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wing/노잉] directed by Alex Projas
2009 / 약 121분 / 미국,영국

비록 이 게시판엔 적은 적이 거의 없지만, Alex Projas(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98년작 [Dark City]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한 편입니다. 물론 [Dark City] 전작인 [the Crow/크로우]도 모르는 분들이 없을 만큼
유명한 영화지만 그의 정점은 제니퍼 코넬리와 존 머도우를 내세운 [Dark City]였다고 봅니다.
독특한 상상력을 그로테스크한 표현으로 제대로 담아낸 얼마 안되는 SF 걸작 중 하나라고 전 굳게 믿고 있죠.
물론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은 그저그런 너무나 평범한 뮤직 코미디 [Garage Days], 재미는 있었지만 기대만큼은
결코 아니었던 [I Robot]등 과작하면서도 그닥 [the Crow/크로우]와 [Dark City/다크 씨티]만한 영화를 보여주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알렉스 프로야스라는 감독 이름의 영향력은 제겐 절대적이다시피했어요.
그런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신작이라니 당연히 극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인천 관교동 EURO CLASS(유로 클래스)로.

이 영화의 결말을 말하는 건 아주 사악한 스포일링입니다.
그러므로 그닥 이 영화에 대해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어요.
말해도 상관없는 초반 줄거리라면 아마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50년 전 학교에서 아이들이 미래에 남기고 싶은 비전을 그리고 적은 기록물을 타임캡슐에 뭍었다가 50년 후에
꺼내어 학교 아이들에게 나눠줬는데, 존(니콜라스 케이지)의 아들인 케일럽이 잔뜩 숫자만 빽빽하게 적힌
종이를 받아 들고 집으로 가져오고 우연하게도 존이 그 종이에 적힌 빽빽한 숫자들이 사실은 지난 50년 간의
세계의 대참사가 일어난 날짜와 사망자수를 정확하게 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죠.
그리고... 앞으로 세 번의 참사가 더 일어난다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그 재앙을 막으려 동분서주하게 됩니다.

이러한 묵시록적인 내용에는 컴플렉스나 징크스라도 있는 듯 어김없이 종교적 철학이 살짝 끼어들게 됩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도 제가 불편해할 만한 종교적 요소들은 곧잘 보여요. 그렇더라도 그게 그닥 과도하고 무리하게
끼어들진 않아서 영화를 보는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닙니다.
기독교적 결정론에 입각한 예언의 현시를 따지고 보면 존이 그렇게 백방으로 동분서주해봐야 아무 소득이 없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을테죠. 특히 영화 초반에 말이 나오지만 존은 사고로 아내를 잃었고, 그 이후로 결정론 따위는 없고
오로지 우연과 우연에 의한 것만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교묘하게 이율배반적인 존의 두가지 모습이 곧 재난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으로 분하게 됩니다.
미래를 알게된 자의 업보라고 해야하나요?
사실 결정론을 받아들인 순간 존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잖아요.

혹자는 이 영화에 여지없이 끼어들어있는 가족간의 화해에 대해 대단히 심드렁한 것 같은데, 재난영화에서 여지없이
등장하는 가족애는 사실 어찌보면 당연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린 작은 재난에도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는 부모의 이야기를 종종 듣지 않나요?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을 때 사람들이 행하는 두가지 대표적 행위는 섹스와 화해입니다.
세상이 다 끝난다는데 그동안 좋지 않던 사이의 가족들과 화해하는 건 전 오히려 지극히 당연하다고 봐요.
그런 것에 일일이 짜증낼 필요는 없다고 보는거죠.
또한 혹자들은 지구가 왜 저런 결말을 향해 치달아야하는지 언급이 없다고 불편해하던데요. 좀 당황스러운게
지구가 저런 결말을 향해 치달아야하는 이유를 이 영화는 이미 얘기하고 있잖아요.(중반에 과학적 사유가 나오죠)
만약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해야한다면 그거야말로 종교적 심판 이외에는 달리 말할 길이 없지 않나요?
모든 사건과 현상에 반드시 우리가 납득할 만한 동기가 있어야한다고 눈을 부라리고 보는 거... 참 피곤한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나이트 샤말란[해프닝]도 똑같은 이유로 비난받았었죠.
영화 내용 상의 현상이란 것에 반드시 사람이 납득할 만한 뭔가의 이유가 존재해야한다고 믿어버리는 것만큼
답답한 일도 없어요. 대부분 이런 영화에서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재난의 이유가 아니라 재난에 처했을 때의
인간의 모습을 다루고 싶은 거잖아요.
사실 이렇게 쓰다보니 이 영화를 옹호하는 글로 어째 묘하게 변질되어버렸는데, 전 그만큼 재밌게 봤다는 얘기입니다.
전 영화적 서사가 치명적인 자기배반적인 오류를 범하지 않는 한, 서사가 스스로 플롯을 설득하고 풀어나갈 수
있다면 충분히 납득하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저와 aipharos님은 저희가 좋아하지 않는 종교적 신비주의가 있었던 점만 제외하면 재밌게 봤답니다.


*
이 영화의 재난 장면은 정말... 엄청나게 충격적입니다.
민성이 안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생생해서 그야말로 멍...해집니다.
이런저런 잡기술없이 그야말로 참혹한 재난이 일어나는 순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공포가 느껴질 정도로 충격적이에요.


**
알렉스 프로야스가 음악을 상당히 좋아하고 뮤직비디오도 만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the Crow/크로우]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고인이 된 브랜던 리(이소룡의 아들)가 맡은 에릭 데이븐이 크로우로 거듭날 때
그 모습과 분장은 흡사 80년대의 rocker의 모습과도 은근 비슷하지요.


***
이 영화에서 저희가 그닥 좋아하지 않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는 아주 잘 어울립니다.
딱 자기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그런 기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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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럭버스터 영화에 재난영화여서 그런지... 유로클래스에 관객이 좀 있더군요.
세상에 관객 좀 있다고 그렇게 소란스러워지다니 난감했습니다.
aipharos님 오른쪽 남자는 도대체 팝콘을 얼마나 사온건지 영화 끝날 때까지 '쩝쩝'소리내며 씹어먹고 있고
그 여자친구는 끝까지 떠들더군요.
우리 뒷편 우측, 좌측은 모조리 도대체 뭘그리 부석거리는지 모르겠고 한 편에선 '딱딱딱~'소리가 계속나고
오른편 끝에는 엄마와 아이(이건 15세 이상가였음에도)가 같이 와서 아이가 영화내내 엄마에게 물어보고
엄마는 아주 친절하시게도 그 아이의 물음에 다 답변해주는... 참 기가막힌 상황에서 영화를 봤어요.
정말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다시는 영화관에 오고 싶지 않아요.
'여보야, 우리 영화관 오지 말던지 아님 오더라도 사람 안 볼 만한 영화, 아니면 개봉 후 끝물...이럴 때 보자'
서로 이렇게 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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