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
나홍찬
2010.12

출연배우 : 하정우, 김윤식, 고성하, 이엘, 탁성은

한국

게으름피우면서 미루고 미룬, 역시 한두번의 예매 취소를 해가며 아직까지 못봤던 [황해].
수요일 밤 11시 15분 상영을 결국 봤다.
갑작스레 보게 된 것은 영화관을 뒤져보니 이날 이후엔 거의 상영하는 곳이 없다시피해서 부랴부랴...-_-;;;
보고나서 드는 생각은 박중훈씨가 트위터에서 늘 하던 말처럼 이왕 한국영화 볼 생각이면
가급적 개봉 1주일 안에 봐달라는 말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황해]가 그 막대한 제작비에 비해 관객은 230~240만 정도로 끝난 것 같으니...
참고로, 현재 [I Am Love/아이 앰 러브]도 상영 중인데 CGV뿐 아니라 롯데씨네마등에서도 상영 중이니 확인하시길.

나홍진 감독의 [황해]의 주연들인 하정우씨와 김윤식씨는 이미 [추격자]를 통해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개인적으로 [추격자]를 인상깊게는 봤으나 기대 이상의 영화 또는 많은 이들이 그토록 칭찬할 정도의 영화이었나?하는
약간의 의구심은 가졌음을 고백한다.(이건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서 더... 크게 느낀다)
하지만 어제 본 [황해]의 짧지 않은 러닝타임 2시간 30여분동안 조금도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극도로 영화에 몰입하면서도
그 정도의 텐션을 잘도 유지해주는 이 놀라운 스릴러를 보고나서 이 정도의 서사적인 스릴러가
앞으로 얼마나 더 나올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여지껏... 이렇게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놀라운 텐션을 기가막히게 유지한 영화는 [Dark Knight/다크 나이트]정도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감독의 고집대로 밀고 간 러닝타임이 얼마나 현명한 판단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추격자]에 비해 다루는 캐릭터가 월등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면면을 충분히 부각시키고 있다.
영화의 시작부터 이 영화의 엔딩이 머릿 속에 다 그려지고, 그 엔딩이 결코 예상에서 빗나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놀라운 긴장감과 다음 시퀀스에 대한 무언 중의 기대를 불러올 수 있었던 것은 이토록 탁월한 연출과 편집,
그리고 배우들의 호연때문일 것이다.
하정우가 연기한 구남은 보는 이로하여금 고통스러운 감정을 절감하게 만들었고, 어찌보면 극사실적인 이 영화 속에서
오히려 비현실적이고 전능한 존재이다시피한 김윤식의 캐릭터 역시 결코 생뚱맞게 느껴지지 않는다.(놀라운 일 아닌가?)
게다가 3장부터 등장하며, 간단한 사건일 줄 알았던 이 영화의 극을 기묘하게 꼬아댄 김태원의 등장은 조성하라는 배우의 한 박자 쉬어가는
영리한 연기로 갈등의 확산이 전혀 거추장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도록 했다.
당연히 배우들의 호연은 안그래도 잘 짜여진 이야기 속으로 더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는 법이고.

사실 영화를 보고 난 지금까지 이 영화의 장면장면이 강하게 문득문득 기억나는 걸 보면
이 영화가 내게 던져준 인상이 단순히 도끼질과 칼부림에 피를 뿜으며 도륙되는 수많은 '고어'스러운 비주얼 때문이 아니라
이 영화가 2시간 30분동안 조금도 호흡을 늦추지 않으며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구축하고 플롯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놀라운 영화적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이토록 놀랍도록 인상적인 영화가, 문득문득 영화의 온갖 컷들이 뒤죽박죽 파편처럼 머릿 속으로 튀어오르지만
정작 이 영화가 가슴을 저미는 감동을 주거나 인생사의 깊은 깨달음을 주는 식의 그런 오글거리는 훈감의 모양새가 아니었다는 것도 희안하다.
하지만, 영화 속의 뉴스 방송을 통해 나오는 보도를 들으며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오늘도 뉴스에서 접하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단순한 결과의 보도 이전에 얼마나 복잡하고 많은 인과관계를 갖고 있는지(그것이 우발적인 범행이었다고 해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영화 속에서 손으로 헤아리기도 힘든 죽어나가는 저 수많은 희생자들은 힘을 가진 자들이 벌이는
쓸데없는 파워 게임으로 인해 죽어나가는, 엄밀히 말해 진정한 약자들의 군상을 제대로 상기시켜주면서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단편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사건들의 밑바닥을 이루는 애처로운 사실일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 같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잔혹한 생존 법칙도 이 영화와 다를 바가 없지 않나.
다만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삶을 동화 속에 밀어넣으며 자위할 뿐이지.

