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ndy and Lucy/웬디와 루시] directed by Kelly Reichardt
2008 / 약 80분 / 미국

죽어라... 노벨 문학상의 염원을 담아 얘기하는 대상 중 한 분인 황석영씨가 MB 저지 시국선언을 뒤로하고 MB가
명백한 중도...라며 현 정부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혹자는 그렇게 얘기합니다. 개인의 정치적 소신인데 왜 그걸 잘못되었다고 하느냐고 열불을 토하며 얘기하죠.
가끔 이런 현상을 보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소신의 가치에 대해 혼동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개개인의 정치적 소신을 뭐라 말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물론 국민들이 조금더 생각하고 조금더 영리해야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팍팍한 삶으로 몰아대는 공세가 되면 될수록 국민들은 더더욱 그런 생각조차 할 여유가 없어지죠.
그런데 이게 황석영씨같은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분은 이 시대의 '지성'처럼, 그게 본의든 자의든 관계없이 추앙받곤 해왔잖아요.
그런 분이 MB를 지지한다니... 우스갯소리로 2MB 정부에서 노벨문학상 딜들어가기로 하고 지지선언한거 아냐?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뭐 그럴리 없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황석영씨가 MB를 계속 지지하다가 노벨 문학상까지 타면 참... 기가막힌 프로파갠다가 되겠군요)

몇년전 오에 겐자부로가 공식적으로 황석영씨를 노벨상의 강력한 후보라고 말하기까지 했잖아요.

제 헛소리같지만 꼭 이렇게 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민족의 이야기꾼이자 광대,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끌어안은 분께 너무 지나친 말이 아니냐고 하실 수 있으나
이번 황석영씨의 발언은 어이없음을 넘어서 슬프기까지합니다.
광주사태에 대한 발언과 중도에 대한 무개념스러운 발언은 씁쓸하기 짝이 없죠.

촛불집회때 시민들과 춤사위를 벌이시던 황석영씨. 그때 그냥 춤판이 벌어지니 옳다구나...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신건가요?

황석영씨는 숱하게 많이 '시대의 지성'이라고 일컬어지곤 하지 않았나요? 그런 분이 명백하게 그야말로 민주주의라는
것이 무참히 뭉게지는 이 현실을 엉뚱하게 외면하고 '아니다'라고 말하는 비겁한 인간에게 전 조금도 시대의
지성이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도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할거에요.

유럽도 사실 마찬가지라지만(심지어 핀란드까지 일부 교육체계에 무한경쟁이 도입되고 있다죠) 그래도...
전세계에서 가장 신자유주의를 미친듯이 수용하려들며 뛰쳐나가는 광란의 국가들을 꼽으라면

단연코 미국과 이태리와 한국과 일본이라고 봅니다.

일본은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사실 대단히 심각하게 사회적 불균형이 심화된 나라죠. 지금

기억은 안나는데 2007년도인가에 세계 부의 불균형지수에서 31위인가를 차지한 것도 일본입니다.

이태리는 늘 얘기하지만 베를루스코니의 집권 8년 동안 나라가 완전 절단나다시피했습니다.
그 미항이라는 나폴리가 쓰레기로 아작나고 이태리 남부는 겉잡을 수 없이 황폐화됐죠.
미국이야 말할 것도 없고... 한국도 지금 겨우 집권 1년이 넘었는데 전방위적으로 해쳐먹는 짓들로 나라가 개판이
되가고 있습니다. 미쳤죠. 완전히...

신자유주의... 말이야 그럴싸합니다.


하이에크나 밀턴 프리드먼같은 자들이 떠들어댄 저 보수 이데올로기를 고착화시키기위한 신자유주의라는 경제
개념은 무한경쟁에서 낙오되는 대다수를 조금도 떠받쳐줄 생각을 하지 않죠. 모든걸 민영화하여 이윤을 극대화
한답시고 인력을 줄이고 장비의 노후화를 눈감고... 그러다가 결국 카트리나 태풍이 왔을 때 FEMA가 작동하지
않았던 거잖아요. 볼리비아의 엄청난 수도요금 급등도 다 그 민영화때문이었고, 미국의 정전사태도 역시 민영화로
인한 이윤추구의 마인드에서 나온 인재들이잖아요.

