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영화 연말결산합니다.
다른 해보다 유난히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_-;;; 항상 150편 이상을 매년 보는데 올해는 120편 정도에 그쳤고
그나마 복잡한 심경으로 인해 킬링타임용 영화를 더 많이 본 한 해 같네요.
그래서 50편을 꼽기도 불가능하고, 30편만 골라 봤습니다.
아래 사항은 참조해주세요.
* 아래 영화 이미지는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을 제외하곤 모두 직접 스크린 캡쳐한 컷입니다.
* 아래 30편의 영화 중 1/3 이상은 영화관에서 봤습니다. 국내에 전혀 개봉되지 않았거나
2차판권조차 없었던 영화는 어둠의 경로로 봤습니다. 덕분에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우린 CGV VIP 멤버입니다.-_-;;;
* 2010년에 개봉된 영화만을 기준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2009년에 개봉했어도 2010년에 본 영화도 포함했습니다.
덕분에 [a Single Man]같은 영화들이 올라와 있으니 이점 참조해주세요.
* 영화에 대한 간략한 리뷰는 철저히 제 주관적인 감상입니다. 제 자신이 감히 영화에 순위를 정한다는 것,
불편할 수 있으나 스스로 정리하는 생각에서 이렇게 올려 봅니다. 이해해주시길
이번엔 10위~1위 영화입니다.
10. [the Social Network/소셜 네트워크] (2010)
directed by David Fincher
데이빗 핀쳐의 전작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내게 일종의 안도감(?)같은 기분을 선사한 영화.-_-;;;
영화 개봉 전 마틴 주커버그는 거액의 기부금을 내놓았고 언론은 이 영화의 개봉으로 받을 이미지 손상을 완충하기 위해서라고 기사를 내기 바빴다.
정작 영화가 개봉되고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영화 속 마크 주커버그의 모습이 돈과 성공만 좇는 파렴치한처럼 그려진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동정과 연민이 가는 캐릭터라고 하면 모를까.
현존하는 세계 최연소 거부를 다루면서 전세계 수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사생활을 꺼내놓는 소셜 네트워크로서의 페이스북(facebook) 창립자지만
정작 자신은 가장 친한 친구였던 이로부터 고소를 받고 가슴 속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외롭고
우울한 방구석 천재라는 사실에 그를 손가락질하며 비난만 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영화는 성공에 대한 욕망을 좇아 요란떨지않고 묵묵히 따라갈 뿐이고 스크린 기저에 깔린 트랜트 레즈너의 음악은
그야말로 근래 들어봤던 사운드 트랙 중 단연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NIN 시절의 음악보다도 훨씬 더 말이다.
(게다가 그의 사이트에 가면 $5.00에 OST를 다운받을 수 있다)
아마도 사운드트랙이 영화의 몰입도와 완성도를 높힌 대표적인 케이스가 아닐까 싶다.
[Zodiac/조디악]에서 느꼈던 느리고 무거운 호흡의 연출을 다시 한번 맞닥뜨린 영화.
9. [a Serious Man/씨리어스 맨] (2009)
directed by Ethan Coen, Joel Coen
유태계 물리학 교수 고프닉은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면 어느 정도 잘난 인생을 이룬 사람이라고 봐도 좋다.
종신교수 임명을 눈 앞에 둔, 괜찮은 집에 사는 전형적인 미국의 중산층이니까.
하지만 고프닉에겐 난데없이 하나둘 그동안 누적된 재난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것도 연달아 원투쓰리 콤보로.
인생의 가장 큰 성취를 바로 코 앞에 두고 있지만 그는 자신의 고민을 주체할 길이 없어 유태인답게 몇 명의 랍비를 찾아가 인생 고민을 상담하려고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수학적으로 명료하게 보여줄 수 있는 난해한 수식의 논리라는 점이다.
