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다.
일본은 어떻게 메이지 유신 이후 고작 40년여 년만에 제국주의 열강들과 어깨를 견줄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그 성장의 방향이 결코 옳다 생각하지 않지만 어떻게 그렇게 빨리 서양의 문물을 체화하여 발전할 수 있었는지는 무척 궁금했다.
메이지 유신만으로 시대적 개혁의 열망이 응집되어 폭발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또 궁금했다.
일본인들이 서구 열강에게 가졌던 애증의 심리라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 비롯된 것인지.
단지 항구 앞에서 무력 시위를 하던 열강의 군함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들도 그러한 힘을 갖고 싶어하는 통상적인 심리... 그것만으로 지금과 같은 깊은 유럽에의 동경과 경멸의 감정이 내려오고 있는걸까...?

누구나 한번쯤은 궁금했을 법한 이런 의문에 대해 우리가 학창시절에 접했던 교과서는 전혀 가르쳐주지 않았다.
우리 역사 교과서는 사건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열거'하고 암기하도록 유도하지 결코 역사의 인과관계에 대해 심도있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러니 역사가 고루하고 따분해질 수 밖에.
물론 나 역시 궁금하기만 했지 스스로라도 찾아보질 않았다.
마음 한쪽에서 궁금했을 뿐이지 조금만 뒤져보면 나오는 일본 역사에 대해 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지.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났다. 너무 늦게 만난거지.
세미콜론에서 한국 출간한, 그 유명한 만화가-「고독한 미식가」로 유명한- 다니구치 지로가 그림을 그리고 세키카와 나쓰오가 글을 쓴 「도련님의 시대」를.

 

 

 

 

전 5권이다.

 

 

 

 

 

 

 

 

표지의 질, 인쇄 질 모두 양호하다.
무척 신경쓴 흔적이 느껴진다.


 

 

 

 

 

 

안중근, 소세키, 이쥬인의 조우.

 

 

 

 

 

 

 

 

하루코와 이쥬인.



이 책은 일본의 유명한 문호 나쓰메 소세키를 비롯, 격동의 시기에 시대와 호흡하고 고민하며, 혹은 쓰러져간 실존 인물들을 통해 사회의 철학, 경제, 시스템이 격변하는 근대 일본의 모습을 매우 충실히 고증하고 있으며 등장인물의 작은 에피소드들을 자주 소개하여 이 작은 인연들이 결국 일본 근현대를 이룩한 주춧돌이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화혼양재(和魂洋才 -일본의 전통을 지키되 서양의 기술을 좇는다)라는 가치가 시대적 정신이 되어 서구의 문물이 물밀듯 들어오고 열강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성장 가치가 최우선이었던 시기에 조금씩 자각하기 시작한 민주의 가치, 평등의 가치를 위해 싸웠던 이들, 그리고 이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허무함을 느낀 일본 지식인들의 좌절이 이 책 다섯권에 절절하게 녹아들어있다.
책의 제목은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에서 빌어왔지만 이 시대를 살았던 '도련님'들의 고뇌를 통해 일본의 근대사를 이토록 가깝게 다가가 조망해볼 수 있었다는 점 자체가 난 무척 놀라웠다.
미담도, 과장의 흔적도 그닥 느껴지지 않는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따라가다보면 그당시 일본이 어떻게 단시간 내에 그렇게 급속히 근대화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상에 대한 논쟁과 양심적 지식인들이 어떤 이상을 꿈꿨고, 어떻게 그 이상이 좌절되며 종말을 고했는지를 보여준다. 각양각색의 지식인들이 서구문명에 대해 느꼈던 동경과 공포심,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 각지로 선진 문물을 시찰하기 위해 보내진 수많은 지식인과 관료들...
그 이야기 속에서 비슷한 시대,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던 그 시대의 일본과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될 수 밖에 없더라.

단순히,
일본의 근대사를 역사적 인물들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는 학문적인 의미만으로 이 다섯권의 책을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브레이크없는 기관차처럼 서구 열강과의 경쟁을 통해 일본이라는 기관차를 폭주시키려는 위정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며, 이 길의 끝에서 일본이 얼마나 허황된 결과를 맞이할 것인지를 예감하며 그러한 시대상에 좌절하여 하루하루를 포기하듯 살았던 일본의 대표적 시인 다쿠보쿠의 삶을 조명한 3부, 이에 저항하는 삶을 택했던 고토쿠, 간노등이 등장하는 4부등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제국주의의 속살을 생각보다 더 깊이 보여준다.
그 공허함과 허무함이 그대로 내게 전해져오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로 말이다.
방관적인 지식인들, 염세적인 지식인, 그리고 시대의 모순을 깨닫고 세상을 바꿔보려고 했지만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지식인들...
이러한 여러 인물들의 삶과 역사적 관계를 나열하면서도 이토록 유려하게 흐름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은 세키카와 나쓰오의 글이 그만큼 훌륭하다는 의미이며, 다니구치 지로는 가히 병적이라고 할 만큼 세밀한 고증 묘사를 통해 이 책을 완성했다.
가히... 놀라운 책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당시의 우리 역사에 대해 다시 곱씹게 된다.
당혹스러운 열패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역사라는 건 이 책을 읽으면서도 알 수 있듯이 적극적으로 철학하고 고민하며, 실천하는 이들의 편이다.
내가 '도련님의 시대'를 읽으면서 절감하는 것은, 비록 그 시대의 양심이 탄압받고, 좌절되지만 결국 지금의 근간을 이루게 한 것은 바로 그러한 수많은 이상과 좌절 덕분이라는 사실이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학문적으로도 몰락의 징조가 뚜렷한 현재 우리 나라의 상황을 근심스럽게 바라보게되면, 근대 서구 열강과 일제에 의해 농락당하던, 나쓰메 소세키가 살아있을 그 시절의 극동 지형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고작 100여년 전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아직까지도 그 상흔의 반의 반의 반도 덮지 못한 우리가 또다시 미련한 위정자와 게으른 지식인들과 나를 포함한 무지한 국민들로 인해 비슷한 비극을 겪는다면 그때 이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
이 책은 일본의 근대사를 몰라도 큰 무리없이 읽을 수 없다.
다만, 4권에 이르면 사쓰마, 조슈 번과 조정, 막부와의 관계 정도는 조금 알아두는 것이 이해에 훨씬 도움이 된다.
사전 지식없이 불쑥 '조슈, 사쓰마 사람들은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다' 이런 글을 읽게 되면 맥락을 이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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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에 대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길지 않지만 무척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일본 사회주의 운동의 아버지인 고토쿠 슈스이의 에피소드에서도 안중근 의사의 이름이 나온다.
익히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고토쿠 슈스이는 안중근 의사를 지사로 부르며 그를 칭송하는 시를 짓기도 했다.
다쿠보쿠의 에피소드, 그리고 고토쿠 슈스이의 이야기는 먹먹한 감정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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