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세 감독의 [M]을 뒤늦게 봤습니다.
aipharos님이 영화관에서 보고 싶어했던 영화인데 어찌하다보니 그냥 놓쳤던 영화에요.
이명세 감독은 이번 [M] 개봉 이후 또다시 흥행 참패는 물론 [형사]에서 우호적이었던 평론가군에게조차
옹호받지 못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온 분들은 '내가 머리가 나쁜거야, 이 영화가 이상한거야?'라면서 불만을 토로했다고 하죠.

유난히 기승전결이라는 전통적인 서사구조에 목을 메는 일반적인 우리나라 영화관객들은 이렇듯
코끼리 꼬리 찾는 듯한 불친절한 방식에 대단히 평가가 인색합니다.
최근의 [I Am Legend/나는 전설이다]를 까는 이유 중 대부분이 결국, 주인공이 아무 것도 한 것없이
갑자기 죽었기...때문이라는 논리였죠.
주인공이 영화를 책임져주지 않는 구조에 우리 관객들은 분노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 중 상당수의 블로거들이 [D-War]를 옹호한 걸 보면 참... 아이러니하지요.
[D-War]엔 그들이 그토록 중시하는 서사구조가 없잖아요.
물론 역으로, [D-War]가 내러티브 자체가 부재했기 때문에 욕한다는데 그럼 [M]에는 내러티브가 있냐?
라고 물어볼 수도 있겠죠.

아무튼
이명세 감독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론 발표한 두 편의 영화가 모조리 흥행 참패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양새는 어찌보면 Radiohead와 비슷해보이기도 해요.
[the Bends]로 극찬을 받고 [OK Computer]로 록씬을 평정했던 이 영국 그룹은 이후 [Kid A], [Amnesiac],
[Hail to the Thief]를 발표합니다. 이 와중엔 리더격인 Thom Yorke의 솔로 음반도 있었구요.
지금와서 얘기지만 사실 [OK Computer]는 걸작임이 분명하지만 가장 Radiohead스럽지 않은 음반이었습니다.
리프와 몽환적인 공간감이 팍~ 줄어들고 대신 정갈하고 메마른 서정의 운율이 자리했죠.
엄밀히 말하면 가장 Radiohead의 장기가 잘 드러난 음반은 [Kid A]였어요.
[Amnesiac] 이후로 많은 이들이 '이젠 Radiohead를 안듣겠다'라고 말하기도 했고, 이후의 음반들이 지나치게
개인적인 음반이 아니냐라고 볼멘 소리를 했지요.
그건 어찌보면 정점에 오른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일 수도 있었구요.(전적으로 이를 부정하지만요)

이명세 감독의 [형사]도 그렇습니다.
미국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사실상 허비하고 돌아온 이명세 감독은 야심차게 이 영화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 결과물은 세간의 평을 떠나 놀라왔습니다.
인물들이 미장센과 이루어내는 호흡은 그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 냈어요.
마치, '스토리? 웃기지마라. 영화는 움직이는 그림책이 아냐'라고 까대는 듯한 이 명세 감독의 고집이 그대로
드러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M]을 내놓았죠.
전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대단히 당혹스러웠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부딫히는 사랑의 감정은 놀라우리만치 유치하고, 하다못해 키치적이기까지 합니다.
도무지 감정이입이 되지 않죠. 스스로 브레히트의 소외효과를 되뇌게 될 정도니까요.
게다가 영화의 미장센은 죄다 어디서 모조리 본 듯한 이미지들입니다.
Lupin이라는 Bar는 소노 시온 감독의 공간에서 볼 법한 이미지, [Paprika]에서의 Bar... 그리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님의 [Shining]에서와 같은 느낌입니다.
골목골목을 누비는 장면도 30년대 필름 느와르와 홍콩 영화의 향수가 물씬 젖어 있구요.
창작의 수렁에서 허우적대는 환경과 몇몇 장면은 코엔 형제의 [Barton Fink]를 연상케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너무너무 당혹스러었던 것은...
제가 결국 이들의 이 말도 안되는, 배우들조차 스스로 갈피를 못잡는 듯한(공효진빼고) 당연한 결과의 연기에
제가 설득당했다는 겁니다.
전 미미와 민우의 로맨스가 애절하게 느껴져 버렸거든요. 정말입니다

 

이러니 저 스스로 당혹스러운 거에요.
누가 봐도 그날그날 촬영 때 콘티 죄다 무시하고 다시 짜고 슛들어간 게 보이는데 이 노장 감독의 변덕이
그대로 반영된 영상에서 제가 일관된 애절한 감정의 흐름을 느꼈다는 것 자체가 당혹스러웠습니다.

