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 Sono L'Amore/ I Am Love / 아이 앰 러브]
directed by Luca Guadagnino(루카 구아다니노)
Tilda Swinton, Flavio Parenti, Edordo Gabbriellini
2009 (한국 2011년 1월) / 120분 / 이탈리아
영화 이야기를 길게 하는 건 내 능력 밖의 일이어서 [Black Swan/블랙 스완]을 길게 쓸까,
이 영화를 조금 길게 쓸까 고민하다가 더 강렬한 여운을 남긴 이 영화를 조금만 더 길게 쓰기로 했다.
세상의 시작과 끝은 '사랑'이란다. 누구에서 들은 것도 아니고 내가 하는 말도 아니고,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배워왔던 정신적인 가치를 물질과 소유보다 중시해왔던 수많은 도덕률 속에서
막연하게나마 학습해왔던 바로 그 '사랑'이지만, 실상 우리가 삶을 살면서 세상의 모든 것인 '사랑'은
정작 걸리적거리거나 그에집착하는 이들을 '낙오자'처럼 만들기까지 한다.
그만큼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사랑'때문이란 말은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인생의 황혼에서 모든 걸 다 가진 채
이것도 모두가 다 허망하구나...라고 읊조리는 모습처럼 느껴진다.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가 이 영화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여길 법한
이탈리아 재벌가문의 며느리가 진정한 자유를 찾고자하는 사랑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그녀의 딸인 베타가
오빠인 에두에게 말했던 대사 중 하나인 '누군가 행복해진다면 또 다른 누군가는 불행해지는거야'라는 말을 통해
파렴치한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와지고, 사랑이 존재의 이유가 되는 세상에 대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지나치게 이데올로기를 영화 내용과 부합시키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엔 이 영화 속에 레키 가문을
둘러싼 M&A 과정에서의 인디언-어메리칸(등장인물의 주장대로)과의 에피소드를 감독이 아무 생각없이
배치했을 리는 만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부연하듯 레키 가문의 집으로 초대되어진 사업 인수자인 '인디언-어메리칸'의 말이 두번 반복되어 들려지는데
그 말은 'Capital is Democracy'였다.
예전에 한 번 자본주의가 결코 민주주의와 동의어가 아님을 얘기한 바 있는데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의
세상에 대한 의식이 어떠한지를 이 영화에선 자본이 곧 민주주의라는 말을 통해 드러내준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동의어가 되면서 경쟁의 구도에서 나와 타인의 행복이 공존할 수 없게 되고,
누군가 막대한 행복을 누리면 엄청난 수의 다수가 불행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이 영화에선 결코 가볍게 얘기하지 않고,
그렇다고해서 천박한 예를 들지도 않는다.
이 슬픈 새로운 부조리한 생태계를 감독은 서민들의 삶에서 이끌어내기보다는 기득권자로서 동등한 위치에 있는
아들 에두와 딸 베타의 번민과 괴로움을 통해 보여준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왔던 아들 에두가 집사이자 유모이기도 한 이다의 품 속에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장면은 단순히 할아버지의 가업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다는
슬픔때문이 아니라 레키 가문이 2차 대전 유대인들의 피를 밟고 일어선 가문에 지나지 않았고,
중시했던 전통의 가치는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 한낮 부질없음을 고발하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레키 가문은 방직 산업을 통해 거물 재벌로 일어섰지만 M&A 과정에서의 사업계획대로라면
제조업에서 금융회사로의 리포지셔닝이 될 것이고, 이러한 시류에 맞는 변화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듯 신자유주의 속에서
무에서 유를 만들어대는 사기와도 같은 금융 산업의 한 중심에 전통적인 제조업을 통해 번성해온
레키 가문 역시 고민없이 이를 합리화하며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에두는 동생 베타를 만나 이 사실을 말했고, 베타는 '우리는 더 부자가 되겠네'라는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누군가 행복해지면 그 누군가는 불행해지지'란 말을 한다.
결국 에두와 베타의 존재는 양심을 가진 이상적 기득권자의 최소한의 자성이자 성찰인 동시에
그들이 더이상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역설을 제공한다.
에두의 탈권력적인 성격은 결국 그의 엄마인 엠마와 사랑에 빠지는 친구이자 유능한 쉐프인 안토니오와의
교감의 여지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고, 사랑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가진 베타는 아름다움을 경외하는 시선을 통해
가문에 구애받지 않으려고 하지 않나.
하지만 세상의 법칙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이렇게 변방에 머물러버린 에두와 베타가 아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슬프다. 한없이 빛나는 삶에 대한 경외가 깃들어 있지만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혹은 이제 더이상 존재하기 힘든 세상을 향한 강렬한 열망이 담겨 있어서 난 슬펐다.
인간이 사랑함으로써 존재한다는 제목과 달리, 에두와 베타가 바라본 세상은 결국 자본이 인간을 규정하고
인간 관계를 규정하기 때문에 그들은 괴로왔던 것이고, 사랑이 없는 세상은 자신과 다른 사고와 철학을
유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단란해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못한
레키 가문의 속살을 들여다보면서 슬픈 마음을 갖게 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와중에 결국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진심으로 눈을 뜨게 된 엄마인 엠마의 항거와도 같은
전율적인 후반부는 아주 깊고 깊은 여운을 남겨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메시지를 담아내는 내러티브를 구현하는 영화론적인 측면에서도 이 영화는 곱씹을 여지가 많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이 영화 속에는 수많은 위대한 선배 감독들의 흔적이 베어 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루치오 비스콘티를 비롯,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물론 더글라스 써크와 히치콕의 흔적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대선배들의 영화론적 자양분을 마음껏 흡수하면서도 이 영화가 대저택을 표현하는 방식에서는
비스콘티의 걸작인 [iL Gattopardo/Leopard/레오파드](이 영화에 등장하는 알랭들롱의 이름이 탄크레디다.