그런 그의 학문과 전혀 관계없이 그는 자신에게 닥친 이 모든 일들을 어떤 방법으로든 규명하지 못하고 랍비를 찾아간다.
영화가 블랙 코미디로 점철된 그야말로 코미디라고 보겠지만, 이 영화는 섬뜩하다.
고프닉이 지나치게 'serious'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닥치는 재난들의 무자비함이란 마지막에 몰려오는
거대한 토네이도와 변호사 선임비용 청구서처럼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들을 종교적 신앙으로 현답을 구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신 분은 아시다시피 이 영화 속에 종교적 믿음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코엔 형제는 그렇게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연출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코엔 형제가 얘기하는 것은 유태계의 현답들을 통해 개인이 자신의 인생을 대하는 철학에 대해서일 것이다.
현실을 도피할 수도, 맞닥뜨릴 수도 없는 이에겐 슈레딩거의 고양이가 살고 죽을 경우를 수학식으로 증명하는 현명함도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이니까.
그리고 이런 강박적인 현대인의 고민은 고프닉의 것만이 아닌 일반 대중 대부분이 짊어지고 사는 것들이니까.
마을을 향해 무섭게 휘몰아치며 다가오는 마지막 토네이도의 모습은 바로 그런 메타포가 아닐까?
8. [Kynodontas/Dogtooth/송곳니] (2009)
directed by Giorgos Lanthimos
[송곳니]는 가족에 대한 부조리극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정은 단순히 작은 울타리일 뿐인데 이걸 '1984'버전으로 확장하면 상당히 더... 섬뜩해진다.
그리고 온갖 가증스러운 작태로 언론을 통제하고 그릇된 정보를 양산하는 지금의 한국을 생각하면 더더욱 섬뜩해지고.
생각해보면 우리가 당연히 알아야할 사안에 대해 정확히 알 수가 없고,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개개인의 노력이 필요하거나,
혹은 그릇된 정보를 의도적으로 남발하여 사안에 대해 정확한 접근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면, 그 시점이야말로 모두가 바보가 되는 섬뜩한 세상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사안에 대한 정확한 원인과 결과를 도출할 생각은 안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따져가며 결과를 왜곡하는 황당한 상황을 우린 요즘 거의 매일 목도하고 있으니.
화목한 중산층 가족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힘을 가진 자에 의해 이용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기도 하고.
[송곳니]의 결말은 어떻게 보는 이에게 열려있지만, 결말과 관계없이 영원히 통제하고 종속시킬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얘기한다.
이미 통제와 세뇌가 인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메시지를 우린 수많은 영화에서 확인해왔으니까.
7. [옥희의 영화] (2010)
directed by 홍상수
20여번의 테이크. 그리고 즉흥적인 배우들의 애드립.
그 사이에 나온 가장 리얼한 결과물.
어쩌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옥희의 영화]는 또다른 기점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유쾌하고 신랄하며, 개인의 가슴 속에 하나쯤 걸어메고 있을 법한 본성을 쉽게쉽게 풀어
스크린에 내다 거는 감독이 얼마나 될까? 하는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하면 난 선뜻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게다가 그 얄팍한 캐릭터들의 찌질함들이 한없이 연민이 느껴지지 않나?
우리가 연애하면서 느껴왔던, 남들은 유치하게 바라볼 지언정 본인만은 세상 고민 다 짊어진 치열한 삶을 사는 것 같았던
그 순간을 냉소가 아닌, 애정으로 바라보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그 어느 나라의 감독에게서도 보기 힘들었던 리얼리즘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너, 나, 그리고 우리의 인생같은거 더 잘나지도, 더 못나지도, 배운 자와 덜 배운 자의 사고도 그닥 다를 바 없는 인생이라고 홍상수는 소탈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여전히 가장 충격적인 영화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지만 이야기를 던지며
관객에게 다가오는 작법은 이제 경지에 다다른 것 같다.
[하하하]를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해서든 꼭... 보고 싶어졌다.
