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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Mother] directed by 봉준호
2009 / 약 128분 / 한국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자 기대작 [마더/Mother]를 봤습니다.
아마도 박찬욱 감독의 [박쥐]보다 더 기대하신 분들, 기대하고 계신 분들이 많으실겁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늘 탄탄한 드라마 위에 상업적인 히트 포인트들을 적절히 배치하는 영민한 감독이잖아요.
[살인의 추억]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괴몰] 역시 전 처음 극장에서 볼 때보다 나중에 다시 HD로 볼 때가 더 좋았습니다.
보이지 않았던 은유들이 듬뿍 눈에 들어오더군요.
이번 신작은 중견 탤런트인 김혜자씨와 꽃미남 원빈의 실로 오랜만의 스크린 출정이라 또다른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러저러한 합당한 기대를 갖고 관교동 유로클래스에 자리를 잡고 [마더]를 봤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다들 아시는대로입니다.
정신연령이 다소 낮은 듯한 장성한 청년 도준(원빈). 그 도준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엄마 혜자(김혜자).
어느날 도준은 동네 여학생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도준은 그 시각 여학생을 따라갔었다는 이유만으로
살인혐의를 쓰고 구속되어버립니다. 엄마 혜자는 아들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하고 그를
위해 도준과 잘 어울리던 동네 백수 진태(진구)의 힘까지 빌어 동분서주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이 영화를 보시는 분들께 자꾸 마케팅 포인트로 '반전'을 꼽는 것에 낚이지 마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아주 꼴사나운 마케팅인데요. 이 영화의 반전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 반전이랄 것도 없어요.
영화보다가 보면 진범이 누군지 확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봉감독은 적절한 맥거핀을 배치하긴 했지만
어지간한 분들은 다들 쉽게 이 영화의 피니쉬 라인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건 이 영화에서 결말에 이르는 과정들입니다.
무언가 새로운 재미를 원하셨다면 적잖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영화의 영화적 '재미'는 제 개인적으로 느끼는 바는 대단히 애매했습니다.
상업적 재미가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하기 곤란한 애매한 영화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으니까요.
물론 개인적인 호불호지만 말입니다.
그렇다고 [박쥐]처럼 이야기의 흐름이 뚝뚝 끊긴다든지 내러티브가 엉성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이야기와 서사는 무척 탄탄하고 탁월한 촬영과 함께 완성도 높은 디테일을 선사합니다. 이점에 전혀 이의가
없어요. 그러니까 이 영화는 재미를 떠나서보면 상당히 잘 만든, 그야말로 '웰-메이드' 영화라는거죠.
배우들의 연기 역시 탁월합니다.
김혜자씨의 연기는 우리가 여지껏 봐왔던 TV에서의 그 모습에서 그닥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혜자'의 상황과 공간이 완벽하게 잘 맞아 떨어지면서 자연스러우면서도 설득력있는 캐릭터를
만들게 되는거죠. 도준을 연기한 원빈의 연기도 나쁘지 않습니다. 의외로 이런 연기가 어색할 수 있는데 원빈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잘 해냈습니다. 형사를 연기한 제문역의 윤제문의 연기는 뭐라 말할게 없을 정도구요.
진태역의 진구도 역시 좋았구요.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봉준호 감독이 정말 배우들의 연기적 잠재력을 잘 끌어낸다고
생각한 건 두 명의 단역인 맨하탄 술집의 재수생 딸과 살해당한 여학생인 아영역입니다.
원래 이런 단역들은 캐릭터의 입체감을 살린다는게 정말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봉감독은 봉테일이란 별명대로
이 스쳐지나갈 법한 캐릭터를 확실하게 살려 줍니다. 재수생의 경우 살해당하는 아영과 실제 관계는 전혀 없지만
영화를 지배하는 미묘한 욕망이 자연스럽게 이미지 매칭되는 역할이 됩니다.
아영이란 여학생은 '쌀떡'이란 별명을 얻지만 실제로 그녀의 원조교제같은 건 등장하지 않지요. 하지만 재수생인
여학생의 경우는 미묘한 성적 이미지를 드러내주고 그것이 희생자의 이미지를 은연 중에 대변하기까지 하는 듯한
생각을 갖게 된답니다. 이러한 성적 이미지에 대한 제 주관은 결코 오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봉준호 감독의 이 영화 [마더/Mother]를 지배하고 있는 주요한 키워드는 제가 느끼기엔 '모성'이라기보다는
'성애(性愛)'입니다.