주인공 아버지의 이름과 동일하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거다)와는 분명한 차이를 뒀다.
초반부 레키 가문의 단란해보이지만 그 속에 목을 죄는 듯한 팽팽한 분위기를 감지하게끔 연출되는 식사 장면은 분명
비스콘티의 초기작(도대체 어떤 영화인지 기억이 안난다. 내 기억에 따르면 [레오파드]는 아니다)을 연상시키지만
그 외의 저택 내의 장면들은 인물의 원근과 빛의 대조 그리고 정적인 프레임과 풀샷을 사용한
[레오파드]와 달리 [아이 앰 러브]에선 끝없이 엠마를 프레임 안에 닫힌 공간으로 가둔다는 차이가 있다.
엠마를 피사체로 한 카메라는 knee-level은 물론이거니와 부감의 경우도 절대 부감은 없이 eye-view정도로 처리된다.
이를 통해 엠마가 있는 공간은 대저택이라는 설정만 있을 뿐 그녀는 대부분 프레임 안에 갇힌 채 표현되는 느낌을 준다.
이렇게 갇힌 프레임에서 탈출하게 되는 계기는 결국 아들 에두의 친구이자 재능있는 쉐프인 안토니오의 음식인 라따뚜이를 통해서이고,
러시아에서 이태리로 오게 되어 고향에 대한 귀소열망이 강했던 그녀가 마침 산레모에 있는 안토니오를 찾아 갔을 때
산레모에 위치한 그리스 정교회를 보게 된 것도 무척 의미심장하다.
이후엔 히치콕의 스릴링 씬들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지속되고 안토니오를 따라간 깊은 산 속에서의 장면들은
원초적인 자연과의 오르가즘을 극대화시킨다 .
그리고 한없이 갇혀있던 엠마는 결국 닫힌 프레임에서 탈출한다.
조금씩 사랑을 향한 열망이, 사랑을 하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는 열망이 강해져갈 무렵
그녀가 침대에 누워서 바라보고 있던 TV 속에서 나왔던 영화는 바로 탐 행크스와 덴젤 워싱턴이 출연했던 [필라델피아]인데,
그녀가 보고 있던 장면은 바로 탐 행크스가 격정에 차 마리아 칼라스의 'La Mamma Morta'를 들으며
삶에 대한 경도의 숙연함을 느끼게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아리아의 마지막 탐 행크스가 따라 내뱉는 가사가 바로 영화의 제목인 'Io Sono L'Amore (I Am Love)'이고.
(어젯밤... 이 사실을 확인키위해 [필라델피아]의 이 장면을 aipharos님과 다시 봤다.-_-;;;
그런데 오늘 글을 쓰면서 위키피디아를 읽어보니 제목에 대한 내용이 다 나오더만... 괜한 뻘짓을 했다)
얄궃게도 이러한 장면을 동의도 구하지 않은채 무심코 채널을 돌려 버리는 것이 그녀의 남편 탄크레디라는 점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선배들의 자양분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화적 메시지, 그리고 관객에게 주지하고자 하는
강렬한 감독의 철학을 드라마적인 힘으로 전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71년생인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는 이 영화 속에서 전통적인 방식을 통해
전통적인 가치와 사상과 도덕을 거부하고 기득권자들만의 바운더리를 형성하여 인간의 기본적인 '사랑'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현재의 세상에 대해 엠마와 에두, 베타를 통해 분명히 메시지를 전달한다.
물론 그 메시지는 마냥 행복한 것이 아니다.
마지막 John Adams의 음악이 절정으로 치달아버리고 이다와 엠마의 격한 포옹에서 가슴이 울컥했던 나는
그녀가 사라진 프레임 속에서 마냥 시원한 해방감만을 느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낀 분들도 정말 많지 않을까?
*
정말 중요한 건, 이 영화는 루치오 비스콘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히치콕, 더글라스 써크등은 몰라도
아무 상관없이 가슴에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충분히 느끼고 볼 수 있는 영화라는 것.
이점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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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가 엠마에게 주는 작품은 그 유명한 정물/풍경화의 대가 조르지오 모란디(Giorgio Morandi)의 정물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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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의 음식은 이탈리아의 잘 나가는 쉐프 중 한 명인 카를로 크라코(Carlo Cracco)가 담당했다고.
그는 밀라노에서 Ristorante Cracco라는 음식점을 이끌고 있단다.
영화 도중에 토치를 이용해 에두와 엠마가 먹어보고 감격하는 음식은 'Insalata Russa'란 음식이다.
이게 그의 시그니쳐 음식 중 하나라고.
그의 사이트에 들러보시길.
http://www.ristorantecracco.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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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다 스윈튼의 이태리어 연기는 이탈리아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러시아 악센트가 들어간 이태리어.
그저 연기였기 때문에 했다지만 쉬운게 아니지.
그리고 그녀의 연기에 대해서는 나같은 것이 감히 이러쿵저러쿵할 수 없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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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레키 가문은 신자유주의가 썩을 대로 썩어 문드러진 나라 이탈리아라는 것이고, 인수합병이 논의되는 곳은 런던이다.
의미심장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