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부터 본격적으로 엉망이된 내 건강은 결국 월요일까지 이어졌다.
예의 그 편도선염이야 그렇다치고, 거의 위활동이 정지한 듯한 이 당혹스러운 소화불량은 정말 곤혹스럽다.
먹는 족족 얹혀 버리고 아예 소화기능이 마비된 느낌이다.
이미 위내시경도 했었고, 간검사, 당뇨검사, X-Ray 모두 아무 이상도 없었는데 도대체 왜 이런지 모르겠다.
덕분에 5일간 난 소화불량으로 인한 무거운 두통을 앓고 있다. 이 기분도 정말 더럽다.
회사도 나가지 못하고, 누가봐도 이건 급여주기 아까운 직원이 되어버리고 있다.
요사이 부쩍 이렇게 건강 문제로 회사를 못나가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아마도 건강이 회복된 후엔 어떻게 해서든 운동을 하고, 그와 동시에 엄청난 야근이 불가피할 것 같다.
까먹은 점수는 다시 따야하지 않나.
가만히 누워있어도 파고드는 오한과 관절을 바늘로 마구 찔러대는 통증, 오르락 내리락 정신을 놓게하는 열,
침삼키기도 겁나는 목의 통증, 누워있고 싶어도 불가능한 소화불량에 시달리다 보면 당연히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어차피 가만히 휴식을 취해야 한다면 결국 영화를 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는거다.
2월 16일부터 그나마 영화를 봤다. 정말 무리해서 봤다. 보는 중에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영화라도 안보면 이 시간들이 정말 성질나게 아까울 것 같았다.
[바르게 살자], [Death at a Funeral], [Control], [the 40 Years Old Virgin], [Reprise], [After the Wedding]
이렇게 여섯 편을 봤다.
1. [바르게 살자]
생각보다 무척 재밌게 본 영화다. 이렇게 재미있을 거라곤 조금도 예상하지 안했는데.
확실히 장진 감독은 직접 연출하는 것보다는 제작하는게 훠어어어어~~얼씬 어울린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한 영화다. 장진 감독이 직접 연출해서 재밌게 본 영화는 솔직히 [아는 여자] 밖에 없다. -_-;;;;
2. [Death at a Funeral/미스터 후아유]
국내 개봉제목이 도대체 어떤 ㅆㅂㅅ가 지었는지 '미스터 후아유'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영국 로컬 코메디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주고 있는데 나름 재미가 있었다.
프랭크 오즈 감독이 이런 영국 로컬 코메디의 느낌을 살려내니 거참... 기분이 묘하다.(프랭크 오즈 감독이
영국인이었나? 나중에 imdb검색해봐야겠다)
3. [Control]
말이 필요없는, Ian Curtis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그 자신이 Joy Division 그 자체였던 Ian Curtis.
겨우 2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그에 대한 일기가 이 영화엔 아련하게 베어들어 있다. 조금도 그를 미화하거나
합리화하지 않은 이 솔직한 biography는 도리어 젊은 나이에 감당하기 힘들었던 그의 현실을 더더욱 깊이
느낄 수 있게 다가왔다. 근래, 아니 요 몇년 사이에 본 음악/전기 영화 중 단연 최고다.
아마존에서 DVD를 지르고 싶긴 한데, 이 영화는 블루레이 디스크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분명히 블루레이 버전이 나올테니.
이 영화는 나중에 분명히 따로 글을 쓸 일이 있을 것 같다.
나 자신부터 Joy Division의 팬이었으니...
4. [the 40 Year Old Virgin/40살이 되도록 못해본 남자]
Judd Apatow 감독의 2005년작이다.
[Knocked-Up]과 그가 제작한 [Superbad]로 미친듯히 홈런을 치고 있는 이 감독 영화의 특징은 은근히
처절한 코미디라는거다. 그러니까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이 언제나 '어? 이거 어떻게 수습하려는거야?'라는
걱정이 들 정도로 갈 때까지 간다. 그런데도 정말 놀라우리만치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는다는 거지.
