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3의 시대도 아니고 이제 스트리밍의 시대.

음악이나 영화/애니메이션은 이제 더 이상 물리매체를 소유하는 대상이 아니다.

이런 시대에 이런 오래된 아재 경험을 올리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겐 여전히 물리매체를 받아 들었을 때의 경험이 고스란히 희열의 순간으로 남아있다.

사실 이 글은 오래 전 올린 적 있는데 수정해서 다시 한 번 올려봄.

 

80년대 후반~90년대 중반,

인터넷 쇼핑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 아마존도 discogs도 없었지.

국내에서 해외 음반을 구입하는 것은 상당한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해외 음반샵을 수소문하여 주문했어야 했다.

문제는 인터넷 시대가 아니다보니 해외 음반샵 정보를 얻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는거.

음반샵을 알아내도 그 음반샵에서 어떤 음반을 보유하고 있는지 적힌 카탈록을 입수해야 주문이 가능했다.

카탈록은 이곳저곳 거래를 하다보면 어찌 알았는지 막 보내주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론 돈을 주고 카탈록을 사야했다.

당시엔 페이팔 paypal 옵션은 없었으니 결제를 하려면 신용카드 번호를 전화나 팩스로 알려주든가 아니면 뱅크체크를 끊어 보내줘야했지.

 

그러니까,

해외음반샵을 수소문하여 카탈록을 받은 뒤,

order form을 만들어 fax로 보내면,

음반샵에서 invoice를 보내주는데

신용카드결제가 가능한 음반샵은 큰 문제 없이 결제가 진행되지만 신용카드 결제가 안되는 음반샵들은 뱅크체크, 그러니까 일종의 수표를 보내야했다.

보내준 invoice를 들고 은행에 가서 뱅크체크를 끊은 뒤 DHL등을 통해 보내줘야했지.

 

문제는 수표는 원칙적으로 특급배송 품목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document로 처리해서 보내야했는데 이 말인즉, 분실되어도 돌려받을 방법이 없었다는거.

당연히 난 내 방에 팩스를 놨다.

내 방 전화번호는 따로 놨었고.

한달에 내방 전화비용만 30만원 정도가 늘 나왔던 것 같아.

게다가 시차 때문에 내가 보낸 order form에 대한 답신이 대략 새벽 3시~5시 사이에 왔다.

당시 팩스는 대단히 시끄러운 기계여서 잠을 깨는 일이 빈번했지.

종종 대단히 희귀한 음반들이 나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땐 max bid.가격을 적어서 보내야했다.

이해못하시겠지만 그 당시 팩스 기계 가격은 100만원이 넘어갔다. 내 방에 있던 팩스도 그랬고.

 

이렇게 주문하고 결제했다고

모든 과정이 끝난 것이 아니다.

당시엔 해외에서 한 번에 최대 음반 6장

까지만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몇차례 순차적으로 주문을 나눠야했고,

 

   

최종적으로 세관을 무사히 통과해야했다.

대체적으로 음반은 문제없이 받았는데 일본 애니메이션 LD나 VHS는 종종 목동세관이나 인천세관에서 트집잡아 통관시켜주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한 번은 내가 진짜 열받아서 통관되지 않은 애니메이션을 다 발로 밟아 박살내고 온 적도 있었지. 정말... 엄청 짜증나는 기억들.

이유도 없어. 그냥 일본 애니라 안된대.

웃기는 건 DHL이나 FeDEX로 받으면 오케이.

왜인지 그 이유를 알게 됐지만 참 어이가 없는 기억들도 참 많다.

아무튼 이렇게 힘들게 음반을 구입하다보니 손님들 뒤통수 치기 바빴던 국내 중고음반샵에서 vinyl을 구입한 적은 별로 없다. CD는 많이 구입했지만.

해외 음반샵과 오래 거래하다보니 대단히 친해진 음반샵 쥔장들이 있었다.

영국의 vinyl tap의 토니와 새디, 뉴욕 METRO music의 Doug Larson등.

한국인 입양아를 키우던 한 음반샵 쥔장은 나중에 정말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왔고 내가 이틀 가이드 해주기도 했다.

다 오래된 옛 기억이지만 이런 경험들이 내가 음악을 즐기고 대하는 데 나름의 확고한 자세(?)를 구축하도록 해준 소중한 경험임엔 틀림이 없다.

+

사실 난 이 당시 책과 카탈록을 모두 버렸었다.

그런데 이렇게 조금이라도 카탈록이 남아있을 수 있었던 건 와이프가 일부러 챙겨서 정리해놨기 때문.

시간이 흐른 즈음 와이프에게 정말... 고마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