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War/디워]의 개봉일이 코앞으로 다가 왔다.
가뜩이나 이슈가 없는 국내 영화계에 [디워]는 단연코 최대의 화두가 되었다.
영화 종사자들은 어딜 가나 [디워] 얘기로 정신이 없다고 아우성이니...
흥행 여부와 관련없이 개봉 이전에 이토록 전국적인 관심과 논쟁을 불러 일으킨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인터넷을 도배하다시피한 네티즌들의 개봉도 안한 [디워]에 대한 찬미의 글들을 보면서 처음엔 난감함과
이를 넘어선 분노까지 느꼈었지만 지금은 그냥 덤덤한 씁쓸함만이 내게 남은 것 같다.
그동안 네티즌들이 한가지 논쟁에 절대적으로 들이대던 설익은 내셔널리즘과 억지 옹호가 이번 [디워]
건으로 인해 완벽하게 까발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이번엔 '[디워]가 아닌 인간 심형래를 전폭 지지하고 응원하는 대다수의 네티즌' VS '[디워]가 영화로서
온전치 못한 만듦새를 지녔다고 비평하는 언론과 그를 괄시한(네티즌 주장에 의하면) 충무로'의 구도로
확연하게 대립구도가 정리된다.

[디워]를 옹호하는 이들의 논리는 이렇다.
[디워]는 인간 심형래의 우직한 장인 정신이 빗어낸 산물이다. 자기 밥그릇 지키려고 발버둥친 국내 영화
종사자들과는 다르다, SF면 무조건 헐리웃이라고 생각해왔던 통념을 깨버린 쾌거다, 조폭 코미디와
저급한 로맨스가 판치는 한국 영화계에 유래없는 도전이며 인간 승리다...라는...
그러므로,
자국의 고집있는 장인을 응원은 못할 망정 '이유없이' 까지 마라. 까려면 [디워]보다 더 나은 영화를
만들고 나서 까라...는 거다.(이런 난감하기 짝이 없는 반론은 울나라 네티즌들의 장기 중의 장기다)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을 할 때 우리 나라 네티즌은 60% 이상이 스크린 쿼터 사수를 주장하는 영화인들을
밥그릇이나 챙기려는 족속으로 몰아 난도질했다. 아이러니하게 스크린쿼터 운동이야말로 사실상 한국영화
의 보호장치를 영화인들이 요구한 것인데 네티즌들은 철저히 시장 논리를 들이대며 경멸했고, 전혀 논쟁과
상관없는 배우들의 외제차 문제까지 들먹이며 쌍수를 들어 반대했다.
그런데 이번에 [디워]에 대한 네티즌들의 인식은 상당히 이율배반적이다. 그들은 [디워]가 자국의 영화
기술력의 긍지를 높여 줄 영화이므로 응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그 잘난 영화 평론가를 비롯한 '영화계 전반'이 순혈주의를 고집하며 태생이 다른 심형래를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경멸해왔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연민과 동정까지 곁들여지고, 여기에 설익고 위험한
내셔널리즘이 덧칠해져 기괴한 팬덤을 형성해 버렸다.

난 지금 탈레반에 인질로 잡혀 있는 한국인들에 대한 네티즌들의 거침없는 비난(죽어도 싸다. 살려 줄
필요없다. 갸들 살린다고 돈주면 탈레반은 다시 무기를 사고 테러를 감행하는데 도움을 주는 꼴아니냐)
을 보면서 이러한 네티즌들의 분위기가 [디워]에 대한 맹목적이다시피한, 그들은 논리로 무장했다지만
사실 어디서부터 반박을 해야할지 당황스러울 정도로 광범위한 에러를 보여주는 모습과 거의 대동소이
한 점이 두렵다.