이 영화는 두고두고 미루다가 이제서야 봤고, aipharos님이나 나나 대만족한 영화다.
재밌는 것은, Judd Apatow 감독의 부인인 Leslie Mann이 바로 이 영화에서 스티브 카렐을 공포로 몰고간
그 엽기녀!라는 거다. ㅎㅎ
여기엔 스포가 있습니다.
5. [Efter Brylluppet/After the Wedding]
덴마크 Susianne Bier 감독의 2006년작이다.
이 영화도 워낙 호평을 받았던 영화인데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물론 국내엔 개봉하지도
DVD로 출시되지도 않았다.
Mads Mikkelsen(매즈 미켈젠)의 연기야 [Adams æbler](2005)에서 이미 절절하게 경험한 적이 있지만
이 영화에서도 그의 그야말로 '정중동'의 연기는 일품이고, 요르겐 역의 롤프 아스고드(Rolf Lassgård)
역시 대단한 연기를 보여준다.
이러한 호연들은 적당한 감정의 표현을 통제하는 멋진 시나리오와 함께 보는 이의 가슴 속에 하나둘
작은 이해와 연민의 계단을 오르도록 자연스럽게 이끈다.
궁금하다. 이 영화의 말미에서 야콥(매즈 미켈젠)의 결심에 따라 물질적인 풍요를 입게되는 봄베이의
그 아이들이 정말 행복해지는 것인지, 아니면 야콥이 그 아이들에게 말했던 대로 바보들이 가득한 부자의
흉내내기, 바로 그 시작의 지점이며 선의를 가장한 식민자본주의의 다른 한 형태일 뿐인지 말이다.(이렇게
혼란스러워지는 건 이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6. 그리고... [Reprise]
이 영화는 노르웨이 영화로 2006년작이다. Joachim Trier 감독의 실질적인 장편 데뷔작인데 사실 난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속된 말로 완전히 '뿅갔다'.
이 영화는 네이버의 누군가의 말처럼 노르웨이판 [Trainspotting/트레인스포팅]이 절대로 아니다.
[트레인스포팅]을 폄하하는게 아니라(나 자신도 무척 좋아하는 영화다), 절대로 그 영화와 비슷한 영화도
아니라는 것 뿐이다.
이건 '방황'이라기보다는 젊은이들이 휩싸여버릴 수 밖에 없는 또다른 강박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가지망생인 두 주인공 에릭과 필립의 엇갈리면서도 같이 가는 길을 따라가면서 그 주변부의 친구들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곁들여가며 거칠고 순수하며 냉혹하기까지한 젊은이들의 삶에 대한 강박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캐스팅, 시나리오, 사운드트랙, 카메라 그 모든 것이 다 마음에 들지만 놀랍게도 이 영화엔 프랑소와 트뤼포의
누벨바그 사조에서 중요한 영화 중 한 편인 [줄 앤 짐]에 헌정하는 듯한 오마쥬까지 등장한다.
(에릭과 카라가 파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그 시퀀스를 무시하는 듯한 장면들!)
이 놀라운 영화를 보고난 후 내가 동시에 하는 일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바로 New Order의 'Blue Monday'를 틀어대는 일이었고,
또다른 하나는 Amazon.com과 Amazon.co.uk에 들어가서 이 DVD를 장바구니에 넣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이 영화의 OST는 어케 구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할 정도로 마음에 들고,
캐스팅도 완벽하다. 에릭과 필립, 이 두 훈남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지.
참고로... 감독은 Joachim Trier는 그 유명한 Las Von Trier(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친척이다. -_-;;;;
이쯤에서... New Order의 'Blue Monday' 뮤비.
아시다시피 New Order는 Joy Division이 Ian Curtis 자살 이후 사실상 재결성한 밴드다.(뭐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렇게 말하기 좀 거시기하지만, 핵심 멤버인 버나드 섬너는 그냥 New Order 오리지널 멤버.
물론 필 커닝햄도.->필 커닝햄은 나도 좋아했던 Marion의 멤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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