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Thirst] directed by 박찬욱
2009 / 약 133분 / 한국

[박쥐]를 봤습니다.
사람 좀 적을 때 보자고 바로 안보고 조금 미루다가 그것도 월요일 조조로 봤습니다.
역시나 극장 안엔 10명 남짓한 관객만 있었구요.
덕분에 아주 몰입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상반기에 가장 기대한 영화는 봉준호 감독[마더]였겠지만, 박찬욱 감독이 아무리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그리고 옴니버스 영화 중 하나였던 [쓰리, 몬스터]로 저흴 실망시켰어도 그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고, 송강호에 대한 믿음, 김옥빈에 대한 기대... 이런 것들도 물론 긍정적인 기대를 갖게끔 했지요.
물론 일부 언론들의 '칸느에서 8분간 기립박수'... 등의 이런 찌라시식 기사에는 조금도 현혹되지 않았습니다.ㅎㅎ

이 영화는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말이 길어질 수 있는 영화더군요.
영화를 보는 내내 아마도 가장 만들고 싶은대로 맘껏 만든 영화라면 바로 이 영화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가장 사적인(?)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어쩌면 그 영화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영화는 걍 쉬어가는 영화 이상의 의미를 두고 싶진 않네요)
내용이야 많은 분들이 이미 다 아실테니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결론도 뻔히 보이지만 역시 얘기 하지 않으렵니다.
전 이 영화가 모티브를 따왔다는 소설을 읽어본 적도 없고, 실제로 그야말로 '모티브'만 따왔다고 하니 그 부분에
대해서도 역시 할 말이 없습니다. -_-;;;;

저와 이름이 똑같은 상현역은 송강호가 맡았습니다.
상현은 사람들이 무기력하게 생명을 잃는 것에 회의를 품고, 정말 그들을 위한 신실한 신앙인의 자세로 엠마뉴엘
연구소에 자원하여 가게 됩니다. 그러다 그는 기적적으로 바이러스를 이기고 살아남게 되지요.
하지만 그 뒤로부터 상현은 낮에는 햇빛을 피해야하고 죽으려고 해도 죽을 수 없고, 초인적인 능력을 갖게되는
뱀파이어가 되고 말지요.
게다가 초등학교 동창인 강우(신하균)를 만나고 그의 아내인 태주(김옥빈)를 만나면서 신앙으로 절제하고 자제하던
그의 쾌락에 대한 욕망이 점점 그를 집어 삼키게 됩니다.
이쯤되면 이 영화의 끝이 어떨지는 말안해도 다 아실 거에요. 실제로 이 영화는 그런 '반전'따위는 없이 철저한
통속적 치정극으로 치달아버립니다. 그 와중에 신앙와 비신앙, 모독과 존중의 대립적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시켜
박찬욱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바를 구체적이고 은밀하게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감독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과정마저 무척 통속적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우리가 대상에게 은연 중에
매치시켜버리는 사회적 인식에서 출발하게 되죠. 예를 들면... 신부는 신앙을 갈구하되 자신의 삶을 갈구하지
않는다거나, 죽음보다 신앙적인 속세의 힘은 더욱 강하다든지... 이렇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인식들의 기반 위에서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감독의 메시지는 분명하게 느껴지는데 가슴을 치는 한 방은 전혀... 느껴지질 않아요.

그덕에 제가 보기엔 상현은 길을 잃은 성긴 내러티브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송강호의 연기는 훌륭하디 훌륭하지만, 또 일관된 호흡을 연기하고 있지만 그에게 전혀 이입될 수가 없다는
거죠. 그건 이 영화에 피가 수없이 많이 등장해서도, 혐오스러워서도 전혀...아닙니다.
감독의 메시지가 너무나 군데군데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처음부터 끝까지 쭉쭉 밀어부치는 뚝심이 느껴지지 않고
감정이 뚝뚝 끊기는, 여러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갖다 붙인 것 같은 느낌이 너무 강해서 도무지 몰입하기도 쉽지
않더군요. 박찬욱 감독식의 유머가 등장하는 것도 지나치게 키치적이어서 무척 생뚱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쿨하게 적용되면 캐릭터를 확실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할텐데 보는 내내 그 생뚱맞은 유머를 날리는 캐릭터들을
자꾸 내 방식으로 밀어내게 하더군요.
영화적 재미도 훌륭하다고 많이들 얘기하셨지만 저희는 그냥 그랬습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이건 너무 길다'라는 생각까지 들었구요.


*
박찬욱 감독 영화의 주인공들은 늘 현실과 다른 세상에 사는 듯한 말투를 내뱉습니다.
사실 [복수는 나의 것]이나 [올드보이]도 그렇긴 했죠. 하지만 그건 아주 드라이한 일상의 기틀 위에서 기가막힌
조화를 이루면서 키치적인 캐릭터를 완성했었어요. 그런데 [친절한 금자씨]부터 그의 캐릭터들은 냉소적인 것을
넘어서서 완전히 지구를 떠나버렸습니다.
앞에 말했듯... 이 영화는 아마도 박찬욱 감독이 대놓고 맘껏 만든 영화같아 보이는데... 좀 안타깝네요.


**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힘든 캐릭터는 태주(김옥빈)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상 태주는 팜므 파탈의 전형과도 같잖아요. 그리고 이런 팜므 파탈의 정형을 벗어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태주는 그냥 팜므 파탈인거에요. 그런데 그게 그닥 쿨하지 않은 팜므 파탈이라는 것만 다른거죠.
그렇게따지면 김옥빈의 연기는 대단히 선방한 것 같아요.
그리고 뭣보다... 김옥빈은 정말 예쁘더군요. 작은 머리, 긴 팔, 엄청 긴 다리... 정말 야해보이는 표정과 목소리.
섹스씬은 그닥 농도가 강하진 않은데 엄청 야하게 느껴집니다. 이건 순전히 김옥빈의 덕이에요.
김옥빈은 아직 86년생입니다. 더 많은 좋은 작품에서 그녀를 보길 기대합니다.


***
영화 전체적으로는 불만이 많았지만 일부 시퀀스는 아주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맨처음 태주가 골목을 달리는 장면(뒤로 아파트가 보이는)은 양각에서 서서히 부감되는 샷과 상현이 태주를
안고 뛰어내리는 장면, 둘이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서슬퍼런 뱀파이어 놀이를 하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었네요.


****
사실 정말 생각할 것이 많았다면 이렇게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던져버린 [박쥐]보다는 비교의 대상으로 과연
적합한지는 많이 의문이지만 [렛미인/Let the Right One In]이 훨씬 인상적이었어요.
불멸의 삶과 유한의 사랑, 인간의 선악에 대한 고정 관념등을 작고 임팩트있는 씬으로 많은 대사들을 필요치
않으며 시선으로 압도한 영화는 [렛미인/Let the Right One In]이었습니다.
그 영화의 마지막도 정말 인상적이지 않았나요? 주인공 아이의 해맑은 미소를 보고 해피 엔딩이라고 소리칠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그의 인생은 바로 그녀의 곁에 있다가 간 그 사람과 다를게 없어지는거잖아요.
이에 반해 [박쥐]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던져버립니다.
감독이 짜놓은 길대로 가는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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