아직 당도하지도 않은 영화를 영화로서 평가하지 않고 수많은 미확인 정보들이 확대 재생산되어 가며
심형래씨가 시대의 저속한 흐름에 반발한 선견인처럼 평가받고, 또 그는 이러한 흐름을 즐기는 듯한
인터뷰들을 줄기차게 하는 걸 보면(어제 '상상플러스'는 그 절정이었다) 이제 평론으로 밥먹고 사시는
분들은 영화산업과의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답답함을 넘어, 걸핏하면 기괴한 팬덤을 형성하는
네티즌들의 눈치까지 봐야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 답답하다. 또 실제로 수많은 언론들이 네티즌을
의식하여 시사회 이후 점잖게 리뷰를 썼다(CG는 양호, 스토리는 약간 아쉽다)

옹호하는 이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해리포터...' , '다이하드', '트랜스포머'는 넙죽넙죽 재밌다고
받아 쳐먹고 '디워'는 왜 욕 하냐고.
난 보지도 않은 '디워'를 욕하고 싶은 마음 없다. 정말이지 처음부터 욕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욕하지도 않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간의 심형래씨의 행보와 최근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어떤
관점에서 영화를 바라보는 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한 사람도 물론 비난받을 이유는
없지만 그 반대로 그가 마치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듯한 분위기로 몰아가서는 더욱 곤란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로 심형래씨가 처절하게 추구한 것은 '성공'이지 잘 빠진 영화가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개소리냐, 잘 빠진 영화가 나와야 성공하는 건데...라고 반박을 할테지만, 심형래씨는 그간의 인터뷰
에서 [스파이더 맨], [반지의 제왕], [킹콩]을 모조리 언급하며 단순한 스토리를 지적했다.
난 [디워] 엔딩에 삽입된 에필로그의 황당함은 차치하고, 이런 심형래씨의 시각이 그가 어떻게 영화를
바라보고 있는 지를 명확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그를 지지할 수 없다는 것 뿐이다.
다시 말하면 영화에 대한 개인적 호오 이전에 그가 이토록 한국 영화의 희망이자 장인처럼 숭상되는
현상을 경계하자고 하는 말일 뿐이다.
이전에도 얘기했지만 [스파이더 맨], [반지의 제왕], [킹콩]은 얼빠진 바보 단선 스토리가 아니다.
스파이더맨의 기본적인 스토리는 당연히 악당을 물리치는 것이지만, 여기엔 히어로가 개인적으로
짊어지는 처절한 자기 고뇌와 번민이 놀라우리만치 잘 표현된다. 우리가 스파이더맨이 2편에서
폭주하는 전철을 세울 때 가슴이 울컥하는 것은(그런 감정이 없으셨다면 죄송) 현실의 고뇌에 찌든
히어로의 처열한 모습에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건 스토리의 힘이고, 연출의
힘이며 배우의 힘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가 단순히 반지를 파괴하러 가는 것은 맞지만 피터 잭슨은 모든 캐릭터를
살아 숨쉬는 현실의 캐릭터로 구현해 놓았고 영화적 완성도의 결이 조금도 떨어지지 않도록 3편의
대장정을 끝마쳤다. 난 심형래씨가 이 영화들을 보고 사적으로 그러한 감상을 가졌다고 한다면 조금도
비난할 마음이 없다.
다만... 심형래씨는 자신의 영화 [디워]에 지적된 단선적 스토리를 옹호하는 도구로 위 영화들을
언급했다. 이미 수많은 전세계 영화팬들이 감상하고 감동했던 보기 드문 영화들을 오로지 자신의
영화 한 편을 옹호하는데 거침없이 빌어다 썼다. 게다가 조금의 형식적 예우도 없이(물론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가차없이 조소했다.
스스로의 영화를 거침없이 위 영화들과 비슷한 레벨에 올려 놓는 저 답답하고 오만한 마인드를 보고
그제서야 그가 왜 영화인들에게 무시를 받았는 지 알 것 같았다.
영화라는 것은 기술주의에 경도되어가는 현상이 보다 더 보편화되어 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종합
적인 예술이다. 적절한 스토리가 있어야 하며, 이를 현명하게 표현할 배우가 있어야 하고, 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조명과 미장센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이를 잘 버무릴 수 있는 연출자가 필요하다.
이러한 요소들이 잘 맞물려야 우리가 영화관에 앉아 있는 2시간여를 후회없이 보는 영화가 나오는
것 아닌가...

