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제대로 볼 순 없었지만 오늘 WBC 결승, 한일전.
우리 선수들 정말정말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쉬움도 많이 남겠지만, 그라운드에서 뛴 우리 선수들만 하겠습니까.
아무리 선전을 해도 개선되지 않는,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비유도 민망할 정도의 환경에서 이렇게까지 선전해 준
우리 선수들에게 정말 진심의 감사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야구란 스포츠의 한계상 프로리그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강국이란 위치를 갖게 된다면서 애써 이번 실적을
폄하하는 분들도 계시던데 언제나 이렇게 책상 앞에서 키보드 두들기며 맘대로 떠드는 건 쉬운 일입니다.
일본이 마쓰이 히데키를 제외하면 사실상 완벽한 베스트 멤버였다지만, 우린 대부분 국내 리그 선수들만으로
이번 대회에 임했습니다.
빛나는 각오로 일본전에서 공을 던진 우리 봉타나 봉중근 선수,
위기의 순간에서 말도 안되는 혼신의 돌직구를 뿌려댄 정현욱 선수,
베이징 올림픽에서 선발되고도 많은 야구인들의 불신을 받았던, 하지만 결국 그가 있어서 우승을 할 수 있었던
윤초딩 윤석민 선수,
짧은 이닝이지만 언제나처럼 듬직한 어뢰를 장착했던 정대현 선수,
일본전에서 부진했지만, 결국 한국의 10년 마운드를 짊어질 김광현 선수,
그리고 멕시코전에서 웨스트 Zone으로 인해 고생했으나 역시 한국 10년 마운드를 짊어질 류현진 선수,
비록 오늘 1구의 실투로 땅을 쳤지만 그동안 충분히 자신의 몫을 다해준 창용불패 임창용 선수,
그리고 2라운드에서 제 몫을 다 해준 이승호 선수,
이번엔 부진했지만 여지껏 늘 대표팀의 마운드를 받쳐준 장원삼 선수, 그리고 임태훈 선수,
비록 이전만큼의 돌직구의 포스는 보여주지 못했지만 역시 앞으로도 한국의 든든한 뒷문을 책임질 오승환 선수,
이승엽이 없는 대표팀 타선에 무게감을 더해주며 존재감을 더한 김태균 선수,
개인적으로 역시 한국의 15년을 이끌 것이라고 기대했던, 그리고 그 기대 그대로 부응했던 김현수 선수,
조용하고도 신중한 표정으로 이번 대회에서 너무나 감동적인 활약을 펼쳐준 꽃범호 이범호 선수,
악바리같은 근성으로 상대팀을 괴롭히고, 일본의 더러운 빈볼과 가격을 받으며 고생한 이용규 선수,
(빈볼을 던진 우쓰미는 일본에서도 헤드 헌터로 악명높은 인간입니다)
철벽같은 수비와 뜬금포로 한국을 위기에서 구했던 고영민 선수,
대주자로 많이 나왔지만 어김없이 기대에 부응했던 이종욱 선수,
주로 대체요원으로 나왔지만 나왔다하면 큰 일을 해주던 이진영 선수,
역시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보여준 정근우 선수,
김태균에 가렸지만 오늘 귀중한 희생타를 날려준 이대호 선수,
1,2라운드의 부진으로 맘고생이 심했지만 베네주엘라 전에서의 천금같은, 사실상 승부를 결정지은 3점 홈런과
오늘 1:1로 따라가는 홈런을 때린 추신수 선수,
비록 타격은 정말 안풀렸지만 그가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마운드가 걱정될 정도로 완벽한 투수리드와 도루저지
능력을 보여준 박경완 선수,
조금만 더 다듬으면 국제용 보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정 선수,
박진만의 공백을 충분히 메워준 박기혁 선수,
박경완 선수의 그늘에 가렸지만 자신의 몫을 다하느라 충분히 애쓴 강민호 선수,
대주자로, 대타자로 나와 묵묵히 최선을 다해준 이택근 선수,
그리고 제대로 활약을 보지 못했던 이재우 선수,
또... 단 한 경기도 뛰지못했던 손민한 선수. 제발 부탁인데 뛰지 못하는 그 선수의 맘은 정말 속이 타들어갔을
것이니 인격모독적인 비난은 그만했으면하는 바램.
무엇보다 우리 김인식 감독님.
믿음의 야구와 동물적인 감각의 야구의 진수를 보여준 감독님.
오늘 9회말에 김현수, 김태균을 모조리 대주자로 바꾸는 걸 보면서 믿음의 야구 속에 숨은 냉정한 승부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점에 그쳤지만 그 판단은 정말 옳았다고 감히 말하고 싶어요.
모두모두 너무너무 수고하셨습니다.
18일간 정말 좋은 꿈꾸게 해주셔서 모두들 감사합니다.
*
일본의 야구실력이 대단한 건 너무나도 잘 알겠는데 오늘은 영 뒷맛이 개운하지가 않습니다.
2라운드에서의 우쓰미의 뭐같은 빈볼과 나카지마의 더러운 플레이도 문제였지만 심판의 그 황당하도록
한국에 편협하게 좁았던 스트라이크 존은 기가막힐 지경입니다.
일본의 스트라이크 존은 그야말로 경차 한대가 지나다닐 정도로 넓게, 높게, 낮게 다 잡아주면서 우리나라
투수들의 공은 바깥쪽은 여지없이 잡아주질 않더군요.
우리나라 투수들의 공은 횡적인 변화가 더 많습니다. 포크볼등의 종적 변화가 심한 일본 투수들과 달리
스트라이크존을 횡으로 더 활용하죠.
이렇게 좁아진 스트라이크존이 되어버리면 당연히 투수의 공은 몰리게 되고 상대 타자들은 버릴 건 버리고
확실하게 칠 공을 골라낼 수 있으니 안타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타자도 마찬가지인데 스트라이크존을 넓게 잡아주면 공을 선구하기보다는 볼에도 당연히 배트가 나가게
되잖아요. 안타를 때리기보다는 수준있는 투수가 나오면 휘둘러대기 급급하게 됩니다.
승패 결과에 대한 깨끗한 승복때문인지 이런 부분에 대한 얘기가 거의 없지만... 국제대회라는 곳에서의
이런 점은 너무나 아쉬움이 커요.
**
제법 유명한 어느 블로그에 들어갔더니 누군가 댓글로 '야구가 져서 아쉽다'라는 글에 '그깟 공놀이 -_-'라고 썼더군요.
말은 정말 '아'다르고 '어'다른거죠. 그가 '그깟'이라고 충분히 폄하할 만한 그 대상에 오늘 수많은 사람들과 선수들이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전 야구에 관심이 없어서...'라고 쓰면 될 것을 '그깟...'이라니.
범인들의 관심사에 무념하면 쿨하고 쉬크한거라 생각하시나? 그 블로거의 개념없는 삐딱함에 잠시 울컥했어요.
얼마전 민성군이 목숨을 걸고 산에 오르는 이들에 대한 얘기를 해줬더니 '그걸 왜 하는거에요?'라고 묻길래,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최고의 가치를 두고 해내려는 것들이 다르기 마련이고 그래서 그러한 개개인의 가치를 존중해줄 줄
알아야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잘못 말한게 아니죠?
'그깟'이라는 말은 무심코 한 말일 순 있는데 무척 울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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