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antropica] directed by Nae Caranfil
2002 / approx 110 min / Romania
우리나라에선 내가 개인적으로 넘넘 좋아하는... 요즘들어 더 좋아지는 전도연씨의 깐느 여우주연상 수상 이야기만 줄창 나오고 있으나,
당연히 이 외에도 주목할 만한 수상은 얼마든지 더 있습니다.
공식시사부터 일관적인 평단의 지지와 찬사를 받은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의 [4 Luni, 3 Saptamini
Si 2 Zile/4 Months, 3 Weeks And 2 Days/4달, 3주 그리고 2일]이 결국 황금종려상을 받았는데
감독 크리스티안 문쥬는 루마니아 감독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도 역시
루마니아 감독인 크리스티안 네메스쿠의 [California Dreamiing]이 수상했습니다.
루마니아가 비록 90년대 들어 정부의 대폭적인 지원 삭감으로 인해 고고한 영화 유산이 풍비박산이
난 상태고 현재엔 해외 블럭버스터의 촬영 장소 정도로 몰락한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도 그리스의
테살로니키 필름 페스티벌등을 통해 소개되는 그들의 영화들은 결코 무시당하거나 저평가되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 그리고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카와세 나오미의 [殯の森/모가리의 숲]도 무척... 보고 싶네요.)
주말에 본 나에 카란필 감독의 [Filantropica/박애]는, 헐리웃 영화들이 영화 산업을 짖뭉게어 버리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얼마나 끔직한 공포 영화에 가까운 것인지를 잘 알려주는 영화 중 한 편입니다.
물론 주말에 본 포루트갈의 범죄물 [Os Imortais/불사조들](2003)이나 [Filantropica]같은 영화들은
분명 장르적 외피는 범죄물과 블랙 코미디로 단번에 대답할 수 있을 만큼 정형적인 구조를 보여줍니다만
문제는 장르적 외피가 아니라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와 플롯의 문제라고 하겠어요.
이들 영화들은 하나같이 그야말로 '서사적'입니다.
수많은 촬영 기법과 기존의 내러티브를 쳐부수는 구조적 변혁은 조금도 보여주지 않아요.
그 대신 이 영화들은 카메라의 진정성을 획득합니다.
카메라가 캐릭터와 실제로 교감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도대체 언제 경험해본 것인지
무척... 아련하네요. [Filantropica]에선 그러한 영상이 느껴집니다.
현실의 궁핍에 좌절한 지식인인 고등학교 교사인 주인공 '오비두'는 도무지 통제가 안되는 학생들과
성공의 희망이라곤 보이지도 않는 작가에 대한 비전으로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캐릭터입니다.
잔소리꾼인 부모님에게 얹혀 살고 있는 그는 우연히 학교의 문제아인 한 학생의 누나를 면담하면서
현실을 쳐부수고 뛰쳐나가고픈 욕망을 느끼게 됩니다. 즉... 돈을 벌어 그녀의 환심을 사고, 결국은
그녀와 섹스를 하고 싶은 거지요. 그녀는 이미 TV 광고에도 출연한 모델이구요.
그런 여성과의 데이트라니, 멋진 차, 좋은 음식, 멋진 집...은 기본적으로 마련해야겠지요.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어지간한 멋진 식당에서 식사 한끼를 해도 그의 월급의 반이 되어버리는
박봉의 현실이 문제라는 거지요.
그런 그에게 한줄기 구원의 빛이 찾아 듭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인 오비두가 끝없이 물질적인 욕망을 위해 달려 나가는 왁짜지껄한 코미디를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비두의 이런 코미디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호탕하게 웃어 버릴 수
없는 씁쓸함을 계속 흘리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이건 한 개인의 성공을 갈망한 스토리라고 볼 수도 있지만, 테살로니키 필름 페스티벌
에서 감독이 유럽의 영화 시스템이 자국의 영화들을 전혀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일갈로 미루어보면
단물을 위해 모든 걸 내던지고 망치는 자국과 유럽 영화 시장에 대한 은유적인 비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여기 등장한 인물들을 영화 산업의 하나하나의 개별 요인으로 대치해보면, 제법 재미난
그림이 그려집니다.
저 멋진 음식과 포르쉐 카브리오레의 영상 뒤에 펼쳐지는 구걸하는 거지들과 거리의 부랑자들의
표현은 너무 진득해서 그 기괴하게 웃긴 장면에서조차 입가의 웃음이 싹... 멈추게 된답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the Man without Past]에서 보여준 선진국 핀란드의 슬램가의 모습들보다도
더욱 직설적이고 처연하며, 냉정한 시선입니다.
오비두가 이 모든 상황에서 헤쳐 나오는 것은 단 한가지 각성이었습니다.
그 각성이란 자신에 대한 반성도 아니고 거창한 이타성도 아닙니다.
그저 자기 자신의 처지를 확실하게 인식하고 각성하는 것이죠.
물론 그래봐야 그는 또다시 이용하는 자에게 다른 '방법'으로 이용당하기 시작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말입니다.
**
주인공 오비두 역을 맡았던 Mircea Diaconu의 연기는 정말... 일품입니다.
소시민적인 회한과 일탈을 너무나 잘 표현하더군요. 송강호씨의 연기가 생각났어요.
물론 마스크의 이미지는 너무 다르지만.
***
루마니아...하면 무조건 따라붙는 차우세스크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습니다. -_-;;;
영화 속에서도 차우세스크는 딱... 한 번 언급됩니다.
아직도 루마니아는 암울한 건 사실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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