과도하게 계산된 미장센, 과도한 필터링 뭐하나 자연스러운 부분이 없는 이 영화는 다시 말해서,
가장 이명세 감독다운 영화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강동원은 여전히 멋지지만 이 영화에선 그런 모습은 찾기 힘듭니다.
그는 배우가 되어 가고 있어요.

대중과의 엇갈림...

그리고 그게 제겐 적절히 잘 먹혔다고 보여지는 거죠.
전 영화를 보면서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이 감독은 정말... 이기적이고 고집불통이구나'
이런 생각이 말이죠. ㅎㅎ

 

 

 

고집불통 이명세 감독의 모습이 보이시지요?
그런 모습이 영상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계산된 조명과 카메라는 철저하게 인체의 움직임, 선무같은 움직임의 흐름에 주시합니다.
흐름이 정지한 프레임이 이곳엔 거의 단 한번도 없이, 끝없이 미려하게 움직입니다.
때로는 수평적으로, 폐소의 느낌에선 수직적으로.
물을 잔뜩 빼고 포토샵에서 커브값을 먹인 듯한 이 몽환의 이미지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시각적 희열을
느끼게 해줍니다.

게다가 이 정도로 극단적인 인물간의 콘트라스트는 잉마르 베리먼 감독의 [Persona] 이후 가장 두드러지지
않나 싶네요. (물론 [형사]에서도 시도됐지만)
이런 콘트라스트는 연극적인 느낌까지 불러 옵니다.

언제나 친절하게 인물 설명까지 해대야 하는 영화들만 보면 그것도 지겹잖아요.
영화라는 매체가 항상 똑같이 그림책을 넘겨가듯 이야기를 넣고 프레임을 돌리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우린 '활동사진'의 태생적 본성으로서의 영화를 조금은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Radiohead의 2007년작 [In Rainbows]

Radiohead는 2007년 [In Rainbow]라는 최고의 음반을 발표합니다.
물론 저도 들었구요.
하지만 전 이 음반을 2007년 베스트 50 앨범에 올리지 않았고, 곡들도 베스트 싱글 100선에 한 곡도
올리지 않았습니다.
변명같지만 사실 더이상 Radiohead의 음반과 곡을 순위에 올리는 것은 제겐 무의미하다시피 하거든요.
그냥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의 나름의 최대한의 예우인 샘이죠.
어쨌든 자신의 실험을 거쳐 자신들의 디스코그라피에 빛나는 음반을 빚어 낸 Radiohead처럼,
이명세 감독도 차기작에선 자신의 극한의 실험과 대중의 접점을 어느 정도 일궈내는 결과물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
[M]에서도 어느 정도의 대중적 타협이 나오긴 합니다.
그건 바로 민우가 거울 앞에 서서 위를 쳐다보는 장면이 나오는 뒷부분이죠.(거의 끝날 무렵)
이 뒷부분은 사족에 불과합니다.

이 장면으로 엔딩을 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신화의 민우와 [M]의 민우는... 너무 큰 차이가 있군요. ㅎㅎㅎ
전 강동원을 오래 전부터 상당히 기대해왔습니다.
그가 정말 그 자신만의 세련된 쿨가이로 나오는 영화에 보란 듯 한 번쯤은 출연했으면 합니다.
[늑대의 유혹]은 그냥 소녀팬용이지 쿨한 건 아니였잖아요.

****
이 영화에서 이연희는 정말 예쁩니다.
다른 말 다 필요없고... 정말 예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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