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rschblüten - Hanami/Cherry Blossoms] directed by Doris Dörrie
2008 / 약 127분 / 독일, 프랑스
원제의 의미는 '벚꽃 꽃구경'의 의미랍니다.
영제가 더 받아들여지기는 쉬울 법 한데 영화를 보고나면 원제의 의미가 스쳐지나갈만치 가볍지 않다는 걸 아실거에요.
어느 날 평생을 함께 한 반려자와 이별해야할 시간을 알게 된다면 그 반려자와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얼굴도 못보는 자식을 만나고, 반려자와 함께 여행을 가겠죠.
네, 누구라도 그럴겁니다. 그런 시간이 되도록 빨리 오지 않기를 바라겠지만, 만약 온다면 누구라도 그럴거에요.
이생에서의 시간을 정리한다는 것이 아쉽다기보다는 남게되는 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크겠죠.
트루디는 부토 무용수가 되고 싶어했지만 남편 루디의 반대로 그 꿈을 접고 내조일에만 전념했습니다.
루디는 늘 그렇듯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반겨주는 트루디를 사랑했구요.
하지만 트루디가 떠나고 난 후 그녀가 진정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고, 자신이 집 안에 트루디를 가둬 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그녀의 생전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트루디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일본에 모든 현금을 다 뽑아서 갑니다.
물론 그곳엔 트루디가 그토록 사랑하던 아들 '칼'도 있지요.
하지만 다 커버린 아들 딸들은 요즘의 우리나라처럼 부모들을 거의 보지도 않을 뿐더러 귀찮아하는 존재죠.
편치않은 아들집에서의 생활에도 루디는 부인이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일본의 모습을 하나하나 가슴과 눈에 담습니다.
그러다가 루디는 공원에서 부토 무용을 추는 노숙자인 18세의 여성 '유'를 만나게 되죠.

이 영화를 보다가 aipharos 님은 여러차례 눈물을 흘렸습니다.
트루디가 죽기 전 루디와 밤에 호텔방에서 추는 부토무용은 가슴을 묵직하게 합니다.
자식들에게서 철저히 고립된 루디의 처연한 시선, 와이프의 옷을 속에 입은채 벚꽃과 정경을 보여주는 루디의 모습도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이 영화가 정말 둔중한 울림을 주는 건 단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그녀를 잊지 못하는 이유가 아닙니다.
죽음 이후에 떠나간 이의 진정한 바램을 읽고 그것을 이루게 해주려는 진심이 묻어 있기 때문에 이 영화가 더욱 가슴을 울리는 것 같네요.
그런 의미에서 부토(舞蹈) 무용은 영화의 주제와 아주 잘 어울립니다.
부토라는 것이 삶의 그림자, 죽음의 세계를 다루는 춤이며, 죽음에서 몸부림치는 이의 움직임을 묘사한 것이니까요.
그 어렵고 괴로운 부토를 '무섭고 기괴하고 파괴적'이라고 느끼던 루디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통해

진심으로 이해하는 입장으로 다가갑니다.
그리고 루디의 소원을 풀어주는 마지막 부토 무용을 준비하죠.

사람과 사람의 사랑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민이 드러난 도리스 되리의 근작입니다.
추천합니다.


*
부토 무용이 나타난 건 제가 알기론 1960년대입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간혹 일본 방송에서 나왔던 걸 본 기억으로는 보는게 정말 괴로웠다는 사실뿐.
어지간한 현대무용과는 비교도 안되게 고통스럽습니다.
80년대에 유럽에 소개되었을 때 수많은 유럽 관객이 이 괴로운 무용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얘기죠.

오죽하면 파리에서는 오페라 티켓은 있어도 부토 무용 티켓은 없다라는 말까지 있었을까요.



 

 

 

[Don't Look Now/쳐다보지 마라] directed by Nicolas Roeg
1973 / 약 110분 / 영국, 이태리
언제나 심령술을 다룬 고전 호러물들은 상당한 긴장감을 줍니다.
이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36년 전 영화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고전적인 방식으로 사람의 가슴을 옭죄는,

잔인한 장면이라고는 단 한번도 없으면서 조금도 눈을 뗄 수 없는 스릴을 선사합니다.
니콜라스 로그 감독은 제가 예전에도 몇 번 얘기한 바 있는, 제가 여지껏 본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영화 중 하나인

믹 재거 주연의 [Performance]를 연출했던 감독입니다.
그 영화로부터 3년 뒤에 찍은 영화이고, 아름다운 배우 줄리 크리스티(Julie Christie)가 전성기일 당시에 찍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의 줄리 크리스티의 세련되고 지적인 아름다움은 정말 놀라울 지경이죠.