좁은 공간 섹스 한 번 못한 도준. 하지만 도준은 '여자와 자봤냐?'라는 놀림에 '엄마와 자봤다'라고 얘기하죠.
비록 농담처럼 들리지만 이 '농담'은 의외로 몇 번 영화 속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저 농담이 아주 강하게 한 번
앞으로 뛰쳐나가버리기도 하죠.
웃옷을 벗은 도준이 혜자의 옆으로 와서 혜자의 가슴을 만지는 장면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이게 다 봉준호 감독이 의도한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거죠.
진태가 혜자에게 와서 따지는 장면에서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혜자는 상의를 탈의한 진태를
바로 보지도 못하죠.
전 지금까지도 봉준호 감독이 왜 아들과 엄마의 관계를 이렇게 '성애적' 관점과 '모성애적' 관점을 동등하고
평행하게 놓고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런 은밀한 근친상간적인 성애적 공간은 보는
이에게 묘한 긴장감을 주긴 해요. 그리고 그런 긴장감을 주는 좁은 공간 역시 다 봉감독이 의도한 바이겠지요.
혜자에겐 도준이 '단 하나뿐인 아들'이지만 동시에 '단 하나뿐인 남자'도 되는겁니다.
그러다보면 이건 누구나 한번쯤 의아해하겠지만 저 제목 [마더]는 어감상 '살인'의 의미인 'Murder'와 중의적인
의미로 다가오게 되는거죠. 그리고 그건 충분히 설득력을 갖고 있구요.
이런 이야기를 위해서 ...컴플렉스 얘기를 하고 싶진 않지만, 어쨌든 봉준호 감독은 이 미묘한 관계설정을
통해 모성의 질긴 정과 함께 동시에 성애적 긴장감 모두를 획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너무 지나치리만치 거북하게 드러나진 않고 있구요. (그러니 혹시 이런 설정을 거북해하셔도
보시는데 그리 거슬리진 않을 겁니다)
*
영화적 완성도는 상당하다고 감히 말하겠습니다.
하지만 전술했듯이 영화적 '재미'는 기대만큼은 아니었어요. 물론 제 개인적으로 말입니다.
서사구조 속의 한 방은 있지만 드라마적인 한 방은 없습니다. 그 '한방'이라는게 뭐 대단한 감동이나 사건을
말하는 건 아니구요. 뭔가 재미가 오를 듯 하면 꺼져버리는, 그렇다고 팍 꺼져버리는 것도 아니구요.
지나치게 긴장의 이완과 수축이 잦은 편입니다. 그러면서도 산만하지 않으니 참... 희안한 일이에요.
**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에선 아주 인상적인 카메라 워크가 종종 보입니다.
마지막 씬도 대단히 작위적인 느낌이지만 그 감성만은 충분히 어필하죠.
***
이건 다른 소리지만.
도대체 우리나라 감독들은 왜 이렇게 다수의 복선을 깔아놓는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스릴러의 구조를 띄기 시작하면 당연히 논리적 인과관계를 위해 복선이 있어야하는게 맞는데, 이게 너무
지나치리만치 계산되어 딱딱 나오는, 뭐라 형언하기 힘든 약간의 거부감이 있어요.
이걸 설명하지 못하는 건 제 한계랍니다.-_-;;;;
****
이병우씨가 맡은 음악은 기복은 있으나 인상적인 편입니다.
특히 오프닝과 엔딩은 대단히 인상적이죠.
*****
이 영화의 배경도 그렇고... [살인의 추억]의 시간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봉감독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한국 경찰의 수사 방식은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이건 충분히 의도된 거겠죠.
******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실제 본명에 가깝게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진구는 진'태'로, 김혜자씨는 그대로 자신의 이름을 쓰고 있고 윤제문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빈의 경우 '도준'인데
원빈의 본명이 김도진임을 감안하면 역시 거의 비슷하게 사용했다고 봐야죠.
*******
자... 그런데 이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서 뭐라 말할 순 없는데요.
이 아래 네 줄은 영화 보신 분만 보세요.
이 영화는 사실상 도준의 혜자에 대한 복수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그건 제 오버같네요.
혹시 보신 분 중에 저와 같은 생각을 해본 분이 계시면 알려주세요.
봉준호 감독이 의도했건안했건 이 영화는 자신을 5살때 죽이려고 했던 혜자에 대한 복수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는데 오버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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