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s Weisse Band/ the White Ribbon / 화이트 리본]
Directed by Michael Haneke (미카엘 하네케)
2010 / 142분 / 독일
본다본다...하다가 이제서야 봤다.
개봉한 줄도 모르고 지내다 놓치고 말았으니 말 다했고...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를 처음 접한 건 오래 전 극장에서 [Funny Game/퍼니 게임](리메이크말고) 본 것이었는데
그때 그 마지막의 불쾌감이 영... 떠나지 않아서 무척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뒤로 그의 다른 영화들인 [Benny's Video/베니의 비디오](92)나 [Hidden/Cache/히든](05),
[the Piano Teacher/피아니스트](01)등을 보면서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혹은 보고 싶지 않은
인간 내면의 잔혹함을 들춰내는 방식에 익숙해지고, 그렇게 불편한 방식으로 풀어낸 시선에 익숙해진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하네케의 영화를 보고 나면 불편해지고 무거워진다.
언제나 결말의 여지를 관객들에게 던져 놓기 때문에.
그가 빈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것도 그가 연출한 영화의 내러티브와 관련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언제나 가족과 미디어, 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그의 영화는 자본주의를 이루고 있는 최소의 유닛이라고 볼 수 있는
가족이 가진 관계와 관계 사이에서 벌어질 수 밖에 없는 내재된 폭력성, 그리고 이를 드러내고 발설하기 싫어하는
사회적 분위기등을 모두 배반하며 하나둘 잔혹하리만치 까발린다.
차마 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해외의 리뷰를 읽어버리는 바람에...) 미루고 있는 [Le Temps du Loup/늑대의 시간]은
그 극단에 이르렀다고 하니... 잔혹한 장면 거의 나오지 않는 대부분의 그의 영화가 심리적으로 주는 압박감이란 대놓고
폭력을 보여주는 영화의 중압감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무겁고 힘들다.
오랜만에 들고 온 장편 [화이트 리본]은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바로 직전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제는 노인이 된,
마을로 부임한 한 신임 교사의 눈과 독백을 통해 따라가는 영화 구조를 띈 흑백 영화다.
그 당시의 모습을 현실과의 괴리로서 장치한 흑백은 오히려 다큐적 특성을 강하게 띄고 있고,
이로서 마을 내에서 벌어지는 숨을 조이는 밀도와 영화적 상상력을 보다 더 극렬하게 끌어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두가 2차 대전 당시 독일 전체를 광기로 몰아넣었던 나찌즘이 그토록 일반 대중들 사이에도 파고들을 수 있었던 이유를
궁금해하고, 학문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수없이 연구되어 왔지만, 이 영화에선 2차 대전의 집단 광기로 이를 수 있었던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어른들이 만들어낸 세상을 그려냄으로써 아이들이 어떻게 순수함을 잃어가고 어른들의 세계에 동조하며,
시스템에 물들어가고 광기로 전염되는지를 여지없이 그려낸다.
그리고 하네케 감독은 흑백 필름을 사용한 이유를 현재와의 경계를 긋기 위해서라고 말한 바 있지만, 순환적 역사를 감안하여
미루어 짐작컨대, 이와 동일한 폭력이 현재에도 끊임없이 가해지고 있으며, 인간의 근본적인 광기를 다시 부추길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사실 정작 [화이트 리본]에선 이 정도로 과하게 얘기할 만큼의 폭력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마을 안에서의 계층과 계층의 대립, 계급과 계급의 대립, 대립 속에서 싹트는 반목과 불신, 위태롭게 유지되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아이들에게 공공연하게 가해지는 정서적, 물리적, 성적, 종교적, 계급적 폭력이 모조리 보여지면서
보는 이들은 140분이 넘는 러닝 타임 내내 긴장감을 풀 수 없는 기괴한 경험을 하게 된다.
롱 테이크를 적절히 사용하면서, 빛의 명암을 기가막히게 배치하여 프레임 프레임간의 단절되지 않는 미묘한 긴장감을
기가막히게 연결해주고 있으며, 그 덕에 커다란 외침과 반전 한 번 없이도 충분히 보는 이를 전율케 할 수 있음을 보여준
그의 영화적 작법에 감히 박수를 보내고 싶을 뿐이다.
아울러, 우리가 이토록 솔직히 바라볼 수 없는 비뚤어지고 부조리한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이 어떻게 우리의 아이들을 오염시키고,
이들이 어떻게 후에 집단적인 광기를 표출할 수 있는 지를 생각하게 된다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른들의 욕구(아이들을 위한다는)에 의해 끊임없이 학원과 학원 사이를 오가고, 인생의 가치를 오로지 공부...경쟁에 의해
판단하게 하는 지금의 한국 부모들이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정말... 단 한 번쯤은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한 아이들의 사회의 부조리를 방관하고 오히려 자양분삼아 자라나고, 국가가 사회 시스템에 대한 양심과 관리를 포기했을 때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도 어떤 끔찍한 일이 생길지를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지금의 이 부조리한 세태에 무작정 동참하고 볼 일일까?
단언컨대,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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