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 인연이 되어 알고 지내던 김현기 대표가 을지로에 선술집 스탠딩바 '전기' @standingbar_denki 를 오픈하셨다.
https://www.instagram.com/standingbar_denki/
재작년 일본 여행을 함께 갈 기회가 있었으나 내 사정으로 나만 빠진 적이 있는데 그 때문에 실제로 뵙긴 처음이었다.
일본과 이태리등의 선술집(말 그대로 좌석없는 스탠딩바)을 격하게 애정하여 수 년간 다녀오다가 본인이 직접 을지로에 스탠딩바를 오픈한 것.
입구에서 반기는 '전기 電氣'란 한자의 간판이 정말 눈에 확 띄는데,
일본 스테인글래스 작가에게 직접 부탁해서 받은 디자인.
내부에 벽등도 함께 디자인해주셨던데 실제로 보면 무척... 예쁘다.
굳이 업장명이 '전기'인 이유는, 일본에 전기가 처음 도입된 후 '전기'가 최신 기술이라는 이유로 온갖 곳에 '전기'란 말을 갖다 붙이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곳 '스탠딩전기'에서 서비스로 내주는 개업주인 덴키부란 (전기 브랜디) 역시 그런 의미로 실제 일본에서 오래전 내던, 조악한 브랜디라고.
오픈한 지 고작 일주일인데 손님이 꽤 있었다.
하지만 손님이 있는 만큼 들어오자마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곳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손님들이 바로 나가는 경우도 많이 봤다.
아무래도 선술집이 죄다 사라진 상황에 앉지도 못하고 서서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는다는 걸 어색해하거나 이해못하는 분들도 많겠지.
하지만,
잠깐 들러서 하이볼 한잔과 안주 하나 정도 시켜서 기분좋게 하루를 마무리하거나,
친구 둘셋과 들러 이 집의 정말 기가막힌 요리들을 하나씩 시켜서 술과 함께 마시기엔 정말 딱 좋은 공간이다.
대단히 개인주의적이라고 얘기하는 일본도 막상 술집에선 모르는 사람끼리 쉽게 친구가 되곤하는데 이곳에서도 어느 정도의 룰만 지킨다면 서서 즐긴다는 친밀감 때문에 그런 경험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음악은 일본 시티팝부터 오래된,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나라 음악까지 다양하게 나온다.
음악도 꽤 맘에 들어서 음악 들으며 마시는 재미가 있는 곳.
서서 마시고, 서서 음식을 먹는다는 경험이 생경하다고 생각되겠지만,
한 번 즐겨보시라.
나같아도 이날 쇼룸 근무를 한 뒤 을지로까지 가서 몹시 피곤한 상태였지만 시원한 하이볼과 생각 이상의 놀라운 음식들을 함께 먹으면서 피곤을 쉽게 잊었으니.
내부 구조는 1자로 쭉 이어진 'ㄷ'자가 아니라 한쪽은 살짝 꺾여 구획이 나뉜 느낌을 준다.
주방은 매우 낮게 배치되어있다.
누구나 주방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구조.
음식 얘기하면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김현기 대표와 두 명의 스태프가 이루는 팀웍은 일주일 된 업장이 맞나 싶을 정도로 능숙하다.
한달간 합을 맞췄다고 하시던데 그 노력이 그대로 느껴진다.
단체 손님들이 함께 한 잔 할 수 있는 따로 떨어진 스탠딩 구역도 있어서 공간을 무척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태리에서 구입했다는 코카콜라 빈티지.
그냥 전시용이 아니라 실제 사용 중인 플레이트.
이제부터 음식.
나와 와이프는 가쿠 하이볼과 마르스 하이볼.
일본에서 나오는 하이볼이 음료처럼 가볍게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연하게 나온다면,
우리나라의 하이볼은 진한 편이다.
하지만 스탠딩전기에서 내는 하이볼은 가볍게 시원하게 한 잔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연하게 하이볼을 낸다.
나같은 사람에겐 이런 하이볼이 훨씬 부담이 없고.
튤립 닭튀김 2개. (1개씩 판매)
이 메뉴만 약간... 가격이 높은 듯한 감이 있지만,
아주 질좋은 닭고기와 유자소스, 그리고 저 모양내느라 스태프가 고생한 걸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맛도 훌륭하다.
아주 익숙한 닭튀김의 맛과 로칸다 몽로 닭튀김의 중간쯤에 위치한 맛.
누구나 기분좋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맛.
광어 셰비체
기가막히구나.
이 정도의 셰비체를 내는 선술집이라니.
고수와 함께 먹으면 기가막히다.
아우... 침고여.
또떼야키.
오사카의 명물 스지 된장조림을 한국식으로 재해석.
스지 요리라면 로칸다몽로의 스지찜이 기가막혔지.
그런데 스탠딩바전기의 또떼야키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 생마늘을 살짝 올리고 겨자소스를 올려 먹으면 그 맛이 더 풍성해진다.
술안주로 이만한게 없을 듯.
멘보샤.
여지껏 중식당에서 먹어본 멘보샤와 그 맛이 다소 다르다.
스탠딩바전기의 멘보샤는 프랑스의 끄넬 (Quenelle)과 비슷한 느낌이다.
새우소가 완자처럼 정말 부드러운데 진진이나 연남동의 중식당에서 내는 멘보샤 소와는 무척 그 느낌이 다르다.
꼭 드셔보시길.
아주 맛있게 먹었다.
크기도 아주 좋고.
그리고...
정말 가장 인상적이었던 메뉴는 마파두부.
내가 한국에서 천진에서 먹었던 마파두부보다 더 맛있는 마파두부를 먹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가 한국의 중식당에서 먹던 약간 달달하고 향신료 향이 덜한 마파두부와는 완전히 다른, 한 입 입에 넣자마자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뜰 수 밖에 없는 마파두부를 이곳에서,
선술집, 스탠딩바를 표방하는 곳에서 경험하게 될 줄은 몰랐다.
기가막히구나.
김현기 대표께서 한 번 맛보라고 주신 메뉴 1.
30개월 된 파르미지아노 치즈와 크리스틴 페베흐(한국에선 페흐베흐) 잼 조합이었는데 그 가격, 말도 안되는 30개월된 파르미지아노 치즈와 Christine Ferber 잼의 조합은 정말 어마어마하더라.
정식 메뉴도 아니고, 설령 정식 메뉴가 되더라도 가격이 어마어마할 것이라 이렇게 내주셔서 감사할 뿐이지만,
아마도 앞으로도 종종 생각이 날 것 같아.
일반적으로 Christine Ferber 잼은 대단히 묽은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이 잼은 사과에 초콜릿이 들어가 페이스트같은 느낌이 있다.
김현기 대표께서 한 번 맛보라고 주신 메뉴 2.
내주신 메뉴는 흔히 볼 수 있는, 바게트에 치즈 얹고 오븐에 구운 메뉴같아 보이지만 그 맛은 흔하지 않더라.
그뤼에르 치즈의 고소함과 적당한 토핑이 한 입 먹으면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는 흐뭇한 기분을 선사한다.
한 번 들러보시라.
술꾼들에겐 성지가 될 수 있는 집.
서서 먹고 마신다고 마냥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니 이런 분위기를 즐겨보셔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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