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은 가히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전장이다.
외국의 그 수많은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나름 괜찮은 시청률로 주목을 끌더니 이 포멧을 그대로 가져온 한국산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우후죽순 등장한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프로그램 비용에 최대의 시청 효과를 끌어올릴 수 있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케이블 TV가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건 당연한 일.
에드워드 권의 '예스 쉐프'는 물론이고 모델, 각종 어시스턴트들, 지금은 또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시즌2가 네티즌들의 호응 속에 진행되고 있다.

나 역시 종종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을 본다.
고든 램지의 '헬스 키친'은 시즌 4,5,6을 봤고, 탑 쉐프(Top Chef)도 시즌 6를 좀 봤고, '아이 앰 어 모델'은 aipharos님 볼 때 곁눈질로 조금씩 봤고,

에드워드 권의 '예스 쉐프'도 봤으며 지금은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시즌 2'를 매주 보고 있으니.
참가자 중 매주 한 명 어쩌다 두 명이 탈락하는 프로그램은 시청자에게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하니 이 프로그램이 별다른 이슈도 없는데

마냥 보게 되는 것은 분명히 강자가 살아남는 '승자독식'의 구조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우린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신이 응원하는 이가 살아남기를 바라고, 눈엣가시처럼 짜증나는 캐릭터는 떨어지길 바라는데,

그 자신이 응원하는 이란 대체적으로 '가장 내가 보기에 실력이 뛰어난' 참가자가 된다.
비록 우리나라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FOX TV의 서바이벌처럼 참가자들이 다른 참가자를 밟아버릴 듯 뒷담화까대는 정도는 아니지만

경쟁 프로그램이란 특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참가자들은 거의 대부분 입을 맞춘 듯 '친구사귀러 온 건 아니다'라고

단언하고 이 혹독하고 긴장감 넘치는 프로그램에 자신을 내던진다.
결국 승자는 한 명뿐이고, 그는 적어도 프로그램이 보장했던 전리품을 잔뜩 받게 되지만 바로 마지막 경쟁에서 뒤쳐진 2등은 그 아무런 주어지는 보상이 없다.
모 개그 프로의 개그맨 말대로 정말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의 한 장이 TV 프로그램에서 노골적으로 펼쳐지는거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동하는 공포]에서 우리 시대에서 가장 무서운 공포 중 하나는 이 두려운 현실을 피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린 시청자들이나 사람들은 은연 중에 그들과 함께 웃고 울면서 승자독식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실력이 없으니 진 것이고, 실력이 있으니 저 빛나는 전리품을 다 안을 자격이 있다는, 승자독식의 세계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적어도 IMF 이전엔 우리 시대의 어른들은 이런 승자 경쟁구도는 스포츠에서나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어느틈엔가 취업이 예외가 되고

실업이 보통이 되는 지금과 같은 사회에선 더더욱 승자독식의 세계로 인해 피폐해지면서 그와 동시에 더더욱 경쟁에서의 승리에 몸을 던지게 된다.
당연히 예전처럼 개인이 품은 정치적 신념따윈 언제든 헌신짝처럼 던져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 와중에 자신은 의식하든 안하든 언제나 언제라도 승자독식 구조의 세계에서 도태될 수 있고,

내 가족을 지킬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품고 살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을 절대 피할 수도 없고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상의 양극화가 점점 가열되고 그렇다면 이전처럼 봉기론이 대두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으나

이는 고도화된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치밀하고 교활하게 인간의 심리에 파고드는 지 모르고 하는 말일 뿐이다.
언제라도 낙오될 수 있다는 전에 없던 그 불안감, 그리고 승자독식의 세상을 매스 미디어의 오락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보고 자란 아이들,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선 무엇이든 해야하는 세상.
이런 불안감은 기득권이 시스템을 좌지우지하기 위한 가장 좋은 도구이지 않을까?

이런 와중에... 낙태에 대한 언론의 공격이 거세졌다.
인구 감소로 인한 국가 경쟁력 걱정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잉여인간이 많을 수록 경쟁이 과열되고 그로 인해 낙오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하여
사회참여엔 신경조차 쓰지 못하고, 더욱 쉽게 노동을 부릴 수 있는 사회가 위협받는 것을 걱정하는 기득권의 시선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지.
항상 이런 식이다.
사회의 공적 투자가 턱없이 적은 한국에서 가열차게 양극화를 향해 치닫는 현실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첫번째 포기는 '육아 포기'다.
그런데 그런 근본적인 문제따윈 당연히 해결할 맘이 없으니 산부인과에서 불법낙태하면 조진다...라고 협박을 해대는 꼴이다.

우린 정말...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국민이 되어가나보다.
이게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란게 더 암울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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