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 와이프와 함께 PD수첩을 봤다.
항간에 수많은 화제를 뿌리고 있는 일본 내의 '한류'에 대한 심층분석.
얼마나 많은 일본 중년 여성들이 한국에 와서 지갑을 열고 있으며, 이것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갖고 있는 지,
그리고 이러한 '한류'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지속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는 지에 대해 여러 취재 자료와 함께 열거해가며 보여준...

사실 엄밀히 말해 여느 한류 관련 보도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약간 실망이다. 개인적으로 PD수첩과 신강균의 사실은...을 좋아하는 지라 그간 언제나 간과했던 부분들을 점검해주는 시선을 기대했건만,

사실 경제 논리에 집착한 미시적인 부분만을 다루는데 그쳤다는 생각이다.

'한류'를 다루는 관점은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미시적인 경제 관점이다.
워낙 대비를 못한 상태에서 불어닥친 바람몰이다보니 이를 상품화할 수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고,
돈이 된다는 것만으로 난잡한 상품들이 활개를 치고 일관성없는 가격으로 팔려나가다 보니 국가적인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을 주로 얘기한다.
물론 관광 상품의 개발 및 문화 컨텐츠에 대한 이야기도 목청을 높여 이야 기하지만 사실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현재 일본의 중년 여성을 중심으로 붐을 타고 있는 '한류'는 거의 대부분 '겨울연가'를 중심으로 한 한국 드라마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라는 것의 자생력이 과연 어느 정도냐고 누군가 물어 본다면 난 단호하게 '자생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라고 얘기하겠다.
언제나 호된 비판을 받는 출생의 비밀과 삼각관계와 불치병은 지금까지 조금도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현재 방영 중인 '미안하다 사랑한다' 와 '러브 스토리 인 하버드'등도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삼각 관계엔 당연히 지고지순형의 남성 캐릭터가 빠질 수 없는 노릇 이고,

20년 전쯤 일본의 드라마에서 유행했던 부드럽고 순정적인 남성에 향수를 느끼는 일본의 중년 여성들은

그것을 '자신들이 잃어버린 무엇'으로 생각하며 추억의 여고시절 앨범을 꺼내드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추억을 팔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추억에 젖어 살아갈 수는 없는 일.
한두편이 아닌 팔려나간 드라마가 족족 이런 식이라면 이거 참 이야기가 곤란해진다.
실제로 일본의 젊은이들이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느냐하면 어제 PD수첩에도 나왔듯이 아니올시다...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사실 이러한 젊은이들의 반응에 대해 '왜 어필하지 못하는가?'라는 분석도 당연히 수반되어야 할텐데
그런 시각은 조금도 없으니 이거 참 갑갑할 노릇 이다.

현재 일본의 젊은 문화는 '하이브리드'와 '키치'다.
음악에서 그 진폭을 넓혀 나가는 '시부야케이'도 엄밀히 말하면 여러 장르 의 잡종 교배를 통한 하이브리드이고 동시에 키치이다.
다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이것이 문화적 심오함과는 상당히 거리 가 멀다는 거다.
나름대로 고민하고 있지만 음악이나 문화가 보여주는 외형은 다분히 피상적 이고 세련미를 강조하고 있다는 거다.
그런데 한국의 음악이 몇몇 오리콘 차트에 등장한다고 해서, 젊은이들이 한국 의 음악에 열을 올린다고 생각한다면 이거참 크게 착각하는게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젊은 이들은 궁극적으로 자국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무언 중에 대단 한 편이며,
타문화에 대한 수용력도 생각 외로 유연성있다.
영화관에 가서 한국 영화를 보는 이들이 중년 여성이 아닌 20대라는 사실은 이들이 갖고 있는 유연한 문화 수용능력 덕에 기인한다.
그들은 이런 한국의 컨텐츠를 '한류'로 받아들이지 않고 또다른, 접하지 못했던
문화로 받아들이는 것 뿐이다.(이거 자체가 바로 거시적인 비전이 될 수 있다)
세련된 문화와 새로운 문화에 열광하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배용준이라는 배우가 제대로 먹히지 않는 이유는
바로 어제 PD수첩에 인터뷰한 젊은 여성들이 얘기했던 바대로 '너무 성실해 보인다'는 것이다.
중년 여성들이 열광하는, 그들의 젊은 배우에게서 찾기 힘든, 사라져버린 이런 성실성과 부드러움이
정작 일본 젊은 이들에겐 식상하고 고루한 이미지라는 거다.

정말 '한류'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기 위해선 이러한 일본 젊은 이들의 시선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한국이 갖고 있는 문화 컨텐츠가 경쟁력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중년 여성들에게 추억의 여고시절을 펼쳐 내는 것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인지를 분명히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러한 분석에 대한 대답이 부정적이라면 당연히 경쟁력있는 문화컨텐츠를 지금과 같이 다소
'한류'라는 붐을 타고 마련된 좋은 유통 여건들(영화 배급망 구축등) 체계적으로 다져 놓는 것이 옳다.
이러한 붐이 사그러들 즈음, 과연 우리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비판의 펜대를 굴릴 것에 대비한다면
분명 유형의 유통 구조를 차라리 내실을 기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한국의 모든 방송들은 오로지 한류의 실체를 밝힌 답시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배우들을 좇고 지갑을 여는 중년 여성들을 밀착 취재한다.

갑갑할 노릇이다. 당연히 분석해야할 일이지만 거의 몇달을 똑같은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야말로 갑갑할 노릇이다.
우리가 가장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일본이 문화 강국인 이유는 그들이 다양한 장르의 문화 컨텐츠를
생산해서이기도 하지만, 정말 중요한 그들의 강점은 그들이 지닌 대단히 유연한 문화 수용 능력 때문이다.
그런 점을 간과한다면 '한류'는 패션에 머무를 뿐, 결코 트랜드가 될 리 없다.
또한 이러한 '한류'를 분석하는 매체나 전문가들도 항상 경제 논리에만 집착하여 정작 거시적인 문화적 이득은 망각한 채
우리가 편리한 대로 사안을 분석하고 미시적인 분석에 집착한다면 더이상의 '한류'는 없을 것이다.

어제 PD수첩에 나와 국내 드라마의 경쟁력을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은 드라마의 탄탄한 구성이니 어쩌니
헛소리를 해대는 이병훈 PD의 말을 들으면서 참... 편한 대로 생각하는구나.
피수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르는구나...하는 생각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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