6. [Kick-Ass/킥 애스] (2010)
directed by Matthew Vaughn
짚고 넘어갈 것은, Matthew Vaughn(매튜 본) 감독이 자력구제의 리얼리티가 심각하리만치 반영된 [Harry Brown/(해리브라운)]의 제작자였다는 사실이다.
무엇때문에 매튜 본이 자경행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Kick-Ass/킥애스]는 마블 코믹스에서
뛰쳐나온 듯한 핑계를 대면서 '경찰들 따위는 엿이나 먹어'라고 말하는 듯 자경행위를 대놓고 보여주는 잔혹극이다.
게다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알게모르게 머릿 속에 인식되어버린 윤리의식 덕분에, 아직 초딩인 듯한 어린아이가 긴 창과
각종 무기로 어른들을 썰어버리는 씬은 도통 해괴한 온갖 복잡한 심경을 느끼게 한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면서 그 극렬한 액션에 흥분하면서, 또 악인을 처단해버리는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다른 한쪽의 뇌로는
'이것이 정말 윤리적으로 정당한가?'에 대해 스스로 끊임없이 자문하게 되는... 황당한 상황을 영화 내내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무엇이 정말 '윤리적인 것'이고, 지금 우리 머릿 속에서 혼란을 가하는 수많은 가치판단의 잣대는 무수히 많은
시스템의 편의를 위해 축적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만 이런 혼란스러움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지속된다.
하지만 경쾌하고 무엇보다 솔직하게 킥애스의 행적과 심경을 좇는 영화는 덕분에 강렬한 감정이입을 유도하고,
빅대디가 힛걸에게 마지막으로 움직임을 지시하는 장면은 놀라운 카타르시스를 전해주기도 한다.
분명 후속작이 나올 거라 믿어 의심치않는 마지막 장면은 앞으로의 킥애스를 더 기대하게 한다.
5. [Un Prophète/a Prophete/예언자] (2009)
directed by Jacques Audiard
전작 [the Beat that My Heart Skipeed/내 심장을 건너 뛴 박동]으로 경쟁사회에서 애초부터 '예외'된 밑바닥 인생으로 시작한 한 남자가 천부적인 음악 재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조리한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놀라운 호흡과 연출로 보여준 자크 오디아르의 신작이다.
칸 영화제 수상작이기도 하고 전작의 강렬함으로 인해 나 역시 무척 기대했던 영화이고.
영화는 죄를 지어 6년형을 받고 감옥에 수감되는 19세의 주인공이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감옥에서 스스로 게임의 법칙을
터득하며 아슬아슬한 처세를 해가면서 정글의 룰을 스스로 익혀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는 아랍계인 주인공이 정글의 무수한 위협과 경쟁을 버티고 오르는 전형적인 느와르 장르의 영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국민의 주권에 대한 '예외적 적용'이 가져온 구조적 빈민이 부조리한 시스템에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을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고아 출신으로 자신이 세상을 버틸 건 몸뚱아리 밖에 없는,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나라에서조차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해
글을 읽고 쓰는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던 주인공 말릭. 범죄에 휘말려 그가 감옥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그는 조금씩 스스로
정글의 룰에 적응하고 이를 이용해나가기 시작한다.
이런 내용의 영화를 보면서 경쟁에 타의로 내몰린 이들이 도태되지 않기 위해 남을 짖밟고 올라서야할 수 밖에 없는
지금의 우리 사회, 아니 전지구적 현상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을까?
자크 오디아르 감독 역시 충분히 이러한 서글픈 현실을 반영하여 만든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감옥이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암투가 사실은 주인공 말릭이 외출을 얻어 나온 현실 세계에서도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이 영화를 통해 우린 볼 수 있으니까. 오히려 감옥을 나온 그 '자유'의 공기 속에서 말릭이 처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은
감옥 내에서의 일상보다 더욱 잔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으니까.
