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Weeks Later...] directed by Juan Carlos Fresnadillo
2007 / approx 99 min / UK, S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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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의 [Intacto]는 아주 인상깊었던 영화였어요.
타인의 행운을 뺏어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이들의 얽힌 갈등을 대단히 명민한 템포로 잡아낸 최상품 스릴러
였지요. 정말 두고두고 인상깊은 장면들도 어디 한 둘이 아니에요.
특히 행운을 시험한다고 눈가리개를 하고 나무가 빽빽한 숲을 뛰어가는 장면은 긴박한 심장과 흥건해진
주먹의 땀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67년생인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프레스나딜로는 이 놀라운 데뷔작 이후 너무 오랫동안 침묵했어요.
고작 이듬해인 2002년 3분짜리 단편 하나 발표한게 다 였으니까요.
젊은 감독이 과작을 해도... 정말 심하게 했네요.(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영국, 특히 런던은 많은 영화 속에서 디스토피아적인 이미지로 그려지곤 합니다.
이런 묵시록적인 이미지는 아무래도 영국이 폐쇄적 고립이 가능했던(역사적으로 해상봉쇄가 있기도 했던)
섬나라라는 점, 그리고 절대적 패권을 다투던 제국주의에서 급격한 산업혁명이 이루어진 대표적인 국가라는
점도 무시할 순 없을 겁니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방법으로 자본주의를 풍자하고 나아가 이를 파시즘으로
확대하고 비틀어댈 수 있는 곳이 영국의 런던이라는 공간입니다.
조지 오웰의 [1984]의 전제주의적 국가로 묘사되는 오세아니아도 가장 적극적으로 비유된 것이 영국이었고,
실제로 그러한 디스토피아적 분위기의 영화들에 소재로 차용되곤 했지요.

[28 Weeks Later...]는 전작인 Danny Boyle의 [28 Days Later...]로부터 28주 후의 이야기입니다.
대니 보일 감독의 [28 Days Later...]는 그동안 좀비들은 느릿느릿 움직인다는 통념을 무너뜨린 영화죠.
물론 엄밀히 말하면 좀비라고 할 수 없으나 그들이 사고능력을 상실하고 인육을 먹는 다는 점에서는
좀비와 다를 것이 없었어요. 조지 로메로 시절 이후의 좀비들은 느릿느릿 움직이며 다수가 서서히 옭죄어
오는 공포를 통해 생존자들의 폐쇄적 공간에서의 동선과 갈등 구조에 집중하면서 사회적 은유를 다뤄왔습
니다만, 대니 보일 감독의 [28 Days Later...]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상당부분 거세시키고 보다 직접
적인 액션 시퀀스에 주력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 등장 인물들간의 갈등도 여전히 지켜주고 있구요.
이후엔 잭 스나이더 감독의 리메이크작 [Dawn of the Dead]에서 보시면 역시 좀비들이 정상인과 같은
속도로 무섭게 질주합니다.
이제 등장인물들은 더이상 상대가 좀비라고 침착하게 생각하며 피신한다는 것이 불가능해진거죠.
진중한 서스펜스는 포기하고 긴박한 시퀀스로 다른 느낌의 서스펜스를 창출하는 것이 현재의 좀비 영화의
느낌입니다.(물론 다소 고전적인 [Land of the Dead]가 있긴 합니다)

[28 Weeks Later...]의 앞부분엔 전작과 전혀 상관없는 바이러스 감염 후의 어느 생존자들의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사실 이 장면에서부터 이 영화는 놀라운 연출력을 대놓고 전시합니다.
질주하는 돈(Robert Carlyle)의 모습과 보트로 뛰어들어 타는 모습은 정확히 말해서 자신의 [Intacto]
에서의 질주씬과 조지 로메로의 리메이크작인 [Dawn of the Dead]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입니다.
게다가 여기에 암울한 영화의 분위기를 한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이끄는 일렉트로니카 음악들은 놀라운
오리지널 스코어입니다.