누군가 [트랜스포머]는 스토리가 역겨운데 재밌다고 봐놓곤 왜 [디워]는 스토리가 개판이란 소리만
하냐...고 반박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활자를 활자대로 믿는 무지한 교조주의로 목을 메고 있는 것을 보면 분노의
심정마저 든다.
[트랜스포머]는 기본적으로 역겨운 스토리가 맞다. 나 자신도 이 영화를 '너무나 재밌게'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아들이 나중에 자라서 '어렸을 때 [트랜스포머]를 보고 정의를 생각했다'...라거나
'영화를 결심했다'라는 말을 하게 될까봐 우스운 걱정이 들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트랜스포머]는 쓸데없는 트릭을 쓰지 않았다.
트랜스포머란 영화는 관객들에게 일체의 설명이 필요없는 스토리로 내달린다.
[디워]가 한국의 이무기 설화를 모태로 환생과 교감을 소재로 했다면 당연히 이를 이해하거나 온건히
설명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트랜스포머]는 이런 설명의 과정이 필요없다.
일방적으로 올바른 방향성을 갖고 직진하면 그만인 영화다. 게다가 이런 단선적 스토리가 힘을
얻는 것은 이전에도 얘기했듯이 마이클 베이가 가진 놀라운 역동적 액션의 구현 센스 덕분이다.
난 늘 마이클 베이를 윌리엄 프리드킨 이후로 가장 체이싱(chasing) 씬을 잘 찍는 감독이라고 생각
해왔다. [the Rock]보다 [Bad Boys 1,2]에서의 체이싱 씬을 보면 그는 횡과 종을 완벽하게 계산
하며 마치 체이싱 씬을 마이클 만의 시가전 액션처럼 구현하며 스펙터클을 최대한 이용할 줄 안다.
오락 감독으로서 이러한 센스는 가히 무소불위의 막강한 장점이다. 덕분에 [트랜스포머]는 어렵지
않은 이야기에, 완벽한 방향성을 가진, 완벽한 액션 영화로 탄생했다. 누가 이 영화에 섵불리 돌을
던지기 힘들게 만든 것이다.

난 [디워]를 아직 보지 못했다. 따라서 [디워]가 [트랜스포머]에 비할 바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트랜스포머]를 보고 그 스토리에 식겁한 기자와 평론가들이(난 기자와 평론가를 옹호하지
않는다. 절대로- 이건 그것과 다른 문제다) 거의 만장일치로 스토리를 지적한 것은 '설명의 필요가
있는 스토리'임에도 그것에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영화에 몰입할 수 없었다는 얘기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거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깔 생각은 말고 안되면 위로하고 격려해 달라'고.
난 그 분들에게 묻고 싶다. 왜 유독 심형래씨에게만 이러한 관용과 자비를 베풀라는 것이냐고.
그가 한 우물만 판 '장인'같은 사람이어서? 그렇다면 또다시 묻고 싶다. 그럼 어떻게든 좋은 영화
만들려고 힘든 영화판에서 작품을 만들었는데 처절하게 외면당한 수많은 감독들에겐 왜 그렇게
냉정하셨냐고. 그들이 '충무로'라는 시스템에서 영화를 만들었고 그건 SF같은 남이 가지 않는 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왜 그렇게 SF장르에 대해 호의적들이신지. 그것이 헐리웃에서나
부릴 수 있는 마법같은 거라 감히 넘보지도 못할 무언의 컴플렉스를 안고 있었는데 일갈에 이를
해소해주는 영화, 아니 사람이 바로 심형래씨여서냐고.

만약 그가 영화를 사적인 결과물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수많은 부분을 양해해서라도 자신은 제작
으로 물러나고 연출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했다. 그가 줄기차게 외치는 '성공'이라는 목표의식은
그가 영화를 어떻게 바라보는 지 가감없이 보여준다. 영화 엔딩에 삽입된 에필로그는 그가 [디워]
라는 영화를 철저히 사적으로 소유하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난 그런 그의 사고가 싫다.
만약 그가 인터뷰에서 '그간 설움도 많았습니다. 부족한 점도 많지만 정말 힘들게 노력했습니다.
즐겁게 보세요'라고 쿨하게 얘기했다면 난 분명히 심형래를 다시 봤을 거다.
하지만 그는 [용가리]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용가리 2002]가 거의 단관 개봉된 것에 '뒤늦게' 분노하는 이들도 많다. 영화계가 짜고 심형래를
매장한 거라고.
언제나 시장 논리들이대길 좋아하시는 분들이 왜 이 문제에는 이런 찌질스러운 사고를 하시는지
심히... 의심스럽기만 하다.

네이버에 길게 댓글 올렸다가 수퍼 울트라 폭탄을 맞고 그냥 웃었다.
이게 정말 정상인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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