4. [Toy Story 3/토이 스토리 3] (2010)
directed by Lee Unkrich
이 영화에서 보여준 조명의 사용은 디지털 애니메이션에 대한 픽사의 고민이 어느 관점인지 명확하게 알게 해준다.
기술의 진보가 과시를 위한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인간의 감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극대화하는 방법의 고민이란 점을 놀랍도록 진실되게 느끼게 해준다.
그 어떤 실사 영화보다 따뜻한 빛의 사용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이미 이것만 봐도 어떤 영화인지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영화의 끝자락에 이르러 aipharos님은 눈물을 펑펑 쏟았고, 나 역시 눈시울이 붉어져 혼이 났다.
슬픈 결말도 아니지 않나. 슬픈 장면이었다면 그토록 감동의 박수를 보냈을 것 같지도 않다. 우리가 살면서 슬프고
기뻐서 눈물을 흘릴 경우는 종종 있어도 잔잔한 감동에 눈물을 흘릴 일이 많이 있을까?
우리가 살아오면서 맺고 헤어진 모든 인연의 소중함에 대해 얘기하는 이 장난감들의 우여곡절은 픽사 스튜디오가 지금 하고있는
근원적인 디지털 애니메이션에 대한 고민이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행복할 뿐이다.
다양한 인종과 다른 존재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철학으로 녹아 들어가있는 말이 필요없는 올해 최고의 애니메이션.
*
픽사 애니메이션의 DVD나 블루레이를 갖고 계신 분은 서플먼트를 통해 픽사 스튜디오의 스탭들이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와 조우하는 장면을 본 기억들 있으실 것이다.
그들은 만사를 제쳐두고 픽사 스튜디오를 방문한 미야자키 하야오를 만나러 뛰어 내려가는데 이 영화에는
그러한 존경의 마음이 이 영화 [토이 스토리 3]에 소소하게 담겨 있다.
한마디도 하지 않는(의도적인 오마쥬) 토토로 인형이 등장하는 것으로.
3. [Inception/인셉션] (2010)
directed by Christopher Nolan
이 영화를 16세때부터 구상을 했다는 놀란 감독의 말을 빌자면 적어도 그는 그 시절부터 이미 프로이트를 독파(?)했을
가능성이 있고, 아니라면 상상의 나래를 펼친 기본 뼈대에 이후의 인문학적 지식으로 살을 보탰을 수 있다.
프로이트의 책을 읽은 지 어언 20년이 넘어버린 나로선 이 영화에서 꿈과 기억과의 상반되면서도 근접한 관계, 무의식의 개념 정도만
어렴풋이 다시 유추해낼 수 있지만 사실 대중들이 이 영화를 볼 때 그러한 지식이 있냐없냐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정도로 영화의 구성과 편집 자체가 훌륭하다.
워쇼스키의 [매트릭스]가 장자의 철학과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을 뒤섞어 SF의 프레임 안에 존재론적인 질문을
짖궃게 해왔고, 최근의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Mr.Nobody/미스터 노바디]는 대놓고 양자물리학과 엔트로피등을
영화 속에 기가막히게 버무리며 관람자로 하여금 탄성은 물론 나아가선 자신에 대한 성찰까지 유도했다면 놀란 감독의
[인셉션]은 역시 장자와 프로이트를 빼놓고 얘기하기 힘들지만 위에서 언급한 두 영화보다 훨씬 더 간결하고 단선적이면서 非철학적이다.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대야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놀란이 영화 속의 '설계자'들의 힘을 빌어
펼쳐 보이는 꿈 속의 세계를 직접적으로 받아 들이며 수월하게 흐름을 따라 다닐 수 있게 된다.
사실 이게 말이 쉬운 얘기지 이 정도 이야기를 이렇게 쉽게 풀어낸다는 것 자체가 바로 그의 재능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지.
