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을 이제야 봤습니다.
진작 봤어야하지만 그 무겁고 무거운 내용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차마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보고 나선 역시 힘이 하나도 없더군요.
보는 사람조차 지쳐버릴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자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정말 얘기하자고하면 끝도 없을 이 영화에 대한 얘기는 기약없이 미루고,
송강호란 배우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전도연의 연기는 놀랍습니다. 칸영화제에서 여주주연상을 타면서 알랭 들롱에게 손에 입맞춤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고도 넘친다고 느꼈어요. 감정의 폭발이 오버가 아닌 절규로 느껴지는 건 의외로 쉽지 않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흐느껴 운다고 되는게 아니잖아요.
놀라운 시나리오의 힘도 있지만, 이건 정말 전도연의 밀집되고 구애받지 않는 연기의 무정형성에서 비롯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그런데 전 오히려 송강호의 연기에 더더욱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는 정말 스크린을 어슬렁거립니다.
끝까지 신애(전도연)에게 구박받지만 종찬(송강호)은 그 곁에 어슬렁거립니다.
종찬의 캐릭터를 신애의 입을 빌어 '속물'이라고 정의하지만 이 영화에서 종찬은 정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살아있는 캐릭터입니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신애가 아들과 함께 종찬의 카센터로 개업인사를 갔을 때의 장면인데,
종찬은 함께 자리를 하자는 제안을 마다하고 아들과 총총걸음으로 사라지는 신애와 아들을 쫓아나가
아들을 부르며 '껌씹을래?'라고 건넵니다.
그 표정과 웃음은 감정이입등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차원이 아니었어요.
또, 신애가 유괴살해범을 대면하러 교도소에 들어갈 때 함께 간 교인들이 '신애씨 화이팅'을 외칠 때
살짝 쳐다보며 '헤'하고 한마디 내뱉는 장면이었어요.
전 그 장면에서 송강호라는 배우가 인간이야?라는 섬뜩함을 느꼈답니다.
그 장면에서 그만큼 잘 어울리는 반응도 없었을테지만 그런 외마디 한마디가 종찬이라는 캐릭터가 신애의
옆에 있는 모든 이유를 단번에 다 드러내 버리거든요.
뿐만 아니라 그가 스크린 밖에서 안으로 움직이는 모든 동선이 신애가 세상을 거부하는 방식임을 가감없이
표현해냅니다.
이토록 놀라운 조연(?)을 전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어요.

이동진씨가 [밀양]을 두고 '무시무시한 걸작'이라고 했는데, 전 이 표현을 '무시무시한 송강호'로 바꾸고 싶은 마음입니다.
송강호가 위대한 배우임은 익히 잘 알고 있지만, 비단 응축된 감정의 표현 뿐이 아니라 서사의 구조를
지탱하는 훌륭한 미장센으로서도 완벽한 배우라는 걸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어요.
생각해보면 영화라는 매체에서 필름 하나하나를 지탱하는 프레임이 생명력을 얻는 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송강호의 연기는 단순히 '연기같지 않아 놀랍다'의 차원이 아닙니다.
무언가 형언하기 애매한 수준을 이미 넘어선 사람의 그것 같아요.

제가 오버하는 게 아니냐라고 말씀하실 분이 계실 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제겐 송강호라는 배우가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송강호라는 배우를 갖고 있는 한국 영화는 갖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것이라는 생각까지 했어요.

그의 앞으로의 행보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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