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Lovers] directed by James Gray
2008 / 약 110분 / 미국

사람 마음이라는게 어디 자기 뜻대로 되는게 아니라는 것쯤은 다 알지만,

연애 감정이라는 것만큼 개인의 의지로 맘대로 되지 않는 것도 없을 것 같다.

머릿 속에선 상대방의 얄팍함과 파렴치함을 똑똑하게 뇌용량 속에 저장해두면서 그러면서도 감정이 끌리고 상대를 옹호하고,

상대를 사랑하는 자신을 합리화하는 수많은 관계들을 주변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나뿐이 아닐 것 같다.
인간이 사람을 만나 사랑에 이르는 그 화학작용의 메커니즘을 단순히 호르몬과 신진대사의 문제로 규정할 수 없는
만큼 수많은 인연과 수많은 종류의 사랑들이 지금도 지구, 우리가 발디딘 이 곳에 넘실대다못해 가득차있다.

전작이자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카체이싱씬과 들판에서의 마지막 장면을 보여준 [We Own the Night]을 연출했던
James Gray 감독이 다시 Joaquin Phoenix(호아킨 피닉스)를 기용해 발표한 독특한 드라마인 이 영화 [Two Lovers].
요 몇 년 동안 봤던 그 어떤 로맨스 영화들보다도 빛났던 보석같은 영화를 오늘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연인 호아킨 피닉스가 얼마나 좋은 배우인지 다시 한번 확실히 확신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했고.

우울증을 앓는, 세탁소를 경영하는 부모님 밑에서 얹혀 사는 레오나드(호아킨 피닉스)는 집안끼리 서로 알게 된
코엔집안의 딸인 산드라(비네사 쇼)를 만나게 된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산드라와 교제를 막 시작할 무렵, 레오나드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미쉘(기네스 펠트로)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이후 그녀에게 미친듯이 빠져든다.
하지만 미쉘은 이미 사귀고 있는 남자가 있었고 레오나드에게 자신의 남자 친구를 만나보고 계속 사귀어도 좋을지
조언해달라는 부탁을 하기에 이른다.
이후는 스포일러일 수 있으니 하략~~

호아킨 피닉스는 아픔으로 인해 우울증을 앓는 이의 복합적인 심정을 과도하지 않게 너무나 설득력있도록 확실히 어필했다.

때론 약간 신경질적이다가도, 때론 자신이 분노와 슬픔을 억지로 삭히는 것, 불분명한 시선처리, 그리고 희열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지만

정적인 표현 안으로 녹여내는 그 놀라운 연기를 보면서, 아... 새삼 호아킨 피닉스가 이토록 좋은 배우였지!라는 사실을 되뇌게 된다.
미쉘 역의 기네스 펠트로, 산드라 역의 비네사 쇼, 어머니 역의 오랜만에 모습을 보는 이사벨라 롯셀리니, 그리고 아버지 역의 모니 모쇼노프 역시

모두 훌륭한 연기 앙상블을 이루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극 전체를 통해 안나오는 장면이 아예 없다시피한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그야말로 발군이다.(그는 영화 거의 모든 장면에 모습을 보인다. 그가 주가 되지 않는 장면은 단 한 장면도 없다)

미쉘은 레오나드의 마음을 단숨에 얻을 수 있었다.
그건 그녀의 아름다움때문이었고, 지리멸렬해진 자신의 삶 속에서 과감하게 일탈을 하게끔 도와준 상대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 감정의 진폭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미쉘은 속한 플레이그라운드가 부티크 레스토랑과 샴페인, 오페라로 이 영화에서 대변되는 어퍼 클라스임을 알고

그때부터는 자신이 속할 수 없는 클래스에 대한 열망까지 뒤섞이게 된다.

하지만 이건 우리가 우디 앨런의 [Match Point/매치포인트]에서 목도한 것처럼 목불인견식의 막장으로 치달아버리진 않는다.
레오나드는 그저 오페라를 보러 유유히 사라지는 미쉘과 그의 연인 로널드의 뒷모습을 보고는 오페라 CD를
사와서 싸구려 플레이어로 틀어놓고 듣는다.
이 영화가 돋보이는 건 이런 장치들이 불쾌하다기보다는 상당히 설득력있게 자잘한 디테일을 잘 배치했다는 것이다.
우리들도 비슷한 경우들을 많이 겪지 않나? 나와는 처지가 다른 상당한 어퍼 클래스.
자연스럽게 벤 그 여유가 몹시도 부럽지만 또 한편으론 적당히 체념하면서 살기도 하지 않나.
레오나드도 그런 인물일 뿐이다.
다만, 그가 갈망하는 것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착하고 아름다운 산드라가 아닌, 유부남과 불륜에 빠진 어딘가
도덕적으로 뭔가 결핍된 듯한 미쉘일 뿐이라는 것.

이 영화는 레오나드의 이런 겉잡을 수 없는 감정을 아주 솔직하게 따라간다.
감독의 시선따위는 존재하지 않다는 듯, 관객들에게 레오나드의 솔직한 사랑을 무덤덤하게 좇게 만든다.
그리고 다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도 충분히 수긍하게 만드는 위력이 있다.

정말 인상적인 영화.


*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이번이 네번째 장편 영화 연출인지, 두번째 영화인 [the Yards]부터는 지금까지 모두
호아킨 피닉스와 함께 했다.
호아킨 피닉스가 제임스 그레이의 페르소나라고 봐도 될 듯.
그리고 그 결과는 아주 좋은 것 같고.
결정적으로 이 69년생 감독은 다음 작품에선 분명히 일을 낼 것 같다. 현재 브래드 피트를 캐스팅해서 액션영화인
[the Lost City of Z]를 제작 중인데 분명 일을 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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