[다크 나이트]도 엄밀히 따지면 대단히 복잡한 인물들의 심리 변화와 중의적인 요소들, 철학적 질문을 수도 없이 해대는데
영화 자체는 너무나 수월하게 따라갈 수 있었지 않나.
특히 중반 이후 펼쳐지는 정교한 마술같은 스토리에는 두손 두발 다 들어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느낌이 있더라.
동일 시간의 흐름선상에서 각각의 꿈이 흐르는 시간이 절대시간이 아니라 모두 상대적 시간이어서 사실 혼란스럽게
보여져야 함이 당연할 것 같은데 이 영화는 놀랍게도 동일한 시간의 흐름에서 벌어지는 각각의 꿈의 내용들을 조금도 흐트러짐없이 완벽하게 섞어냈다.
막판에서의 단계적 킥(Kick)의 카타르시스는 그래서 정말 대단히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었던 것 같고.
2. [시(詩)] (2010)
directed by 이창동
정말 극 중 주인공 미자(윤정희)를 좇는 마음이 나중엔 힘겨웠다.
영화가 끝나고 aipharos님은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엄청나게 울었고,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는다고 힘들어했다.
난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그 먹먹한 심경 때문에 영화를 본 후에도 그 깊은 여운이 너무나 오래 남았다.
감독으로서의 이창동, 문학가로서의 이창동이 얼마나 큰 산과도 같은 분인지 영화를 보면서 뼛속까지 사무치게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시' 한 편을 써보는게 바램인 궁핍한 살림에 버릇없는 손주를 대신 키우는 할머니 미자는 세상의 몰염치와 부도덕 앞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용한 항거를 마친다.
무섭게도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 많은 인물들은 우리가 당장이라도 이웃으로 뒀을 법한 너무나 흔하고
평범한 사람들 뿐이고, 꽃을 좋아하고 아름다움에 경도되는 할머니 미자의 순수함은 결코 동화될 수 없는 사회일 뿐이다.
그 인생사는 동안 그럭저럭 남에게 피해 한 번 안주고 살아왔지만 손주의 일탈 앞에 그녀가 생각해온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들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파렴치한 현실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 대해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책임진다.
언론, 정부, 사회... 모두가 던지고 아님 말고식의 무책임함, 전장에서의 shoot and forget처럼 그저 휘갈기듯 타이핑하면 그만이고,
입으로만 서민을 떠들고 내뱉으면 그만이고, 뒷구멍으로는 날치기하고 외형적 복지예산만 남겨놓고는 한국이 복지국가란
황당한 소리나 지껄이는 이들을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한국에서 미자가 보여준 행동은 가슴이 미어지듯한 복받치는 감정을 준다.
놀랍도록 아름답지만 무거운 영화.
*
윤정희씨의 연기는 처음에는 뭔가 어설픈 느낌이 있었는데 조금만 지나면 머리가 쭈볏해질 정도로 몰입하게 된다.
이 영화가 놀라운 각본 그대로의 생명력을 획득한 건 윤정희씨의 감동적인 연기 덕분일 것이다.
한 사람이 완벽하게 한 작품을 모두 끌고 가는 이 영화에서 윤정희씨가 보여준 연기는 아마 내가 앞으로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결코 잊기 힘든 명연으로 남을 것 같다.
1. [Das Weisse Band/the White Ribbon/화이트 리본] (2009)
directed by Michael Haneke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를 처음 접한 건 오래 전 극장에서 [Funny Game/퍼니 게임](리메이크말고) 본 것이었는데
그때 그 마지막의 불쾌감이 영... 떠나지 않아서 무척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뒤로 그의 다른 영화들인 [Benny's Video/베니의 비디오](92)나 [Hidden/Cache/히든](05),
[the Piano Teacher/피아니스트](01)등을 보면서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혹은 보고 싶지 않은
인간 내면의 잔혹함을 들춰내는 방식에 익숙해지고, 그렇게 불편한 방식으로 풀어낸 시선에 익숙해진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하네케의 영화를 보고 나면 불편해지고 무거워진다. 언제나 결말의 여지를 관객들에게 던져 놓기 때문에.
