같은 세상이 가속화될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내 앙상한 통장을 보면 난 가장으로서 완벽하게 무능한 아빠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항상 그랬지만,
요즘 아들과 더 많은 대화를 한다.
앞으로 아들이 자신이 믿는 신념과 파렴치한 현실의 충돌 속에서 힘겨워할 일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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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변혁이 이처럼 절실하게 다가온 적도 없는 듯 하다.
그런데 참 웃기지.
이렇게 절실하다면서 난 도대체 6년 동안 뭘하고 있는거지?
우리 아이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위해 준비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것들도 지금 두달 이상 거의 손놓고 있는 나를 보면서,
국민이 병신이라더니 내가 딱 그 모양이구나...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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