 

 

이제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마 근래 본 호러/액션 중 가장 공포스러웠던 영화가 바로 이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심박수를 증대시키는 긴장감이 정말 예사스럽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어 영화로서의 강도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잔인한 장면이 결코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폐쇄적 공간에서 피신한 사람들이 갇힌 채로 우왕좌왕 어두운 곳에서 미친 듯이 감염자에게 도미노처럼
감염되고, 다시 다른 이를 감염시키는 이 장면은 보통 공포스러운 것이 아니에요.

게다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아내를 버렸던 돈(Robert Carlyle)이 특이한 신체 면역성으로 인해 감염자에게
물리고도 감염되지 않고 생존한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고 키스하다가 감염되어 자신의 부인을 끔직하게
물어 뜯어버리는 장면은 대단히 가치 전복적입니다.
상대에 대한 책임으로 연속된 가족 관계에 대한 위선을 벗어던지고 적대적 폭력으로 물든... 그야말로
절망적이면서도 처절한 폭력을 보게 되는거죠.
이 장면의 충격은 정말 만만치가 않아요.

**
이 영화에서 다시 런던의 safe zone에 도착한 주인공 남매 중 남자아이에게 스칼렛(미국 군의학자)은
네가 이곳에 온 사람 중 가장 어리다...라고 말합니다. 그 남자아이의 나이는 12살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어린 아이들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Children of Men]과 같이 이 영화도 영국의 고령화와
젊은이들의 패기없는 삶을 은유적으로 빗대어 부르고 있습니다.

***
영국이 전제주의적 디스토피아로 다뤄진 영화들은 [V for Vendetta](2005), [Children of Men](2006),
[Brazil](1985)등...으로 쉽게 생각해낼 수 있습니다. 하나같이 걸작들이군요...
특히 [Children of Men]은 제가 올해 본 영화 중 단연코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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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엿되는 미군들과 달리 쿨한 모습으로 일관하다가 희생정신까지 보여주는 도일역은 [S.W.A.T]에서
팀원을 배신하는 역을 맡았던 Jeremy Renner가 맡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미군이 이끄는 NATO(그냥 미군...)군은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얘기하지만
한마디로 완전히 엿되고 맙니다. 그들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줄창... 얘기한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를 비꼬는 수완. 엄청난 네이팜으로 완전히 쑥대밭을 만들고 감염자, 비감염자 구분없이 학살을 해도
통제가 안되어 결국 safe zone 밖으로 튀어나가는 감염자를 멍하니... 쳐다보고 털썩 앉아 있는 미군
지휘부의 얼빠진 모습이란...

*****
그동안 좀비들은 본능에만 충실할 뿐 사고 능력은 없는 것으로 나왔습니다만,
이 방면의 본좌이신 George Romero 감독님의 2005년작 [Land of the Dead]에서는 처음으로
학습하는 좀비가 등장합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얼핏보면... 좀비와 생존한 인간들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듯한 모호한 결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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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놀라우리만치 영리한 장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만...
몇몇 중요한 부분들이 설득력이 떨어지곤 합니다. 돈이 생존해 있는 아내를 아무런 제지없이 찾아가는
장면도 그렇고(물론 영화 초반에 돈이 아이들에게 자신이 건물들을 관리(혹은 통제)하고 있음을 과시
하긴 하지만 감염자에게 물린 흔적까지 있는 아내를 지키는 병사도 없다는 것이 납득하기 힘들죠),
두 아이들을 프랑스까지 헬기로 운반해주는 것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를 폄하할 마음은 조금도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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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엄청난 포스를 보여준 남매 중 누나역의 태미역은 신예 Imogen Poots가
맡았습니다. 케이트 블랜쳇의 분위기에 한없는 그윽함을 갖고 있는, 젊은 배우로서는 놀라울 만한
분위기와 외모를 보여주더군요. 기대가 됩니다.

 

 

 

 

Imogen Poots

 

 

 

 

 

그리고 영화 초반에 잠시 등장하는 카렌역을 맡은 배우는 Emily Beecham입니다.
Imogen Poots와 Emily Beecham 모두 신예들인데요, 앞으로 기대되는 배우라고 생각됩니다.

 

 

 

Emily Beec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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