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씨가 SNS를 통해 박지성 선수의 대표팀 은퇴에 관한 글을 올린 것을 며칠 전 읽었다.
난 그 글이 차범근씨의 개인적인 자기 변명이나 합리화가 아니라
책임을 질 수 있는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진심어린 성찰이 느껴져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연평도 포격 때 차범근씨는 숨진 우리 군인들에게 다른 어른들과 같이 '미안한 마음'을 가졌으나
그 깊은 이유가 '분단된 조국을 그들에게 물려주어서'란 말을 통해 분단 대치의 현실을 이용한
정치적, 군사적 보복이나 떠들어대던 가짜 어른들과는 확연히 다른 성찰의 자세를 보여준 바 있다.
오래전 aipharos.com에 글을 올린 바 있지만,
난 야구부가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에도 야구부가 있었는데 각 반에 한 명 정도는 야구부원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는 그 당시 특수 고등학교여서 정말 지긋지긋하게 공부에 올인하는 학교였는데
이 야구부 친구는 한 번도 교실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거의 다 였고, 시험이라도 보는 날엔
시험 시작하자마자 OMR카드에 주르르... 답을 찍고 바로 나가거나 아니면 교실에서 끝까지 잠을 자고 일어나 나가곤 했다.
당연히 어지간해선 이 야구부 친구와 말을 할 시간조차 없었고, 대부분의 학우들은 이 친구에 대해 무관심했다.
딱 한 번 1~2학년생 전원이 동대문 운동장으로 응원 동원이 된 적이 있다.(그 이후로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그런 적 없다)
바로 같은 반임에도 잘 알지도 못하던 그 친구가 뛰는 야구부를 같은 학교 팀이라는 이유로 그냥 응원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경기에서 우리 학교는 선린상고에 7-4로 패해 버렸지만. 야구를 무척 좋아했고 소질도 있었던 나는
거의 만날 시간조차 없는 그 야구부 친구와 조금은 말을 해가며 안면을 익히고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한참 지나 아마 27세 정도였나? 난 그 야구부 친구를 한 시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허리춤엔 일수가방을 메고 있었고 어딘지 바삐 걸어가는 그 친구를 정말로 반가운 마음에 불러 세웠지만
그 친구는 겉으로는 반가운 척하면서 자꾸만 빨리 자리를 뜨려는 듯 불편해했다.
고작 그렇게 오랜만의 해후가 끝이 났지만 난 그 친구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이후에 한 친구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TV를 통해 마주 대하는 인기 스포츠 경기의 선수들은 비록 그 속에서도 또다시 성적에 따라 등급이 나눠지겠지만.
일단 TV에 나오기만 해도 그들은 해당 스포츠를 시작한 수많은 이들 가운데 극소수에 해당하는 이들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TV 속에 등장하지 않는, 하지만 똑같이 그 스포츠를 학창시절에 시작했던 대부분의 이들은
단 한번도 제대로 정규 교육 수업을 받아보지 못한 채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사회로 강제로 내몰린다.
그러니까... 이 수많은 이들이 '병풍'조차도 되지 못하고 사회로 내몰린다는 사실.
학창시절을 그저 힘겹게 운동만 하고 보냈으니 학력을 그 무엇보다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그들이 발붙일 곳은 생각보다 적고, 적응하기도 힘든 것이 당연한 법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나름대로 경제적인 부를 확보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난 그렇게 예외적으로 성공하신 분들 얘기를 하고 싶진 않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놈의 사회는 항상 '예외적인 성공 케이스'를 대중들에게 표준 규범이자 표준 목표인양 들이댄다.
같잖지 않나? 정상적인 지원이 없는 가운데 김연아 선수나 박태환 선수같은 천재의 케이스가 나타나는 것이 솔직히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이 만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관계자나 대중들은 이들을 가차없이 관심 리스트에서 삭제하거나 병풍 취급조차 안한다.
지난 아시안 게임에서 우린 이러한 해설자와 캐스터들을 계속 목격할 수 있었고 말이지.
사회적 인식, 인프라의 열악함을 오로지 개인의 천재성으로 떼우려는 가증스러운 어른들이 가득한 한국의 스포츠
대다수가 지향해야하는 것이 개인의 철학 위에 이뤄진 목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무언 중에 약속하거나 강제한 '성공'으로 일관화되면
이를 이루지 못한 대부분이 자연스럽게 패배자나 낙오자로 인지되는 가치의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것이 개인의 '성공'이냐를 바라보는 관점이 식민지적이라는 것은 바로 차범근씨가 고백한 성찰 속에서,
박지성 선수가 어떤 매체를 통해 매맞으며 축구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라고 말한 그 이야기 속에서 아프게도 드러난다.
그리고 차범근씨의 성찰처럼,
우린 아무도 이런 현실을 바꾸려하지 않는다.
다들 당연하게 여기고, 어차피 이런 세상이니 우리 자식들은, 우리 후배들은
이런 현실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면서 이런 현실에 적응하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한다.
그래서 다들 영어학원을 보내는 것이고, 어릴 때부터 공부시킨다고 ㅈㄹ들ㅇ르 하고,
운동선수들에겐 정규수업도 빼먹고 운동만 하게해서 어떻게든 운동하는 기계를 만들어내는 것 아닌가.
우습지 않나?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꿔? 란 생각으로 이 세상의 현실이 같잖고 역겨운데도 우리 자식들이나 우리 후배들에겐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동화되고 이겨내라고 얘기하는 이 현실들이 말이지.
누군가 그러는 넌 뭘 했냐?라고 말하면 나도 그닥 할 말은 없다.
고작... 아들 학원 안보내고 그런 식으로 키우지만 이 똑같은 현실에서 심한 좌절감을 느끼게 되진 않을까하는 고민도
난 지금 하고 있으니말이다.
하지만 변화의 모든 시작은 진심어린 성찰이다.
시간이 지나 뒤돌아본 과오와 그릇된 시간을 합리화하지 않고, 그러한 부조리한 상황에서 버텨낸 자신을 합리화하지 않고
그 시간은 잘못된 시간이라고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이야말로 용기있는 성찰이다.
차범근씨는 짧은 글 속에 이렇듯 진심어린 성찰을 올렸다.
문득...
자신에게 가해지는 비판에 같잖은 변명이나 해대고 남의 말은 들으려 하지도 않는,
자기 성찰이라는 말은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우리 나라의 수장이라는 인간이 생각나서 한없이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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