존(도널드 서덜랜드)은 고전건축물의 복원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어느날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은 그는 일 관계로 이태리 베니스로 건너와 어느 한 성당의 복구 작업을 맡게되죠.
아름다운 부인 로라(줄리 크리스티)와 아픔을 잊고 살아갈 무렵, 아내 로라는 식당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여인과 그 언니를 우연하게 도와주게 되고,

영매를 불러내는 능력이 있다는 장님 여인은 이미 죽은 딸의 모습을 정확히 얘기하며 그녀가 언제나 함께 한다고 로라에게 말합니다.
이후 로라는 그 두 자매에게 호감을 갖지만 존은 그러한 사실이 왠지 불편하고 꺼려지지요.
그러던 어느날 영국에 있는 아들에게 일이 생겨 로라가 급히 영국으로 가고 남게된 존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면서 로라를 찾아 베니스를 헤매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도 니콜라스 로그 감독의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절대접사와 대칭앵글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니콜라스 로그 감독은 항상 인물의 시선을 뒤에서 바라보길 즐기는 취미가 있죠.(저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마치 거울을 통해 뒤를 바라보는 시선과 뒤에서 거울을 통해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보는 느낌을 동시에 주곤 합니다.
이건 무척 기괴한 느낌을 주거든요. 훔쳐보거나, 마음을 읽히거나하는 이상한 시선을 느끼게 된답니다.
바로 이런 방식이 니콜라스 로그 감독이 보는 이에게 공포를 주는 방식입니다. 고전적이라구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전적 방식이 아직도 가장 유용한 심리적 압박의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내 로라가 등장할 때는 대부분 두 자매와 함께 이러한 교차 편집과 절대 접사를 이용합니다.
하지만 존이 등장할 때 그는 자신의 불안한 심리를 배경 속에 파묻곤 합니다.
그는 늘 혼자 음산한 베니스의 골목길을 걷곤 하죠.
로라가 자신의 불안을 외향적으로 표출한다면, 존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고 계속 불안해하며, 그 실체없는 두려움을 부정하려고 애씁니다.
이게 존과 로라의 차이죠.

이 영화에서 그려진 베니스는 하나같이 무뚝뚝하고 음산하며 고독하게 그려졌습니다.
등장하는 이들까지(하다못해 경찰담당자까지) 뭔가 수상한 기운을 가득 숨긴 것처럼 보이고, 베니스의 그 곳곳의 낡아빠진 건물들과 좁은 수로,

좁은 골목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음산하고 수상한 기운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러한 분위기가 존의 막연한 공포감을 더욱더 극대화해주고 있죠.
자신의 불안을 정면으로 맞닥뜨리지 못하는 이가 어떠한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지를 이 영화는 보여줍니다.
그것도 놀라우리만치 정교한 외적 복선들을 모조리 깔아놓고 말이죠.
마지막에 이르러 이 정교한 외적 복선들과 모든 상징은 한꺼번에 모조리 터져 버립니다.

꼭 보시길.

*
줄리 크리스티와 도널드 서덜랜드의 패션은 지금 봐도 장난이 아닙니다.
체크 블레이저와 블루 코트에 머플러를 맨 도널드 서덜랜드나 몸에 딱 붙는 니트와 트렌치 코트로 멋을

낸 줄리 크리스티의 패션은 아주 인상적이랍니다.

**
이 영화엔 불필요한 맥거핀도 종종 등장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나니 그게 불필요한 건지, 내가 이해를 못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네요. -_-;;;

***
이 영화의 원작자는 다프 뒤 모리에입니다.
그 유명한 히치콕[the Birds/새](1963)의 원작자이죠.

****
일찍이 알 파치노가 줄리 크리스티를 가리켜 '모든 배우 중 가장 지적인 배우'라고 칭송한 바 있는데,

그런 그의 극찬이 과장이 아님을 이 영화를 보면 알게 됩니다.
우리에겐 [Doctor Zhivago/닥터 지바고](1965)의 라라로 잘 알려진 그녀는

제가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Hal Ashby 감독의 [Shampoo/샴푸](1975)에도 출연합니다. 이 영화에선 워렌 비티와 함께 공연하죠.
1971년엔 Robert Altman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인 [McCabe & Mrs. Miller]에서 겉잡을 수 없이 망가져버리는 창녀 콘스탄스 역을 맡았습니다.

(여기서도 워렌 비티와 공연합니다)
근래엔 2006년 배우이자 감독인 Sarah Polley[Away from Her]에서 열연했지요.
아무튼... 정말 아름다운 배우입니다.
그리고 특히 이 영화 [Don't Look Now]에선 도널드 서덜랜드와 대단히 강한... 정말 정도가 심한 베드씬이 아주 긴 시간에 걸쳐 등장합니다.
그 베드씬도 이 영화의 분위기를 압박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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