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 안보신 분들 절대! 읽지 마세요.

어느 영화든 내용을 알면 재미가 반감되는 법이지만 이 영화는 더.

 

 

 

 

 

 

 

 

 

 

성인이 된 아들과 딸이 있는 멀쩡한 네명의 가족이 모두 백수란다.

곱등이와 바퀴벌레가 득실대는 반지하에서 푼돈을 쥐어주는 아르바이트로 간신히 살아가고 있단다.

안타깝게도 소설이나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설정이 아니다.

공부를 하든 안하든 간신히 지옥같은 입시생활을 끝내고 나니 대학은 취직 준비학원으로 변모한 지 오래고,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 그 나이에 이미 삶의 변두리를 전전하게 된다.

그런데 어른들은 무책임하게 떠벌이지.

꿈을 가지라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안되는 것이 없다고.

영화 속 무능한 아빠로 등장하는 기택(송강호)은 그냥 하릴없이 집에서 밥을 축낸게 아닐 것이다.

나중에 등장하는 대사에 의하면 그는 발레파킹도 했었단다.

이들이 이렇게 살아가게 된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무언가 일을 할 꺼리가 없어서였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문득 Big Data의 'Put Me to Work' 가사가 생각나네.

내가 좀 상처받아도 상관없으니 일을 시켜달라는 그 가사가.

박사장 가족이 집을 비운 틈에 꿈같은 시간을 보내던 기택의 식구들이 절망적인 소동을 벌이고,

악천후로 캠핑이 취소되어 갑자기 돌아온 박사장 가족의 눈을 피해 몰래 빠져나온 기택의 가족들은 퍼붓는 비를 맞으며 아래로 아래로 하염없이 달리고 또 달린다.

그리고 그 곳에서 펼쳐진 홍수로 인한 생지옥.

누군가에겐 밤새 퍼붓던 비가 미세먼지를 날려준 고마운 비일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을 하룻밤만에 날려버릴 절망적인 비일 수도 있다.

내겐 16년 차이가 나는 동생이 있다.

동생이 세상에서 얘기하는 '그럴싸한 대기업'에 취직하기 전,

원룸에서 거주했었는데 그 당시에 내게 말한 바, 동생은 한 번도 그 집에서 식사를 해먹지 않았다고 했다.

난 그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작은 집은 아무리 공조후드가 있더라도 음식 냄새가 집에 가득 밸 수 밖에 없고 그럼 옷에도 음식 냄새가 배는 일이 잦다는 걸.

사람에게서 나는 '좋은 냄새'라는 건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의 환경을 대변하기 시작했다.

주방이 거실, 방과 완벽히 분리되고 드레스 룸이 따로 존재하며 향수와 리추얼 스프레이로 언제나 향긋한 향기를 갖춘다는거.

박사장은 자신의 공간(차, 집)에 스멀스멀 흘러들어온 기택의 냄새로 그를 판단한다.

그리고 그 지울 수 없는 냄새로 그어진 선을 기택은 결국 참지못하고 넘어버린다.

선을 넘지 않으면 된다고 박사장은 이야기한다.

겉으로 보기에 박사장은 젠틀하고, 그의 부인 연교(조여정)는 순진하고 착해보인다.

젠틀하고, 순진하고 착해보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정해놓은 선을 넘지 않는 한 유지되는 심성일 뿐이다.

매너 manner와 관계 relationship는 엄연히 다른 지점의 문제인데 우린 종종 manner를 관계로 착각하고,

그 매너로 사람의 됨됨이를 속단하곤 한다.

부유한 사람들이 매너있고, 사람이 좋다라는 말, 한 번쯤은 다들 들어보지 않았을까?

기택 가족 모두가 일종의 사기행위를 통해 박사장 집안에 모두 취업하고 이뤄질 수 없는 찰나의 행복을 만끽하지만,

그들의 삶은 명확하지도 않은 이유만으로 그 오랜 경력을 무시당하고 쫓겨난 전 집사(이정은) 부부와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며 서슬퍼런 칼을 휘두르게 되지만 결국 그들이 차지할 수 있는 것은 반지하와 별로 다를 것 없는 아무도 모르는 지하방일 뿐이다.

그럴싸하지도 않은 자리를 놓고 이들이 치고박고 싸워봐야 결과는 그 별 것 아닌 자리에 있던 누군가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 뿐이지.

보는 이에겐 '별 것 아닌' 자리를 보일 수 있겠지만 그들에겐 생사의 문제다.

모든 걸 걸고 싸울 수 밖에 없는 생사의 문제.

그러니까 봉준호 감독은 이 참담한 모습이 지금의 한국의 모습이라고 직설을 날린다.

열심히 산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시스템.

박사장이 말한 그 넘지말아야할 그 선.

우리가 종종 유리천정이라고 말하는 그 선.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은 지극히 한국적인 디테일이 있어서 외국 관객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난 이 말이 한국의 관객들이 자신의 메시지에 더 집중해주길 바란다는 말로 해석됐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유머에 난 아예 웃을 수가 없었거든.

그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 하나하나가 내겐 너무나 끔찍한 현실로 다가왔으니까.

마지막,

기택의 거취를 알아낸 기우(최우식)가 대입을 포기하고 돈을 벌어 그 집을 구입하면,

아버지는 그저 계단만 올라오시면 돼요...라고 말한다.

우린 잘 알고 있다. 기우의 희망이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미 그 정도의 암담한 미래를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계급의 사다리가 명확해졌다.

다시 말하지만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빈곤.

하루에 일을 두개씩 해도 결코 빈곤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경우를 우린 자주 마주한다.

외벌이로는 감당이 안되어 부부가 맞벌이로 일을 하며 돈을 벌어도 이상하게 삶은 더 나아지지 않는단다.

우린 이런 이야기를 주변에서 아주 흔하게 들을 수 있다.

궁금하다. 이건 정말 정상적인 사회일까?

왜 우린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해도 늘 부족할까?

단순히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 때문일까?

기우(최우식)는 이제 자본을 위해 무엇이든 다 하는 괴물이 되어갈 것이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짓지만 자본을 위해선 어떤 공동체적 룰이나 도덕을 모두 무시하면서까지 자신을 내던질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건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싶었다.

이렇게 우리가 자본의 괴물이 되어간다는 그 섬뜩함.

 

 

 

+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마더> 보다는 박찬욱 감독 영화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다른 분들은 어떤 생각인지 모르겠다.

++

최우식은 영화 <거인>에서 이미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혹시 아직 <거인>을 못보신 분 계신다면 꼭 한 번 챙겨보시길.

https://series.naver.com/tvstore/detail.nhn?mcode=117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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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렇게 느꼈나...모르겠는데,

모든 배우들이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유독 이선균씨와 조여정씨의 대화 장면들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 물론 두 배우의 소파 섹스씬은 빼고.

++++

지금도 우리 사회는 열심히 자본의 크기에 따라 줄을 세우느라 혈안이다.

내가 사는 동네는 나와 같은 서민들이 사는 동네지만,

이 곳에도 유명 아파트가 들어섰고, 외부인은 절대 그 안에 들어갈 수 없도록 모든 출입문에 보안키가 설치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