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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존스에서 피자를 시켰다
피자를 시키면 30분 안에 피자는 '반드시' 집까지 배달된다.
아니나 다를까 '30분 안에' 피자는 정확히 배달되었고 정말 친절한 배달직원은 요금을 받고
대문을 잘 닫아달라는 부탁에도 싹싹하게 대답하곤 나갔다
곱씹으니... 예전 기억이 난다.
피자 30분 보상제가 있었던 모 피자 회사.
난 그때 주문폭주인가? 뭔가로 35분이 넘어서도 피자 배달원이 집에 오질 않자
이 기회에 보상제로 요금을 안받는다는 그 피자 회사의 광고를 떠올리며 오히려 기뻐했다.
그 시간 동안 보상제때문에 죽음의 질주를 하고 있을 피자 배달원의 목숨 건 레이싱은 생각도 못하고 말이지.

길을 다니다보면 곡예 운전을 하듯 레이싱을 펼치는 피자, 중국집 배달원들의 오토바이들을 볼 수 있다.
많은 이들처럼 나도 그들을 보며 '정말... 놀고들 있구나'란 생각을 하곤 했다.
사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제대로 인지한다면 그럴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니까. 게다가 실제로 주변에서
바이크 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하고 크게 다친 친구들이 있는 터라 그런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 앉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한 번도 그들이 단순히 오직 '치기'때문에 그렇게 레이싱하는게 아니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들의 광폭한 운전, 시도때도 없는 신호위반 이면엔 그들을 죽음의 레이싱으로 내모는
'30분 배달제'가 있다는 걸 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부끄럽다.
얼마전 목숨을 잃은 한 피자 배달원의 사고를 접하고서야... 난 이런 생각을 처음 할 수 있었다.

까짓... 조금 더 미리 주문하면 큰 차이도 없이 피자를 받아 먹을 수 있을텐데, 우린 목숨을 담보로 그 몇분~몇십분을 먼저 받는다.
이래저래 짧은 생각을 했던 스스로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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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은 이제 헤어나올 수 없는 덫이 되어 버렸다.
대학생들은 스펙도 맞추지 못하고 졸업하면 영영 낙오자가 되니 교환학생에 지원하거나 아니면 어떻게해서든 해외에라도 나갔다 온다.
졸업 전 휴학은 이제 무슨 당연한 코스처럼 되어가는 것 같고, 면접에서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탈락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대학들은 서울의 캠퍼스를 처분하고 지방으로 하나 둘 내려간다.
통학이 힘들어진 학생들은 이전의 등록금 부담뿐 아니라 기숙사나 자취방을 구하는 부담까지 짊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할 곳이 마땅히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교 3학년 올라가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겉잡을 수 없는 강박과 두려움.
이게 지금 우리 대학생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내 16년 차이나는 막내동생이 지금 대학교 3학년이다)
대학생들이 가장 하고 싶은 것 1위가 '취직'이 아니라 '이민'이라는 것은 젊은 이들의 좌절감이
사회에 대한 분노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이런 와중에 대기업의 경제 메커니즘에서 변방에 선 예술인들의 가난은
시장논리로 예술 시장이 잡아 먹혀버리고 있는 현재에 와선 더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얼마전 만난 친구는 한예종 졸업하고 현장에서 일하다가 입봉 준비 중인데 올해로 5년을 준비하고 있다.
당연히 먹고 살기 힘든 그는 아이들 가르치는 일로 연명 중이다.
작가적 소신을 기업 마인드와 공유하지 못하고, 제작/배급 업체의 눈 안에 들지 못하는 이들은
결코 지금의 한국에서 자신이 원하는 예술을 펼칠 수가 없다.
그렇게... 아까운 젊음이 싸늘한 주검으로 오늘 발견되었다.
아무쪼록... 고인의 명복을 빈다.
개인의 절박한 죽음을 두고 그 앞에서 '왜 그 지경이 되도록 식구들에게도 안 알렸냐'라거나
'밖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하지 않았냐'라는 철없는 소리하지말자.
이러한 비극의 본질을 전적으로 개인의 문제라고 폄하하고 치부하는 일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사회따위 바라지도 않는다.
그런 사회가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니까.
다만... 재능을 펼 기회조차 없고, 그로인해 좌절하고 배고픔에 사망에 이르기까지 하는 세상은 정상이 아니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없는 자에겐 이토록 매서운 추위가 정말 잔인하게 느껴졌을거다.
물가는 한없이 올랐다. 이게 다 자연재해 탓이고 다방농가 탓이라는 말을 이 정부 관계자란 것들은 줄창 해댄다.
슬프다.
88년, 89년 그 뜨거운 시간을 보낸 뒤 이토록 사회에 대해 절망적이고 답답한 심경을 느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TV 속엔 '무한경쟁'에서 승리한 1등이 모든 걸 독식하고 나머지는 철저히 들러리가 되는,
오락의 탈을 쓴 신자유주의의 세뇌 프로그램들이 하나둘 늘어만 가고,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이들은 점점 없어지고
참가자들의 신상, 심사의원의 독설에만 매달려 담론 자체가 형성이 되질 않는다.
이런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들은 동일한 가치관을 강요받고, 동일한 목적(경쟁에서의 승리)을 세우고
도태되는 이가 아무 것도 보상받지 못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된다.

난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아들이 있고.
아들의 눈을 보고 얘기하면서 저 맑은 눈에 한없이 고일 눈물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도록 미어진다
정말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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