면가가 휘두르는 도끼와 식칼의 참혹함을 바라보면서, 혹은 연변 거주자로 등장하는 조선족들의 개걸스럽고 추레한 모습에서
혹자들은 이 영화 속의 조선족 모습이 조선족을 폄하한 것이 아니냐고 비판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인간들은,
(특히 한국인들은) 너무나 우리 자신들이 속한 준거집단을 신성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걸핏하면 외국 영화에 비쳐진 한국인의 모습을 두고 '한국인을 무시했다. 폄하했다'난리를 피우지 않나.
아무튼... 이 영화에서 보여준 놀라운 디테일 속의 추레함을 정면으로 응시하기에 고통스러운 이들이나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 면가 일당이 보여주는 모습이나 김태원의 부하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이나 대도시에 기생하면서
또다시 먹이 사슬의 가장 아래에 깔려있는 이들의 피를 뽑아 먹고 사는 것임에는 둘 다 변함이 없고,
폭력을 행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엄밀히 말해 두 부류는 전혀...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이렇듯 겉으로 드러나는 양식의 차이만 있을 뿐 내재하는 욕망의 분출 방식은 다를 바가 없는 이들의 갈등이
적극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은 바로 대한민국의 땅 위에서다.
사실 면가나 김태원이나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에 깔린 이들의 피를 빨아 먹고 사는 점에선 다를 바가 그닥 없는데다가,
구남 역시 와이프가 한국으로 건너가지 않았다면 그렇게 빚을 질 이유도 없고
결국 목숨을 담보로 룰렛같은 처절한 상황을 맞이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으로부터 걸려온 청부살인 청탁과 일그러진 질투심의 폭발로 인해 두 개의 욕망이 꼬이며 맞부딪히며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들의 룰만으로 살아가던 이들의 갈등이 폭발하게 된다.
이렇게 거칠게 갈등이 폭발하는 과정은 우리 한국의 일그러진 욕망이 충돌하고 폭발하는 과정을 극대화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자신과 이해가 다르거나, 욕망의 지향점이 지나치게 비슷하여 자신의 포지셔닝과 묘하게 겹치게 될 때나,
아니면 상대의 욕망이 자신의 욕망을 거스르거나 간섭하게 될 때 이를 폭력으로 제압하려는 같잖은 모습은 신체적인 폭력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지금의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의 모습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근래에 본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영화였다.
그리고 이 영화의 흥행부진으로 인해 앞으로 이만한 자본과 시간을 갖고
이 정도로 완벽한 영화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나홍찬 감독이 아쉽게 느껴진다.
빌어먹을... 개념말아먹은 감독같지 않은 사람에게 엄청난 돈을 부어주고,
실제로 그 영화가 적정하게 흥행까지 하는 꼬락서니를 보는 모습이란... 정말...


*
영화 속에서 구남은 한국으로 건너간 부인이 바람이 났을 거라 생각하지만 어디에도 확증은 없다.
구남이 생각한 와이프의 불륜 섹스는 순전히 그가 상상한 것이고, 와이프가 죽었다고 단정짓는 장면 역시
순전히 구남의 추측과 상상일 뿐이다.
인간이란 망상의 동물인지라 이러한 추측만으로 살기를 품고, 인생을 포기하려고도 한다.
과연 이런 인간의 모습을 나홍찬 감독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본 것인지는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도 난 모르겠더라.

 


**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두 명의 여성 연기자에 대해서는 그닥 언급할 일이 없다.
김태원의 정부로 등장하는 매력적인 여성은 이엘(유해진과 CF에서 호흡맞춘)이고, 구남의 부인으로 상상 속에서만 등장한 여성은 탁성은씨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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