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지치게 덥더니만.
어젯 저녁부터 선선한 사람이 불더니 비가 내렸다.
장마란다.
딱... 피해가 없을 만큼만 내렸음 좋겠다. 엄청 바보같이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조금 선선한 바람이 부니 기분이 다 개운하다.

회사가 워낙 시골에 있어서인지 보기 힘든 광경을 종종 보게 된다.
얼마전엔 인근 동네 아주머니들께서 회사로 오셔서 직접 제품을 구입하기로 계약하시고 가셨는데, 
그 이튿날 뒤에 그 중 한 분이 남편과 오셔서 당신 댁에서 직접 재배한 오이와 호박을 엄청나게... 주고 가셨다. 

다 꼬부러진 오이. 완전 유기농.

사무실에 앉아서 울 실장님과 한참을 얘기하셨는데 구제역때 겪었던 일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되는 힘든 상황들에 대해 정말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퇴근하고 집에 가려면 낮은 산을 하나 넘어야하는데 왕복2차선 밖에 안되는 도로에 가로등도 없는 터라 
어두컴컴한 밤이면 창문열고 달리는 기분이 제법 괜찮다.
물론... 가끔 달려드는 벌레들과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보행자때문에 무척 조심해야하긴 하지만.
현장은 거의 매일 야근을 하지만 사무실은 야근의 개념이 없다.
다들 정시에 칼같이 튀어나가버리니 대부분 혼자 남게 되는데 현장도 야근을 하지 않을 때는 
사무실 창밖이 완전... 칠흙같은 어둠이다.

가로등이 전혀 없어서인데, 사무실 옆에 켤 수 있는 조명이 있다는 걸 난 얼마 전에서야 알았다.
안그래도 회사 주변을 떠도는 황구 한 마리가 종종 사람을 공격한다고, 세번이나 물렸다는 우체부 아저씨가 
조심하길 신신당부하셨는데, 며칠 전엔 야근을 끝내고 사무실 앞에 주차한 차로 걸어가는데 
그 황구가 내 뒤를 천천히 쫓아오는 걸 알고 사실 제법 식겁했었다.
가방을 꽉 잡고 몸을 돌려 그 황구쪽으로 한 뒤 잠시 서있다가 다시 걷는데 이 놈이 또 터벅터벅 고개를 숙이고 다가오는게 아닌가.
자칫 곤란할 거 같아서 신경이 곤두섰는데 그때... 울 회사의 정말... 정신없이 까부는 초아가 등장, 
그 황구의 정신을 쏙 빼놓는 바람에 안심하고 차에 오르곤 돌아왔다.

어휴... 정말... 무슨 쿠조... 찍는 것도 아니고.



***

현장엔 외국인 근로자들도 8명 정도 있다.
숙식은 1층의 기숙사에서 하는데... 다시 한번 느끼지만 이들은 정말 순박하고 착하다. 하나같이.
7명이 베트남인, 1명은 태국인.

문제는 이들이 영어를 하지 못해서 의사소통이 쉽지는 않다는거. 하지만 일을 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의사소통은 아무 무리없이 되는 듯.
다만...-_-;;;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자신들이 사용하는 전용 화장실과 부엌은 너무 더럽게 방치해둔다.-_-;;;
아... 정말... 



****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것만 믿고, 그게 아니면 죽어도 이해못하는 사람, 자신이 느끼지 못하면 
결코 다른 사람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답답한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주변을 보면 내 스스로 의아했던 부분들에 대해 납득하게 된다. '아... 그래서... 이런 거였군.'




*****

어제 이곳의 장마비는 정말...
세상 모든 걸 다 쓸어가버릴 듯이 내리더라.
내리 꽂듯 퍼붓는 비를 창문으로 계속... 바라다보니 마음이 왠지 싱숭생숭해진다.




******

이 회사.
다녀본 회사 중 가장 시골스럽고(물론 공장은 엄청... 크지만) 나를 빼면 근속년수가 죄다 7년 이상인, 
하지만 서로가 전혀... 살갑지 않고 사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 아무튼 묘한 회사다.
사장님은 너무 내게 압박을 가하지 않아 내가 일일이 보고할 걸 다 챙겨 찾아들어가서 보고하고...-_-;;;
사무실은 나를 빼면 노곤한 분위기 그 자체.
그런데 묘하게 이 회사가 맘에 든다. 이제 한달 보름이 되었는데, 다들 알 듯 새로운 회사 생활 한달이면 
대략 회사 분위기가 어떤지 정도는 다 알지 않나. 여지껏 그랬고.

문제는...
내가 이 회사에 얼마나 다닐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다.
터무니없는 고액연봉자(이 회사의 기준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하는 위치, 사실 활용할 수 없는 
어시스턴트(그래서 지난 주에 어시스턴트 1명은 그만뒀다. 그만두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사장님 조카인데다가 본인도 버거워했으니까)
날 스스로 압박하지 않으면 마냥 흘러갈 시간들.
그리고, 어지간해선 성과가 나오기 힘들어진 변해버린 시장환경.

다른 것보다 내가 건강하게 다닐 수 있기만을 바랄 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