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 112min / korea
천우희, 이영란, 정인선, 조대희, 김현준
퇴근 후 와이프와 함께 뒤늦게 <한공주>를 보고 왔다.
대부분의 영화관에서 이미 상영이 끝난 상태지만 집근처 롯데시네마에서 아직 상영하고 있길래 천천히 걸어서 다녀왔다.
낮기온은 제법 높지만 저녁만 되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 왔다갔다 3km 정도 걷는 건 무리가 없더라.
이 영화... 너무 늦게 본 느낌이다.
중딩아들도 함께 보고 싶었지만 연령 제한이 있는 영화라 포기하고, 와이프와 둘이서만 보려고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서야 봤으니...
와이프는 이 영화 상영 시작할 때부터 보고 싶어했었는데 말이지.
영화를 본 후... <한공주>를 본 대부분의 관람객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척 무겁고 답답했다.
<도가니>를 보지 못해 뭐라 말할 순 없지만 <한공주>와 마찬가지로 그 영화도 피해자가 마치 가해자가 되는 비정상적인 한국 사회의 현실,
가해자가 결코 반성하지 않는 기가막힌 한국 사회의 암담한 현실이 담겨 있었을거라 생각된다.
그리고 영화 속 이야기는 영화의 배경이 된 현실의 이야기보다 훨씬... 순화되었을 것이고.
이러한 짐작은 <도가니>를 보고 오신 분들이 올린 감상글에서도 알 수 있었고,
영화 <한공주>가 모티브로 삼고 있는 밀양 여중생 사건의 전말을 찾아보면 틀리지 않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을 거다.
영화보다 더 끔찍한 현실이라니... 절망적인 비애감이 몰려온다.
이 영화가 끔찍한 실화를 다루고 있음에도 영화 속 주인공 '한공주'는 결코 사건의 거센 풍파 속에 자신의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등장 인물에 대한 남다른 접근방식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체념하고 절망하면서도 자신에게도 다시 한번 평범한 일상이 찾아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묵묵하게 현실을 버티어내는,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공주의 두려움이 절규와 통한의 울음 대신 속으로 삭히고 제대로 표현조차 하지못하고 소심하게 대처할 수 밖에 없는 모습을 통해
더욱 강렬하고 깊은 비애를 전달해주는 듯 하다.
그러한 공주의 모습은 피해자가 가해자처럼 되어버린 납득할 수 없는 현실과 맞물려 속이 터질듯한 먹먹함이 밀려들게한다.
그 결과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공주가 겪었던 그 지독하게 끔찍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도
한공주는 결코 사건의 선정성과 그 파장에 쉽게 휩쓸려 내려가지 않는데 개인적으로 이건 대단한 영화적 성과라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가 흔히 알던 끔찍한 현실을 모티브로 삼은 사회 고발 영화들이 흔히 보여주는 사건 위주의 전개가
이 영화에선 철저히 한공주라는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우린 공주가 조금씩 또다른 현실 속에 문을 조금씩 열고 아주아주 더디지만
조심스럽게 평범한 여느 학생이 되어가는 성장의 모습을 보여줄 때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결말을 알지 못한채 감상한 저 역시 주먹을 쥐고 마음 속으로 응원하게 될 정도로 말이지.
어쩌면 세월호의 비극과 함께 맞물려 고통받는 학생이라면 그 누구라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진 마음때문에 더더욱 가슴이 아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화의 끝에 다다르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스스로에게 자문하게 된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엇나간 한국 사회의 파렴치할 정도로 빈곤한 철학과 비이성적인 행태들을 묵과해야하는건지.
정말 이런 세상이 우리 아이들에게 '잘 살라'고 물려줄 수 있는 세상인지 말이지.
너무나 답답하고 속이 터진다.
*
영화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영화 속에서 이 끔찍한 사건은 한공주의 집에 들어와 시간을 보내던 동윤의 패거리들에게
공주가 '더이상 동윤이를 괴롭히지 말라'고 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공주가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들은 그냥 돌아갔을지 모른다.
실제로 두목인 듯 한 녀석이 '야야 집에 가자'라고 말하고 가방까지 챙겨 현관까지 갔었으니 말이지.
공주는 어머니로부터 사실상 버림받은 처지다. 아버지는 미장공인 듯한데 몇달 이상 집을 비우기 일쑤고. 결국 그녀에겐 보호자가 없다.
응석부리거나 그를 외부적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보호자 자체가 부재한 상황이다. 그런데 사실상 보호자 부재인 그녀가 또래 친구이자
괴롭힘을 당하는 동윤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게 되는 그 시점에서 첫 사건이 벌어진다.
물론 난 그때 그냥 그 패거리들이 조용히 나갔더라도 언제든 벌어질 일이라 생각하지만 말이지.(실제 사건과 차이가 있다)
공주는 이후에도 보호자일 수도 있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자신을 사실상 버린 친엄마를 찾아가고, 전학교 선생님의 어머님과 기거하면서 조금씩 가까와지고, 오랜만에 연락을 준 아빠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영화를 보신 분들이 절감하셨듯 그 모두가 공주의 보호자가 되지 못하지.
보호자가 필요한 평범한 학생이 스스로가 보호자가 될 수 밖에 없는 현실.
스스로 이 모든 고통과 부조리한 일에 노출되고 맞닥뜨려야하는 현실.
지금 우리의 현실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또 있을까 싶다.
**
한공주 역을 맡은 천우희씨의 연기는 보는 이의 가슴이 수없이 따끔거릴 정도로 자연스럽게 다가오더라.
두려움과 슬픔, 절망의 감정 표현이 이토록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표현될 줄은 몰랐다.
***
선생님 어머님...역을 맡은 이영란씨의 연기 또한 대단히... 인상적이다.
특히 슈퍼마켓에서 계산해주며 손님이 건네는 말에 반응하는 연기는 <파수꾼>에서의 조성하씨만큼의 디테일이 느껴졌으니.
선생님 역할을 맡은 조대희씨 역시 의무감으로 공주를 보호해줘야하는 평범한 선생님의 역할을 기가막힐 정도로 자연스럽게 표현했고.
와이프 말로는 극중 선생님 이름이 '이난도'인데...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쓴 저자 이름이 김난도이니...
누가봐도 디스... 뭐 속이 다 시원하네.
****
<한공주>의 실화 모티브인 '밀양 여중생 사건'에 대한 전말을 찾아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이미 오래전부터 관련 뉴스를 보아서 알고있던 터이지만 영화를 계기로 다시한번 찾아보았는데...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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