사설이 이토록 긴 이유는... 켈리 라이하르트의 이 영화 [Wendy and Lucy/웬디와 루시]는 영화 러닝타임 80분 동안 단 한번도

신자유주의니 고리타분한 정치적, 경제적, 철학적 이야기를 조금도 담지 않으면서도 사회의 피라미드의 가장 밑을 차지하는 빈민 중 한 명인

웬디라는 여성의 며칠간의 일상을 통해 황폐화되고 삭막해진 미국의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웬디는 무슨 이유에선지 낡은 88년산 혼다 어코드를 몰고 알래스카로 향합니다.
그녀에겐 루시라는 개가 늘 함께 하는데 어느날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루시가
사라지게 되지요. 가족과도 같은 루시가 사라지자 그녀는 사방팔방으로 루시를 찾아 헤맵니다.
하지만 그녀에겐 연락이 될만한 집도 없고, 휴대전화도 없는 상황이죠.
그녀가 알래스카로 향하는 건 영화 시작하자마자 나오지만 사실 일자리때문입니다.
인디애나주 번호판을 단 그녀가 오레곤주까지 오게 된 건 순전히 일자리를 찾아서죠.
물론 오레곤주도 팍팍하긴 다를게 없습니다. 그저 오레곤주는 그녀가 알래스카까지 가는 길목에 있는 곳에 지나지 않아요.
거리엔 전동 휠체어를 탄 사람 천지고, 인적도 뜸하고 사람들은 캔을 주워 재활용 머신에 집어넣고 돈을 받아
연명하기도 합니다. 그나마 그 머신의 1/3 정도는 고장나서 그 얼마 안되는 돈받기도 만만찮게 힘들죠.
루시를 잃어버렸는데 그나마 다행히 아직 유기견보호센터는 운영이 되더군요.
그나마 웬디가 마지막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곳이 이곳입니다.
근무하는 스탭은 단 한 명.
하지만 영화가 끝나갈 수록 우리는 '저 유기견 보호센터는 언제까지 저렇게 운영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죠.

신자유주의는 이처럼 무한경쟁이란 허울좋은 구실로 '평평하지 않은 싸움터'로 사람들을 무장해제시켜 내몰아
댑니다. 그리고 국가가 담당해야할 공적투자를 국민 개개인에게 하나둘 떠넘깁니다. 미국의 예처럼 어디에서나
교육 재정을 먼저 줄이고, 서민 복지 예산을 대폭 축소하거나 없애버립니다. 이건 신자유주의를 맹신하는 어느
국가에서나 일어나는 일들이에요.
2MB 정부가 집권하고 가장 먼저한 일이 복지예산을 축소하는 것이었다는 사실. 아마 이젠 다들 아실겁니다.
이 영화 [웬디와 루시]에서 웬디는 단 한마디의 정치적 발언도 하지 않지만, 그건 그녀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이데올로기에 처절하게 희생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끝까지 보는 이를 암담하게 만듭니다.
마지막의 웬디를 보면서 그녀의 이후의 삶도 결코 작은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봐야겠죠.
이렇게 이 영화는 웬디라는 여성이 어떻게 소중한 것을 하나하나 잃어버리는지를 여지없이 묵묵하게 보여줍니다.



*


이 영화에서 그 유명한 셀러브리티인 미쉘 윌리엄스는 혼신을 다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실제로 그녀는 이 영화를 찍는 동안 차에서 자고, 씻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췌하고 힘들어보이지만... 여전히 그녀는 아름답습니다. 흐...
히스레저의 전부인이었던 그녀는 현재 천재 감독이라고 일컬어지는 스파이크 존즈 감독과 열애 중이랍니다.
제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Where the Wild Things Are/괴물들이 사는 나라]스파이크 존즈 감독이
연출하면서 사랑에 빠졌다네요.


**
자신에게서 소중한 것들을 하나하나 잃어가는 웬디.
그런데 잃는 사람이 있으면 취하는 이도 있기 마련인데 이 영화에선 그런 취하는 대상은 보여지지 않습니다.
당연하게도 그건 신자유주의로 굴러가는 시스템, 그 자체가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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