그가 빈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것도 그가 연출한 영화의 내러티브와 관련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언제나 가족과 미디어, 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그의 영화는 자본주의를 이루고 있는 최소의 유닛이라고 볼 수 있는 가족이 가진 관계와 관계 사이에서
벌어질 수 밖에 없는 내재된 폭력성, 그리고 이를 드러내고 발설하기 싫어하는 사회적 분위기등을 모두 배반하며 하나둘 잔혹하리만치 까발린다.
오랜만에 들고 온 장편 [화이트 리본]은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바로 직전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제는 노인이 된, 마을로 부임한 한 신임 교사의 눈과 독백을 통해 따라가는 영화 구조를 띈 흑백 영화다.
그 당시의 모습을 현실과의 괴리로서 장치한 흑백은 오히려 다큐적 특성을 강하게 띄고 있고, 이로서 마을 내에서 벌어지는
숨을 조이는 밀도와 영화적 상상력을 보다 더 극렬하게 끌어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두가 2차 대전 당시 독일 전체를 광기로 몰아넣었던 나찌즘이 그토록 일반 대중들 사이에도 파고들을 수 있었던 이유를 궁금해하고,
학문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수없이 연구되어 왔지만, 이 영화에선 2차 대전의 집단 광기로 이를 수 있었던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어른들이 만들어낸 세상을 그려냄으로써 아이들이 어떻게 순수함을 잃어가고 어른들의 세계에 동조하며,
시스템에 물들어가고 광기로 전염되는지를 여지없이 그려낸다.
그리고 하네케 감독은 흑백 필름을 사용한 이유를 현재와의 경계를 긋기 위해서라고 말한 바 있지만, 순환적 역사관을
미루어 짐작컨대, 이와 동일한 폭력이 현재에도 끊임없이 가해지고 있으며,
인간의 근본적인 광기를 다시 부추길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정작 [화이트 리본]에선 이 정도로 과하게 얘기할 만큼의 폭력은 등장하지 않지만 작은 마을 안에서의 계층과 계층의 대립,
계급과 계급의 대립, 대립 속에서 싹트는 반목과 불신, 위태롭게 유지되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아이들에게
공공연하게 가해지는 정서적, 물리적, 성적, 종교적, 계급적 폭력이 모조리 보여지면서 보는 이들은
140분이 넘는 러닝 타임 내내 긴장감을 풀 수 없는 기괴한 경험을 하게 된다.
롱 테이크를 적절히 사용하면서, 빛의 명암을 기가막히게 배치하여 프레임 프레임간의 단절되지 않는
미묘한 긴장감을 기가막히게 연결해주고 있으며, 그 덕에 커다란 외침과 반전 한 번 없이도 충분히 보는 이를
전율케 할 수 있음을 보여준 그의 영화적 작법에 감히 박수를 보내고 싶을 뿐이다.
아울러, 우리가 이토록 솔직히 바라볼 수 없는 비뚤어지고 부조리한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이
어떻게 우리의 아이들을 오염시키고, 이들이 어떻게 후에 집단적인 광기를 표출할 수 있는 지를 생각하게 된다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른들의 욕구(아이들을 위한다는)에 의해 끊임없이 학원과 학원 사이를 오가고, 인생의 가치를
오로지 공부...경쟁에 의해 판단하게 하는 지금의 한국 부모들이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정말... 단 한 번쯤은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한 아이들의 사회의 부조리를 방관하고 오히려 자양분삼아 자라나고, 국가가 사회 시스템에 대한 양심과 관리를 포기했을 때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도 어떤 끔찍한 일이 생길지를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지금의 이 부조리한 세태에 무작정 동참하고 볼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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