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전화를 받았다.
내가 2주간 설래이며 열정을 보이던 우리의 레스토랑은 사실상 무산되었다.
이 판을 구상하게 된 건 3자의 이해관계가 모두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작가는 자신의 갤러리에서 경제적 수익과 함께 방문자를 확보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조금 더 갤러리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싶어했다.
유비 쉐프는 자신이 자신의 뜻대로 마음껏 음식을 선보이며 고객들과 소통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그러한
공간으로 이작가의 공간을 희망했다.
난 이 공간을 홍보하고 꾸려나가며 자금을 대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제안한 것이다.

유비쉐프는 자신의 음식을 자랑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 될 수 있지만 우리가 구상한
공간의 룰엔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다. 그리고 사실 이런 작가적 의식이 있는 쉐프가 과연 얼마나 될까.
자신의 음식을 완성체로 보는 경향이 강한 대부분의 쉐프와 달리 작품과 공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는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내가 이작가에게 제안한 공간은 이러한 유비 쉐프를 중심으로 구상한 거였다.
그리고 유비 쉐프는 오히려 우리가 더 놀랄 정도로 진행을 서두르고 휴일도 없애고 숙식까지 이곳에서 몇달은
할 각오까지 했다. 그리고 그 각오는 진심이었다.

다만, 이 공간은 처음엔 돈을 벌 가능성이 그닥 많지 않아 모두에게 일정 부분의 희생을 요구한다.
물론 그 부분은 내 몫이 크다. 내가 처음에 투자하는 자금으로는 주방과 인테리어 설비, 그리고 각종 아이덴터티
작업, 그리고 수익이 없을 경우 2~3개월 간의 운영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한 번 투자한 이상 자금의
어려움을 겪으면 당연히 투자를 더 하겠지만 일단 오프닝으로 잡힌 비용은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은 금액이었다.
또한 유비 쉐프는 일본으로 갔다가 파리로 가는 계획을 사실 이미 짜놓은 상태에서 우리 계획을 듣고 자진해서
자신의 원래 계획을 포기하려고 했던 거다.
난 그러한 유비 쉐프의 진심을 진정으로 알고 있고, 그래서 도중 하차하게된 지금도 그의 결정을 충분히 존중한다.
결혼한 입장에서 어떻게 이 모든 중대한 결정을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그리고 반대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결국 내가 그만한 비전을 그의 가족들에게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닌가.
나의 책임이지 유비쉐프의 책임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짠 판에서 유비 쉐프의 대안을 난 찾을 능력이 없다.
그래서 결국 이 레스토랑 오픈은 무산이 되었다.

오늘 밤엔 이 일에 대해선 마지막으로 모이는 날일 것 같다.
겨우 2주일 동안, 나도 열심히 구상하고 아주 자주 모여서 셋이 꾸며본 이 계획을 이제 접어야 한다니 솔직히
마음이 몹시 아프고, 서운하고, 안타깝다.
이런 기회가 또 올까? 하는 생각이 너무 커서 어쩌면 내 인생의 첫번째 기회를 놓친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이 일로 인해 의상할 일도 없고, 차후의 비전에 대해 나도 공부하고 연구할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계획에 전적으로 지원을 주신 이곳을 방문하시는 분들께 정말, 진심으로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내심 이 공간을 다같이 가꿔나가는 모습을 이 게시판을 통해 하나하나 글을 올려서 나중에 보고 곱씹을 그런
히스토리를 생각했는데 결국엔 본인의 설레발로 끝났고 2주간의 정말 설레이고 행복한 꿈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 행복한 꿈을 꾼 2주간은 참 행복했던 것 같다.


'--- 잡소리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081110 _ 결혼 전 거짓말  (0) 2016.11.17
081030 _ 소박한 지름  (0) 2016.11.17
081120 _ 사람사는게 다 그렇지  (0) 2016.11.16
081118 _ 운동과 음악  (0) 2016.11.16
081117 _ 요즘  (0) 2016.11.1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